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필요한 건 착한 사람

고 안성기 배우를 추모하며

by 그대로 동행

얼마 전 윤석화 배우의 죽음 소식을 듣고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이순재, 김지미, 윤일봉, 제가 어린 시절부터 알아왔던 친숙한 얼굴들의 죽음 소식을 연달아 들었기 때문이었지요.


특히 윤석화 배우는 제게 더 각별했던 게 학창 시절 그녀의 연기가 좋아서 산울림 소극장 등을 찾아가 연극을 직접 관람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가 연기했던 '신의 아그네스' 연극은 공연당시 우리나라에 상당한 화제몰이를 했었지요.


그런 그녀였기에 마치 이전부터 알아온 사람의 죽음을 접하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습니다.


이번에는 안성기 배우의 죽음 소식을 접했습니다. 사실 안성기 배우는 어려서부터 제가 봤던 영화 중 상당수에 출연했던 배우이기에 더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가 출연했던 영화의 제목들을 일일이 열거하기 부족할 정도로 안성기 배우는 저에게 옆집 아저씨처럼 친숙한 배우였지요.


지난 9일 명동성당에서 치러진 그의 영결식에서 유족 대표로 그의 아들 안다빈 씨가 아버지의 편지로 인사를 전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내 아들 다빈아,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이란 바로 착한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말아라'로 시작하는 편지였습니다. 1993년도에 그가 다섯 살 아들을 위해 썼다고 합니다.


안성기 배우 자체가 우리 시대에 보기 드문 모범적이고 착실한, 착한 사람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연예계의 각종 부침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결같이 배우이자 생활인으로서 겸손하고 정직하게 살아왔습니다.


저는 우리 시대에 그와 같은 배우의 연기를 보며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깊고 푸른 밤, 그대 안의 블루, 안녕하세요 하나님, 기쁜 우리 젊은 날, 이장호의 외인구단, 고래사냥, 백한 번째 프러포즈, 실미도, 라디오스타, 미술관 옆 동물원, 투캅스등을 보면서 풍요로운 영상의 축복을 맛보았습니다.

그의 영화를 보며 가슴 달뜨던 어린 소녀가 머리 희끗한 중년으로 늙어가듯, 안성기 배우 역시 우리 곁을 영화처럼 떠나갔습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우로서 생활인으로서의 품위를 지킨 멋진 삶이었지요.



그의 편지는 '동생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형이 되거라'라고 끝났습니다. 아마도 그는 동생뿐이 아닌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형이 되길 바라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의 편지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울림을 주는 이유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착한 사람이 되길 경계합니다. 착하다는 말이 비하로 들리기도 하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서슴없이 착하면 손해 보고, 남에게 무시당한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착하다는 말이 어리석고, 세상물정 모를 정도로 순진하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세상에서 착한 사람이 되고자 진실되게 살아온 안성기 배우. 그런 삶과 모습이 제게 생전의 그의 영화보다 더 뜨거운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남긴 최고의 걸작 영화는, 그의 삶 자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의 청춘과 삶을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줬던 그의 연기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곁의 착한 사람으로 한결같이 60여 년 동안 대중과 영화의 곁을 지킨 그의 명복을 빕니다.


한때 우리 곁의 빛나는 별들이었던, 아쉽게도 이제는 소멸해 버린 분들의 명복도 빕니다.


별들은 소멸했을지언정, 눈부시게 빛났던 흔적은 우리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