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 Toliet

by 당구와 인간

냥이가 텃밭을 헤집으며 볼일을 본다. 강아지는 대충 덮는 시늉 하지만 고양이는 의외로 꼼꼼하다. 눈으로 확인하며 배설물이 안 보일 정도로 흙을 끌어모아 덮는다. 기특하지만 한편으로는 속상하다. 여기저기 무른 땅을 파해치는 통에 심어 놓은 모종 뿌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쫓아다니며 흙을 추슬러야 하니 살짝 성가신 일이 된다. 생명을 품고 있는 자연이 냥이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기에 화내지도 못한다. 온천지가 아스팔트라 다른 곳에 해결하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뒷집 아주머니 밭에도 녀석들이 가는 모양이다. 속상해 죽겠다며 하소연하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다. 다소곳한 말투가 신경질적인 어투로 변하면서 감정이 격화될 때까지 이르렀다. 옆집 할머니도 정원을 다 파헤쳐 놓는다며 덩달아 화내신다. 주위에 길고양이가 수두룩한데 단지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집 냥이가 죄를 온통 덮어쓴다. 길냥이를 집냥이로 키운 것이 죄가 된 셈이다.


어딜 가더라도 길고양이를 볼 수 있는 광경은 낯설지 않다. 도심지 쓰레기통 주위는 이미 냥이들 아지트가 되었고 천적 자동차에 치여버린 몸뚱이는 까마귀가 감쪽같이 처리해 버린다. 별도의 생리 기간이 없기에 틈날 때마다 암컷의 배가 부풀러 오른다. 포획하여 배를 움켜쥐는 일도 어지간한 예산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라 적당한 수고로움으로 지켜보기만 한다.


한날은 마을 이장님과 담화를 나누던 중 길고양이 예기가 나왔다. 예전에 밭을 해코지한다고 화내신 기억이 있기에 조심스레 듣고만 있었다. 그날도 같은 내용을 반복하시지만 그렇다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유심히 살펴보니 모종이 자라나면서부터 그 주위를 파헤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물을 심었을 때 두세 곳 정도 망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감수해야 않겠냐며 말문을 열었더니 조용히 수긍하는 눈치를 보이신다.


정든 고양이를 내다 버리지는 못한다. 설사 버린다 해도 누군가에게 사진이라도 찍힌다면 신문에 날 일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찜찜한 기운이 가시지 않던 차 ' 화장실을 만들면 덜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텃밭 모퉁이에 자리 비워 모래 열 자루를 부었다. 이제 맨땅 긁을 일 없으니 발톱도 닳지 않겠지. 부디 오래도록 재미나게 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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