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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등대 Aug 26. 2023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프롤로그

https://youtu.be/jZm7qRb26C4?si=2zdukVZ0l7xhNb2m

제이클레프 -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만약 노래로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이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은 나와 주파수가 맞지 않는다. 나는 나무 하나를 끝도 없이 파고들다가 뜬금없이 바다의 수심을 생각하기에 이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풀거리는 빈 과자 봉지에도,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도 별 생각을 다 한다. 생각들 때문에 물리적으로 머리가 무거울 때도 있다. 그럼 생각을 안 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 상태를 자동 로그인 시스템에 비유하곤 한다. 생각은 자동으로 내 머릿속에 로그인한다. 그것들을 최대한 뱉어내기 위한 용도로 공책을 샀다. 그러나 이렇게 사소한 걸 써도 될까, 정말 쓸데없는 것 같은 이 생각을 굳이 기록으로 남겨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어디선가 그런 문장을 읽었다. “삶은 고귀하나 일상은 너무 더럽다.” 인생은 고귀한 것인데 그 인생을 구성하는 하루하루는 왜 이리 진창과 같은지. 힘들고 버겁고 별 볼 일 없는지. 이 한탄의 문장이 나를 오래 울렸다. 문장을 한참 곱씹었다. 그랬더니 문장이 뒤집혔다. 그 힘들고 버겁고 별 볼 일 없는 일상이 모여 고귀한 삶이 된다. 그러니까 사소하고 무용하고 어두운 이 일상의 생각들이 곧 나의 삶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무리 작고 쓸모없어 보이는 생각이라도 최대한 놓치지 않고 기록하려 애썼다. 어느새 공책은 정말 사소한 대상으로부터 시작된 생각들의 조용한 파티장이 되었다.


그 조용한 파티장에 당신을 초대한다. 나처럼 생각이 너무 많아서 이따금씩 물리적으로 머리가 아픈 사람, 진지-쟁이(벌레를 칭하는 그 단어는 예시로라도 쓰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듣곤 하는 사람, 일상 기록에 진심인 사람, 다른 사람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가 궁금한 사람, 그냥 지금 심심풀이 땅콩이 필요한 사람 등 누구든 ‘당신’이 될 수 있다. 누구든 가볍게 들어와서 무겁게 앉아 있다가 갈 수 있는 곳이기를. 이것은 나를 향한 주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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