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쫓기느라 허둥지둥 시간 참 빨리도 도망간다. ‘여유로움이 무엇일까.’ 이 질문조차 사치라는 생각을 품게 되는 세월이 겹친다. 내 것을 내려놓으면 한결 수월해진다는 이치를 철학이 전해준다지만 행여 평생을 안고 가라면 어찌 해야 하나. 고장 난 시계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뭐 그렇더래도 아프지 않다면 다행으로 생각해야겠지. 통치의 장난 속에 비움의 철학이 내포되어 있다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너무 벗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속에 내가 있기에 비워내는 쓸쓸함을 그저 즐겨야 한다.
시계는 쉴 틈이 없다. 그래서일까, 내 모습도 초시계 바늘을 닮아간다. 기껏해야 커피 한 잔 훌쩍일 때가 그나마 여유로운 시간이다. 코 흘릴 때 쉬는 시간은 고무줄 끊느라 바빴는데, 커피믹스 마시며 쉬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담배 한 개 피를 입에 물고 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상상을 해보지만 누구나의 미련으로 그칠 뿐이다. 오늘 하루도 별 탈 없이 무사하길 바라야겠지.
공구를 챙기려는데 냥이 한 마리가 자재 더미에 숨어있다. 슬그머니 인기척을 건네줘도 도망갈 생각을 않는다. 쓰다듬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살짝 안아도 가만있길래 실내로 데려와서 부랴부랴 먹을 것을 챙겨줬다. 깨지락거리더니 입에 맞는가 보다. 허겁지겁 잘도 먹는다. 알고 봤더니 다리 밑에서 태어난 고양이였다. 근처 사는 아주머니가 먹이를 챙겨줘서 잘 안다고 한다. 새끼 중 덩치가 가장 작아서 ‘콩이’라고 이름도 지어줬단다.
‘콩이’는 그날부로 눌러앉아 버렸다. 예전부터 ‘고양이는 먹이 안 주면 도망가버리고 개는 도망가지 않는다.’라는 소리를 들은 터였다. 그래서일까,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하루 이틀 며칠이 지났건만 마땅히 갈 데도 없나 보다. 심심하면 다가와서 부비부비 야옹거린다. 요물이라더니 은근히 행세까지 하기에 없던 정도 붙으려 한다. 참새를 입에 물고서 잡았다며 자랑하지를 않나, 뱀이며 쥐까지 물고 와서 놀라게 하는 재주도 보인다.
한 날 고양이가 갈팡질팡하며 실내를 온통 휘젓고 다닌다. 툭하면 '야옹'거리면서 말을 건네 오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길이 없다. 밥 주는 일밖에 할 수 없으니 서로가 답답하다.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 밖으로 뛰쳐나가더니 해가 저물도록 들어올 생각을 않는다.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온몸에 이슬을 잔뜩 묻히고서 나타났다. 밤새도록 뭐 하다 이제 왔냐며 잔소리를 쏟아붓지만 들은 체도 않는다. 허기진 배를 채우더니 이내 배꼽을 드러내며 곤히 잔다. 많이 피곤했나 보다.
잠시 얽히고설킨 것도 세월이라고, 어느새 새끼들이 아장거린다. 수컷 ‘고등어’와 암컷 ‘소심이’다. 어쭈! 엄마 따라 문밖으로 외출도 한다. 뛰는 모습도 엄마와 판박이다. 따뜻한 햇볕 아래 하늘거리는 풀숲을 헤집는 모습이 정겹다. 어미는 놓칠세라 이리저리 고개 멈출 새 없다. 뛰놀았다고 쉬 마려운가 보다. 텃밭을 온통 헤집는 덕에 뒤치다꺼리하느라 성가시지만 그래도 좋다.
그날도 따뜻한 햇볕 아래였다. 그만 놀고 들어가자는데 트럭 한 대가 ‘휭’ 하니 등짝으로 바람을 날린다. 빨리 오라며 고개 돌리는 순간 농로에 붉은 자욱이 선명하게 비친다. 고등어다. 이제 갓 근지러운 발톱을 다듬기 시작했는데, 원숭이처럼 나무 위를 잘도 오르던데, ‘코 뽀뽀’를 강제로 해버린 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던 그 모습을 어떻게 잊어야 할까.
황급히 삽을 들고 텃밭 구석에 묻어줬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혹시 다른 짐승이 파헤칠까 봐 대리석 타일을 그 위에 덮어뒀다. 그래도 가슴에 뭔가가 짓누르는 느낌이다. 판 위에 돌멩이 하나를 비석이라 생각하며 살포시 올려줬더니 그제야 마음 조이던 기운이 사르륵 녹아난다. 다음 날이 되고 그다음 날이 되어도 머릿속에서 녀석이 맴돈다. 공장 입구에 ‘고양이 보호구역 최저속도 30’이라고 팻말을 붙여놨더니 한결 홀가분해졌다. 내 모습이 보여서일까, 애초부터 지키는지 않는지는 관심 두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