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기대하지 않는 삶

날숨에서 들숨으로

by 움직이는케이


기대하지 마



요즘 내가 자주 복기하는 말이다. 기대를 내려놓는 건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바람을 거두고, 현실적인 선에서 마음을 비우는 과정이다. 의외로, 이 과정이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기대는 관계를 세우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너뜨리기도 한다. “이 사람이 이렇게 해주면 좋겠는데, 왜 못 하지?” 싶은 마음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감정을 넘어 내 욕심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기대가 깨질 때 생긴다. 높은 기대는 깊은 실망을 부른다. 내 마음의 크기와 상대가 같을 거란 계산이 어긋난 순간, 돌아오는 건 그에 대한 실망이다.


기대는 무관심 속에선 자라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마음을 쓰고, 마음을 써야 기대가 생긴다. 이 감정은 관심의 부산물로,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닌다. 관계의 부담은 이 그림자를 지워낼 때 줄일 수 있다.


날숨 보단 들숨인 삶


그러던 어느 날, TV를 보다 개그우먼 심진화가 말하는 ‘들숨과 날숨 법칙‘이 귀에 꽂혔다. 평생 함께해야 하는 관계일수록, 날숨보다는 들숨이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무슨 말을 듣더라도 ‘하’ 란 날숨을 뱉기보다 ‘헛’ 하는 들숨을 마시면 관계의 온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삶의 지혜가 깃든 이 말이 한참을 귀에서 맴돌았다.


그러다 문득, 모든 관계에서 ‘기대’라는 두 글자를 지워보니 길게 내쉬던 날숨, 내 한숨이 줄었다. 기대를 거두자 모든 상황이 ‘뜻밖’으로 다가왔다. 전혀 생각지 못한 축하를 받고, 예상 밖의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처럼. 내가 기대했다면 당연했을 이 상황들이 오히려 뜻밖의 기쁨으로 찾아왔다. 그때마다 내 곁엔 들숨이 뒤따라왔다.


예전엔 나도 기대부터 했다. 항상 내가 준 마음의 크기만큼 돌아오길 바랐다. 돌아오지 않는 마음에 서운함 가득했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난 의도적으로 기대를 멈춘다. 들숨을 삼키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였다. 이 작은 노력은 꽤 큰 변화를 가져왔다. 더 이상 상대에게 내어준 내 마음이 아깝지 않았다. 또 내가 만든 기대 속에서 실망하던 내가 사라졌다. 날숨을 들숨으로 바꾼 그 순간부터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선물처럼 느껴졌다.


관계는 본질적으로 주고받는 속도의 차이를 안고 있다. 누군가는 크게 표현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행동한다. 즉각 반응하는 사람도 있고, 느리게 마음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다. 이 차이를 저울에 올려 비교하면 관계는 뻣뻣해진다. 내가 애쓴 만큼 상대가 반드시 보답한다는 보장은 없다.


관계는 서로의 호의와 마음이 오간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다. 등가교환이 아니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기대치’가 아니라 ‘자발성’이다. 내 욕심이 기대가 되지 않으면 관계는 자유롭고 유연하다.


나를 지키는 일

여전히 기대하는 마음을 내려놓기란 참 어렵다. 특히 가족 같이 가까운 관계에서는 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결국 관계에서 혼자 기대하고, 혼자 상처받을 나를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인 셈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금껏 살아온 세월을 거슬러 자신을 변화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상대에 대한 기대는 대부분 내 욕심일 수 있다. 내 욕심을 내려놓아야, 내 마음이 살아남는다.


“기대하지 마.“ 이 말을 되뇌일 때마다 나는 조금씩 가벼워진다.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든 나는 흔들리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마음에 상처받지 않는다. 기대를 거둔 자리엔 들숨이 새로 자라난다.


그렇게 나는, 관계 속에서 나를 지킨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