근육통의 의미

근육은 어떻게 생길까

by 그대로 동행

PT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나간다. 매주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1시간씩 땀을 흠뻑 흘리고 온다. PT를 받느라 안 쓰던 근육을 뻗고, 굽히고, 비틀어가며 운동하는 시간 자체도 고통스럽지만 진짜 아픔은 그 뒤에 찾아온다.


찌르르 기분 나쁜 근육통이 온몸을 훑기 시작한다. 허리 통증을 고치려 시작한 운동인데 더 센 근육통이 찾아오니 당혹스러웠다.


트레이너 선생님한테 근육통에 대해 물었다. 의외로 젊은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건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에요. 근육통이 있어야 근육이 생기거든요. 근육이 찢어지며 통증이 있던 자리에 새 근육이 생기는 과정입니다. ”

그날 나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다시 온몸을 비틀고, 뻗고, 뛰다가 걸음도 못 걸을 정도로 욱신거리는 다리를 휘청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PT선생님은 근육통을 달래기 위해 핫팩을 쓴다는 나에게 그러면 근육이 풀어져 잘 안 생기니 가급적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몸이 찌뿌둥해질 때마다 뜨거운 핫팩의 유혹을 물리치기 힘들었다.


그렇게 핫팩으로 돌려 막기를 하며 간신히 운동하던 차에 내가 겪는 근육통의 진가를 서서히 실감하게 되었다.


우선 체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전에는 수업 후, 진이 빠져 다음 스케줄을 위해 일정 시간 쉬어줘야 했건만, 이제는 일정들을 연속 감당해도 몸이 끄덕없었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일상도 거뜬하게 소화하고, 가족들과 화담숲에 놀러갔을 때는 함께 2시간여의 산책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평소 골골거리며 조금만 걸어도 휘청거리는 내 모습을 익히 알던 가족들이 내 모습을 보고 확실히 체력이 좋아졌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약골이라고 놀림만 받다가 처음 받아본 체력에 대한 칭찬에 나조차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면서 문득 스쳐간 생각, 인생도 운동과 같다.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통과해야 비로소 단단한 근육을 얻듯이, 힘든 일을 겪어봐야 생의 내공이 붙는다. 비로소 삶의 성장점이 자라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내 삶의 진짜 성장은 근육통 같은 시련을 통과한 뒤에 이뤄졌다. 삶의 통증으로 잠 못 이루던 날을 지나며 인생의 근육이 단련되었다.


30세까지는 실패를 전혀 모르고 살았었다. 대학도 취업도 결혼도 한방에 수월하게 했다. 나의 눈에 인생은 내 뜻대로 될 수 있는 비교적 만만한 것이었다. 근육이 하나도 없었다.


그 부실한 몸으로 드디어 본격적인 고난의 링에 올랐다. 여러 고난을 겪었지만 가장 아픈건 자녀의 고통이었다. 엄마의 자랑이자, 언제까지나 말 잘 듣고 성실하게 자랄 줄 알았던 아들에게서 균열을 감지했다.


단순히 지나가는 사춘기 열병에 불과하다고 치부했건만 찰랑이던 잔물결이 급기야 거대한 폭풍우로 돌변했다.


큰아들이 힘들게 재수, 삼수를 했건만 유명 공대에 합격하고도 선뜻 앞으로 나가기를 주저했다. 마음이 많이 아프다며 주저앉아 버렸다. 공교롭게 갱년기까지 닥쳐 내 몸하나 추스르기도 버거워졌다.


한때는 나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던 맏이, 세상의 기준에 맞춰 빛나고, 앞서는 삶을 살기를 바랐던 나의 아들.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모범적이고 착하고 완벽했던 큰아들이 내 눈앞에서 자신의 삶을 걸고 시위를 했다.


나는 실패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아들 삶이 좌초당하지 않도록 노심초사했다. 정답을 강요했고, 지름길을 찾기에 연연했다. 그러나 자식의 삶은 완전한 별개의 길임을 깨닫게 되었다.

마침내 아들에게 삶의 전적인 선택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그것이야말로 아들로 하여금 독립적인 삶을 살게 해주리라.


땀 흘리며 근육을 키우는 운동시간처럼 우리를 훑고 지나갔던 지독한 불협화음의 시간, 그 산고의 시간을 통해서야 단단한 생의 근육을 얻어낸 것이다.


등단 이후, 첫 글쓰기 선생님을 만난 날, 선생님이 축하의 말을 건네며 내게 질문하셨다.

인경씨, 작가에게 최고의 자산이 뭔지 알아요?”

대답을 못하고 머리만 굴리는 나에게 선생님이 대답하셨다.

“경험이야말로 작가에게 최고의 자산이에요. 특히 작가가 겪은 모든 고통과 시련.”


선생님의 답변을 들은 순간, 내 눈앞의 세상이 순식간에 정지해 버렸다. 아프고 힘겹다고 투정만 부렸던 고난이 실상 나로 하여금 현실 너머의 꿈을 꾸게 했고, 이를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음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삶을 관통하는 고난과 혼돈에 맞서기 위한 방편으로 글쓰기를 선택했었다. 기피하고 외면했던 아픔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문장과 생각을 함께 빚었다. 글을 쓰면서 고통의 의미를 찾고,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왔다. 진짜 성장을 이루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글쓰기는 삶의 전장에서 상처 투성이로 투쟁한 사람들이 얻어낸 전리품이다.


실패와 시련,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구덩이를 헤매면서 건진 그 작은 문장 하나, 철학 하나가 마침내 읽는 이와 맞닿게 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의 전리품, 그것이야말로 내가 꿈꿔온 삶의 근육이다. 인생의 진정한 체력이다.

이제 나의 근육통에 감사한다. 그것은 내가 여전히 잘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 제대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오늘도 나는 몸의 근육을, 인생의 근육을 다지려 헬스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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