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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궁금할 때

by 당구와 인간

칠 때마다 아쉬움을 안겨주는 당구. 실수하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돌아서면 후회를 건네주는 당구. 쏟아지는 반성을 쓸어 담아 자기 계발한다지만 욕심 채우기가 여간해서 쉽지 않다. 해도 해도 미련이 남는 인생과 너무 닮는다. 때로는 내 능력밖이라는 생각도 든다. 죽어봐야 저승 맛을 안다든지, 살아 있을 때 잘하지, 나이 먹어 철드는 뭐 이런 세속적 소리들 때문이다. 오늘도 마음 달래려 당구장을 기웃거리는 내 모습.


웬일인지 당구장이 조용하다. 함께 칠 사람도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어떡하나 고민도 잠시 구석진 당구대에서 딱! 딱! 공 소리가 들린다. 치수 낮은 친구가 혼자 연습을 한다. 실력차가 많이 나지만 가르쳐 줄 욕심에 같이 치자고 권해보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들이 온다고 한다. 휴가 나왔다며 함께 치기로 약속했다나. 이런 멋쟁이 아빠는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당구장마다 꼭 출현하여 주위를 흐뭇하게 만드는 청량제 역할을 한다.


친구는 아들한테 '당구 칠 줄 아냐'라고 물었을 것이다.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아들과 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쳐 본 경험이 있는 당구라는 스포츠. 아니라면 국적을 의심해봐야 할 정도로 당구장 문화는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분명 지점이 얼마냐고 물어보며 견주었을 것이다. 그리곤 곧장 경계의 눈빛을 늦추지 않았으리라. 혹 짠 당구가 아닐까?라는 생각은 자동적이기 때문이다. - 말 많고 탈 많은 핸디제도가 부자지간에 재미를 건네주기도 하는구나. -


예부터 남자가 사회생활 하려면 사구 200점 정도 쳐야 한다는 풍문이 있다. 아들도 딱 고만고만한 실력인 것 같았다. 둘이서 토닥토닥 말없이 당구공만 주고받는다. 플루크가 터졌다. 요란한 소리가 마치 대화라도 좀 하라며 부추기는 것 같았지만 가벼운 제스처로 응대한 채 여전히 당구공만 토닥거린다. 어딜 가나 부자지간은 말을 아끼나 보다. 아들의 어색함을 보니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눈치다. 분명한 건 장시간 치지 않을 거라는 거다.


친구가 아들을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속에 부자간의 서먹함을 덜어내려는 속마음도 숨어있을 테다. 아들의 미래를 그리며 훌륭하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지 않을까. 승패를 떠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짧은 시간이래도 함께 큐를 잡는 그 순간이 중요할 뿐이다. 아빠가 큐로 아들에게 말을 건넨다. 탁! 탁! 아들은 묵묵히 대답하고는 있지만 알아듣는 눈치가 아니다. 이를 눈치챈 아빠가 또다시 말을 건네보지만 아들은 속내를 담아내지 못한다. 침묵 속에 서먹한 정적을 큐로 달랠 뿐이다. 탁! 탁!


내 어릴 적도 그랬다. 난데없이 아버지가 다마장에 가자신다. 나도 어릴 때 쳐봤다면서 당장에라도 일어설 기세로 보채신다. 허구한 날 당구장에 사는 아들내미를 못마땅해하셨는데 어인일로 당구장을 가시자는 건지. 표정관리도 못한 채 발걸음을 따라가기 바빴다. 괜히 죄짓고 끌려가는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어떻게 쳤는지 기억에도 없다. 순간순간 장면만 떠오를 뿐.


가끔 인생이 궁금할 때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그때마다 아버지의 어설픈 스트로크가 눈에 밟히곤 한다. 탁! ,,,,,,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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