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소릿고>#3

제1장 무녀의 길(1)

by 취중진담

알아두기

1. 벌막:바닷물로 소금을 만들기 위한 옛 시설. 가마솥 같은 데 염수를 끓여 증발시키고 남은 앙금으로 소금을 만드는 곳.

2. 염정:바닷물이 쓸려나간 후 남은 물이 고이게 만든 웅덩이.

예전 소금은 썰물시 염부들이 물지게를 지고 염정까지 가서 염수를 길어서 벌막으로 옮긴다.

염정에 갇힌 바닷물은 일반 바닷물보다 염도가 높다.

3. 당골: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세습무의 다른 표현

4. 무구:무당들의 도구

5. 강신무:세습무와 반대로 신이 제대로 내려와 내림굿을 받은 무당. 만신의 다른 표현

6. 아전:관아의 낮은 벼슬아치




월녀


벌막의 굴뚝 위로 연기가 오른다. 기세가 매섭다. 굴뚝이 미처 토해내지 못한 연기는, 갈대지붕 틈새를 비집고 빠져나온다.

벌막 안 가마솥에서 바닷물은, 끓고 뒤집히고 엉키며 수분을 날리고 있다.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서야 하얗게 결정하는 소금. 그리하여 입맛 잃은 자에게 맛이 되고, 지쳐 쇠잔해진 자에겐 피가 되어, 만물의 생명을 살린다.


"그랴. 버려야제, 버려야 하고말고."


월녀는 자신의 몸에 깃든 버려야 할 것들도 저 염수의 수분처럼 휘이훠이 날아가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바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드넓은 갯벌 위로 석양빛이 떨어진다. 키보다 긴 물지게를 어깨에 걸머맨 사내들이 석양빛 가운데로 미끌어져 들어가고 있다. 판자때기에 실린 몸을 나아가게 하는 것은 진흙을 밟은 한쪽 발이다.

염수를 물지게로 퍼다 날라 가족을 먹여 살리는 사내들. 그 중에는 채선아버지도 있다.


"아부지..."


월녀는 눈으로 남편을 좆으면서 입으론 아버지를 불렀다.




월녀의 아버지도 평생 뻘밭을 기었다. 몸보다 큰 물동이 두 개가 날만 새면 내리누르던 양 어깨엔 피멍이 빠질 날이 없었다.

이웃 고을에서 대대로 아전을 했다던 아버지의 집안. 그럼에도 아버지는 늘 배가 고팠다고 했다. 마른 목구멍으로 넘어간 바람이 창자를 채우면 창자 속에선 고래아우성이 들렸다. 그래, 개도 엽전으로 목걸이를 해걸고 다닌다는 이곳으로 소금밥을 먹으러 왔다.

그랬으면 좀 잘 살지. 하필 당골을 만났을까.


-그런 소리 말어. 사람 살리는 거야 소금이나 당골이나 다를 거 없는 거니께.


아버지는 무구를 직접 만들어줄 정도로 무당인 어머니를 끔찍히도 아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가 바랐던만큼 영험하지 못했다. 굿판에서도 다른 강신무들처럼 신을 들이지 못했으며, 마음에 원혼 깃든 이들을 달래주지도 못했다. 당골인 어머니를 만나 자신을 낳은 아버지가 월녀는 그래서 더 원망스러웠다.




검당포에 물이 빠지고 마을 남자들이 물지게를 진 채 갯벌로 나가면, 어머니는 신방 문을 걸어잠근 채 가락을 뽑아대곤 했다. 진짜 무당의 그것에는 뒤꿈치도 따라잡지 못하는 가락이었다. 다른 강신무들의 노래에서처럼 번뜩이는 신명이나 활력 따윈 애초에 없었다. 도리불수 모초단에 청저고리 지어입고 허울 좋은 양반님네 연회에나 불려가 노래나 할 기생의 간드러진 음색, 딱 그것이었다.

월녀는 어머니같은 선무당 말고 만인이 우러러보는 대만신이 되고 싶었다.

이왕지사 무당 팔자 타고 났으면 하늘같은 대만신이 되어야 했다.


"그란데! 내는 왜 이런겨어 왜!"


악다구니를 써봐도 시원칠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월녀가 아니었다. 그녀에겐 딸 채선이 있었다.


"오냐, 이년..."


채선의 모습을 떠올리자 복장에 떡덩어리가 걸린 듯 꽉 막혀올라 왔다. 어머니 김당골에게 물려받은 자신의 피가 채선의 몸속에도 흐르고 있음을 너무나 잘 아는데,


"그란데! 그란데 워쪄서!"


왜 포기할 수가 없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답답하기만 했다.

노래 때문이었다. 그렇다. 채선의 노래라면 천지의 신님들을 감동케 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 노래로 신님의 마음을 살 일이다. 어떻게든 신님의 마음을 흠뻑 얻어 고것의 핏속에 흘러다니는 요사한 기운을 싹 걷어내야 할 일이다. 그리하여 이 고을에서 제일 가는 만신을 만들어야 한다.


"내림굿을 해줘야 하는 겨, 내림굿을!"


하지만 무슨 돈이 있어 그 비싼 비용을 감당한단 말인가.


"아녀, 지성이믄 감천이라 혔어. 해 줄겨. 내 이 몸뚱어리를 팔아서라도 고년 내림굿은 기어이 해 주고 말겨."


아랫도리를 수평선 뒤로 감추는 해를 향해 입을 꽉 깨문 월녀는 커다랗게 팔을 둘러 합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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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릿고 표지3.jpg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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