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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Jul 23. 2023

밀어 치기의 함정

당구장에서 ~ 16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당구경기가 펼쳐진다. 생방이든 재방이든 교습이든 아무 때고 내가 원하는 장면을 마음껏 볼 수도 있다. 소싯적 라디오에 귀 기울이며 고교야구 중계를 듣던 때와는 판이한 어마어마함이다. 채팅창으로 따끈따끈한 정보를 교류함은 물론이며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기도 한다. 수시로 부정적 격한 토론이 이어지는가 하면 논란의 중심에서 관심을 얻으려는 이들도 적잖게 출현한다. 와중에 수익이 창출되기에 상큼한 아이디어만 있다면 짭짤한 수입도 보장되는 것 같다. 


월드 선수들이 출동하는 날이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시청을 고수하게 된다. 영화보다 재밌는 당구쟁이의 행복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덤으로 네티즌들의 댓글 놀이에 참관하며 재미를 느낄 때도 없잖다. 게임이 지루할 무렵이면 어김없이 읽을거리가 툭하니 튀어나와 논란을 야기시킨다. 여러 의견을 읽다 보면 모두가 당구의 신처럼 느껴진다. 어쩜 그렇게 설명을 잘하던지. 어지간한 입담으로 한마디조차 거들지 못한다. 명색이 입 당구의 달인들이 다 모여든 것 같았다.


한 날 유럽 선수가 신들린 사람처럼 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선수다. 체구가 좋아 긴 팔에서 뻗어 나오는 중후함에 빠져들며 ‘참 당구 잘 치는 사람 많다.’라고 생각하던 차, 이를 본 네티즌의 댓글에 수 초간 채팅창이 조용해졌다. “전부 끊어서 치고 있구먼, 누가 밀어서 친다고 했냐?” 목구멍에 사이다를 통째로 들이부은 통쾌함이 몰려왔다. 인정한다는 분위기의 정적이 흐르자 너도나도 수긍하는 눈치를 엿볼 수 있었다. 다들 뜨끔했던 것이었다. 

 

초보들이 스트로크를 지도받는 과정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 있다. 밀어 치라는 소리다.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이 방식은 시작부터 오류에서 출발한다. 큐를 일자로 곧게 밀어야 한다고 못을 박고 있지만 어느 지점까지 밀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채 모호한 지점만을 상상하며 큐를 내뿜게 된다. 큐를 앞으로 내미는 것이기에 밀어서 쳐야 한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지도 않는다. 큐를 당기는 것도 아니니 틀린 말도 아니다. 당연하게 받아들여 곧게 밀기만 할 뿐이다. 


다음 단계로 스트로크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주로 페트병 구멍 속으로 큐 끝을 집어넣거나 조준점이 있는 기구를 세워두고 곧게 뻗어서 맞춰내는 동작을 하는 것이다.  머릿속은 온통 일자로 밀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다른 무언가를 상상해 볼 여력 없이 큐를 내뿜는 동작만 반복하고 있다. 


자신감이 생겼다. 실전을 치러보는 기회를 서두르게 된다.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기쁨으로 공을 치면 다 맞을 것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막상 겪어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표현이 되었다 안 되었다 이 생각 저 생각 모호함만 몰려온다. 모호함을 따지고 또 따지다 보면 잠시 사라질 때도 있다. 잠깐이다. 돌아서면 또다시 모호함이 발생하는 아이러니함은 당구가 우리에게 건네주는 영원한 숙제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 크는 아이처럼 당구도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 같다. 잘못된 습관이 굳어지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누구나 곧게 뻗는 동작은 자신 있어한다. 단순하게 이 동작 하나만을 보며 당연하게 밀어서 쳐야 한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 밀어서 치는 게 잘못된 방법이라고 꼬집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끊어서 치라는 소리도 아니다. 밀든 끊든 고 점자가 될 수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면야 스트로크의 깊이를 따질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좀 더 잘 치기 위해서다. 쓸데없는 방황을 줄임으로써 빨리 그 길에 도착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밀어서 쳐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마지막 지점에서 큐 끝이 흐려지기 쉽다. 끝이 죽는다는 표현이 잘 들어맞는다. 끊어서 치는 습관은 큐 끝이 멈추지 않고 뒤로 빠져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확도가 떨어지게 된다. 밀어서 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지점까지 끊어 놓는 것으로 생각해 보자. 얼핏 들으면 밀어서 치는 것과 끊는다는 것은 결국 같은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행위의 과정은 분명 격을 달리하는 표현을 요구하기에 서로 다른 결과물로 쪼개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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