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도 X맨이 있다

아군인 척 숨어 있는 적이 더 무섭다.

by 움직이는케이

나는 내편인 척 섞여 있다가, 상황이 바뀌면 누구보다 먼저 등을 돌리는 사람을 X맨이라 부른다. 내가 만난 X맨은 타인의 불행을 자기위안으로 삼았다. 자신의 결핍을 남과 비교하며 상대방이 더 불행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는 질투와 열등, 그리고 낮은 자존감이 만든 가장 못난 심리였다.



나의 X맨은 전 회사의 부장이었다. 나는 육아휴직 여파로 임금과 승급이 완전히 꼬였고, 업무는 쏟아지지만 형평성을 논하기에 처우는 이미 최악이었다. 이런 나를 보며 '달려라 하니'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회사에 부당함을 알렸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사회는 억울함을 호소만 하라 했을 뿐, 뾰족한 해결책은 내어주지 않았다.


부장은 오랜 세월 옆에서 지켜보며, 일과 책임 속에 파묻힌 나를 항상 위로하는 척했다. 그런데 내가 승진하자 태도가 돌변했다. 누구보다 축하해 줄 것 같았던 그는 내 승진 발령에 '축하ㅋ'라는 단답으로 갈음했다. 겉으로 떨떠름한 축하인사를 건네고 뒤에서는 내 뒷담화를 널리 퍼트렸다. 수십 년 다녀도 못 단 직책을 내가 달았다는 사실이 그의 자격지심을 건드렸던 것이다.


뒷담화도 우스웠다. 앞서 타 부서장이 내게 본인 부서로 올 것을 권유했으나 거절한 적이 있었다. 내 승진 소식에 본인 부서로 올 거라 혼자 오해한 부서장의 분노가 험담이 되어 돌아왔고, 부장은 그를 앞세워 누구보다 열심히 내 뒷담화를 실어 날랐다.


더 악질적인 건, 내 험담을 다른 사람 말을 빌려 떠들면서도 마치 날 위하는 척 내게 직접 전해줬다는 것이다. 그의 "호의"는 무려 4개월 동안 이어졌다.



자연스레 거리를 두었지만 씁쓸했다. 내 곁에 있던 건 동료가 아니라, 내 불행으로 숨 쉬던 X맨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번에 식별 가능한 적군과 달리 아군인 척 숨어 있는 적이 더 무섭다.


X맨들은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도 보이지 않는 말과 행동 속에서 언뜻 본심을 드러낸다. 기저에 깔려 있는 본심까지 완벽히 숨기지 못하는 듯하다. 무심코 뱉은 작은 본심은 시간이 지나면 높은 확률로 점점 더 선명한 색을 띠게 된다. 그래서 말의 기저에 나를 상처 주려는 의도가 있는지 여부 파악을 하는 게 꽤 중요하다. 그 신호를 무시하면 내 에너지만 고갈된다. 친분이라는 핑계로 신호를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다. 이전에는 좋은 관계였더라도, 지금은 아닐 수 있다. 상처 주는 관계에 미련 두지 말자.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기 필요에 따라 관계를 맺는다. 그 안에서 예의를 지켜 관계를 쌓는 사람들과 자신의 감정으로 관계를 무너뜨리는 사람들을 구분해야 한다. 남의 불행을 자기 위안 또는 자기 행복으로 삼는 사람과의 관계는 언젠가는 깨질 수밖에 없다.



관계에서 옥석 가리기는 결국 선택의 문제다. 언젠가 선택이 필요할 때는 상대를 잘 관찰하고, 무언의 신호를 읽고, 경계를 세워라.


X맨을 걸러낼 기회는 반드시 온다.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 중독되지 말고, 때론 판단력 있게 로그아웃하는 결단도 필요하다. X맨을 방치하면 나와 내 주변까지 오염된다.


친했어도 X맨이면 미련 없이 로그아웃하기.
그게 내가 인간관계를 지키는 방법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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