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의 실존이란?

by Plato Won


하이데거는 말한다.

"일상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으로 들어가라."


우리는 독재를 대단히 싫어하고 혐오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회, 문화, 예술, 경제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주체성을 가지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따라 하기에 급급하다.

스스로 독재의 굴레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의 존재를 심도 있게 탐구하였다.


'세계-나-존재'

인간은 존재자로서 DaSein(다자인), 현존재

상태라고 말한다.


존재하고 있긴 한데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거기'란 세상에 다른 존재자들이 함께 머물러 있는

장소인 거기에 인간이 서로 다른 존재자들과

관계하면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하이데거는 '현존재'라고 부른다.


어렵지만 너와 나는 같은 세상에 존재하지만

서로 세상과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따라 현존재의

상태는 다 다르다는 것이다.


"모두가 타인이며 어느 누구도

그 자신이 아니다.

'일상적인 현존재의 주체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인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이 아무도 아닌 사람'사이에

모든 현존재가 서로 섞여 있으면서

그때마다 자기를 드러내고 숨기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탄식이다.


인간이 자기 주체성으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염려로서의 존재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고대 그리스에 쿠라라는 염려의 신이 어느 날

강가에서 점토로 한 덩어리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지나가는 주피터에게

점토에 혼을 불어넣어 달라고 부탁을

해서 인간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이름을 쿠라라고 지으려는데

주피터가 내가 혼을 불어넣었으니 주피터로 해야

한다고 우겼다. 그 말을 들은 대지의 신 텔루스가

나타나 뭔 소리냐며 흙으로 빚었으니 텔루스

라고 이름 지어야 한다고 싸움이 벌어졌다.


한참을 다투다 결론이 나지 않자 시간의 신

사투르누스에게 판결을 내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난감해진 사투르누스는 모두가 불만이 없게

판결을 하는데 주피터는 혼을 불어넣었으니 인간이

죽으면 혼을 받고, 텔루스는 육체를 주었으니 살아

있는 동안 육체를 가져가고 쿠라는 인간을 빚었으니

살아 있는 동안은 쿠라의 것으로 하라고 판결을

내리고 그 이름은 후무스(흙)로 만들었으니

호모, 즉 인간으로 부르도록 했다는 신화 이야기를

소개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신화 이야기처럼 실존하는 동안

철저히 염려에게 지배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염려의 신 쿠라 마저도 복종

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시간의 신, 사투르누스.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시간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의 존재는 시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존재를 탐구했던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 가능성은

무한히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직시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불확실하지만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죽기에 충분할 만큼

늙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불안해하는 순간

즉 죽음으로 인한 불안을 느끼는 순간 실존 자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고 하이데거는 말했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앞서 달려가

봐야 한다고 한다. 죽음으로 달려가 보라는 건 죽음

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도망가지 말고 언제든 나에게

닥쳐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이야기하는 양심이란 도덕적 삶이

아니라 실존적인 삶을 살라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말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실존으로서의 현존재인 나는

매 순간 죽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한다. 어제의 실존

인 나는 죽고 오늘 새로운 실존인 내가 있는 것이다.

오늘의 나는 또 죽고 내일의 나는 또 새롭게 태어난다


'세계-나-존재'속에서 실존하는 현존재인 내가

있는데 그 주체성이 없다는 그 세계는 타인의 세계이고

나에게는 없는 죽은 세계이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라는 삶은

실존이 아니다.

내면의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의 의지로 살아가는 것이 실존하는 나로서

현존재이다 라는 것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핵심 내용이다.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는데 마음은 콩밭에 가 있으면

그 조직에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자신으로 살면서 타인의 시선으로 살면

내가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닌가?


'주체적으로 살아라'

이런 말인데 뭐 이리 어렵게 꼬아놓았지~~~쩝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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