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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말러 교향곡 제5번 4악장

누워서 베를린 필하모니 연주에 다녀왔다

by 이인규

다시 아침, 오늘은 에어비앤비로 이동하는 날이다. Panni는 주말에 근교로 여행을 다녀온다고 했다. 비행기를 타러 가야해서 조금 일찍 10시 30분 정도까지 와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


“Of course! 나에게 있는 건 시간뿐이야”


우버를 불러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어제 한번 걸어봤던 길이라 눈에 더 선명했다. 또 다시 비가 내렸고, 나는 어제 호텔에서 겪은 일을 다시 정리해서 호텔스닷컴 본사에 보냈다. 이런 호텔이 너희의 고객이라는 게 매우 유감이라는 말도 전했다.


Panni의 동네에 다가오니 뭔가 북적이는 게 느껴진다. 터키쉬 마켓이 열렸다. 개천 주변으로 빼곡이 상점이 들어섰다. 오래된 동네에 온 기분. 이 동네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녀의 집은 오래된 유럽식 건물. 보통 이런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층수가 높으면 캐리어 끌고 이동할 때 진땀 빼는데 다행히 1층이다. 한 층만 올라가면 된다. (유럽은 우리의 1층이 0층, 2층이 1층이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위로부터 전했다. 이제 마음이 좀 편한지, 내가 사는 도시에서 이런 일을 겪어 미안하다고 했다. 집 사용법을 천천히 설명해준 뒤 그녀는 떠났다. 다시 혼자다.


방에 널부러졌다. 소파에 누워 방을 찬찬히 구경했다. 아늑하다. 구조도 예쁘고 조명도 예쁘고 포스터도 예쁘고 책장도 예쁘고 바깥 풍경도 예쁘고 다 예쁘다. 누워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 이대론 안되겠어서 밖으로 나왔다. 터키쉬마켓을 이리저리 살폈다. 맛있어 보이는 게 많았지만 입맛이 없어서 구경만 했다. 그러던 사이 또 비가 내렸고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장터 음식을 먹었다. 비 속에서 음식을 먹는다는게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사마시고 들어와 다시 누웠다.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앨범을 틀었다. 베를린에 와서 듣는 베를린 필하모니의 연주는 왠지 더 낭만적인 기분이 들었다. 말러 교향곡 제5번 4악장 아다지에토.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면 종종 듣는 곡인데 오늘따라 이 곡이 큰 위로가 되었다. 아쉽게도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은 모두 매진이다. 어쩔 수 없다. 미리 준비하지 않은 자는 그것에 맞는 여행을 해야 한다. 지금은 베를린에 누워서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바탕 또 엉엉 울고는 다시 밖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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