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관계의 온도

모든 걸 알지 않아도 괜찮아

by 움직이는케이

20대에는 친구끼리 서로 모임에 빠지지 않으려 필사적이었다. 누구 하나 빠지면, 그 친구는 서운해했고 나머지는 괜히 눈치를 봤다. 그만큼 '우리'라는 틀 안에 속해 있어야 마음이 편한 시기가 있었다. 그 시절엔 관계를 지키는 게 서로에 대한 의리와 충성처럼 느껴졌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관계를 대하는 지금의 모습은 꽤 다르다. 누가 오고, 누가 빠지든 자연스럽다. 예전 같으면 마음이 흔들릴 일도, 이젠 그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긴다.


관계란 고정된 선이 아니라 흐르는 물길 같다. 한때는 한 곳으로 모여 세차게 흘렀던 물이 어느 순간 갈라지고, 다시 다른 곳에서 합류하기도 하는 것처럼, 새 바람이 불면 관계도 물결 따라 흐른다.


그래서 이제는 흐름에 맡긴다. 서로의 인생이 달라지고, 관심이 달라지고, 그 안에서 관계의 결이 바뀌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어릴 땐 그게 서운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게 성숙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의 관계는 익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뜨겁게 끓어오르던 관계가 은근한 불로 천천히 익어가면서, 자극은 덜해도 오래 머물 수 있는 온기를 지녀가고 있다.


신기한 건, 이 사실을 내가 이해하게 되면서 오히려 지금 맺고 있는 관계들이 더 편해졌다는 점이다.


어릴 땐 상대의 모든 걸 알아야만 진짜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무슨 고민이 있는지, 서로를 얼마나 아는지가 곧 친밀함의 척도처럼 느껴졌다. 친구랑 1시간 넘게 통화하고도 “내일 다시 얘기해”라며 끊을 정도로 서로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했다. 서로의 전부를 알려고 애썼고, 그렇지 않으면 왠지 서운했다.


하지만 지금은 부담이 없다. 상대의 전부를 알지 못해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모든 걸 공유하지 않아도 따뜻할 수 있고, 각자의 영역을 지켜주면서도 가까울 수 있다.


오히려 서로에게 얽매여 있던 관계보다 지금처럼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는 관계가 더 편하다. 그게 어른이 되면서 생긴 힘인 것 같다.


물론 관계마다 각자의 역할과 모습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는 지금의 관계들과 내 모습이 꽤 좋다.


설령 내가 빠진 채 새로운 관계가 꾸려지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관계는 유동적인 만큼, 서로의 상황이나 결이 달라지면 자연스레 다르게 흘러간다. 이건 끊김이 아니라 재편에 가깝다.




관계는 끊임없이 변한다. 그 시절엔 그 시절의 우리가 있었고, 지금은 또 지금의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


관계를 유지하는 건 끊어지지 않게 붙드는 힘이 아니라 흐름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일지도 모르겠다.


인연은 붙드는 게 아니라, 남는 거라고 한다.

그렇게 난 종착지를 정해놓지 않고, 천천히 흐르는 중이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