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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Dec 22. 2020

1-1,생각열기 학습 선구자  밀  추상그림 설명


[1] 생각열기 학습의 선구자, 존 스튜어트 밀


조각그림 1.


유화  돼지 그림과 자유 여신상 얼굴 형상 그림 부분


밀의 대표 저서인 자유론은 질적 공리주의를

이론적 근간으로 집필되었으며.밀의 사상은

질적 공리주의에 기초하고 있음을 표현한 조각그림


ᆢ ᆢ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편이 낫고, 만족해하는 바보가 되기보다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이 남긴 말이다.


밀은 영국의 사상가이자 질적공리주의 철학자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양적 공리주의 철학자

이자 아버지 제임스 밀의 친구인

제러미 벤담의 저서가 자신에게 뚜렷한 인생의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다고 그의 저서에

밝힐 정도로 공리주의 사상을 근간으로 자유론을

집필했다.


밀은 질적 공리주의자로 양적 공리주의자인 제러미

벤담의 철학사상을 이어받아 질적공리주의를 완성한

철학자다.공리주의란 인간 삶의 목적이 쾌락이나

행복의 추구에 있다고 보고 공리주의의 대표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강조했다.

그는 사회는 개인의 집합체이므로 개인의 행복은 사회

전체의 행복과 연결되며,더 많은 사람이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은 그만큼 더 좋은 것이므로,'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법과 도덕을 만드는 기초로 보았다.


반면 밀은 벤담처럼 삶의 궁극적 목표를 행복으로

보았으나 쾌락의 양만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적인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는 질적공리주으를

강조했다.


밀은 육체적인 쾌락보다는 정신적인 쾌락이 질 높고

고상한 쾌락으로,정신적인 쾌락이야말로 모든 사람을

오랫동안 행복하게 해 주며,개인의 행복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본 질적공리

주의를 강조한 철학자다.


조각 추상그림 1은,

돼지 4마리의 코를 통해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돼지 4마리의 행복의 합계보다는 고뇌하는 인간의

사랑의 형상을 통해 배고프지만 사유하고 질문하는 소크라테스의 정신적 쾌락이 더 낫다는 것을 표현

함으로써,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이 질적공리

주의철학자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정신적인  쾌락을 위해서는 개인의 개성과

다수의 연론으로부터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한다는 밀의 저서 <자유론>이

질적 공리주의  사상을 근간으로 저술되었다는 것을

표현내고자 했다.


밀을 대표하는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문장은 질적공리주의자

밀의 사상과 자유론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조각그림 돼지코와 사유하고 질문하는 듯한

사람의 얼굴 형상은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조각그림 2


유화 얼굴 부분과 왕관 얼굴 뒤 건물,흑색 바탕 부분


생각열기 학습법의 선구자 존 스튜어트 밀의

학습법을 소개하는 조각그림


ᆢ ᆢ

 

"나는 진정한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세계의 개혁자가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의 행복은 전적으로 이 목적과 일치해야 한다"


생각열기 학습의 선구자,존 스튜어트 밀은

1806년 영국의 런던에서 9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제임스 밀은 영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당대의 최고의 지식인으로,공리주의 벤담과

경제학자 리카르도와도 친밀히 교류했다.


제임스


제임스 밀은 밀을 공립학교에 보내지않고

자신이 직접 아들의 교육을 전담하였는데,이것이

그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의 생각열기 천재학습법이다.


제임스는 밀에게 스스로 생각해서 알 만한 일은

노력해서 알게 될 때까지 절대로 먼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생각열기 천재학습법의 핵심은

어린시절부터 인문고전을 스스로 독서하고 정리해서

다음날 아침 아버지와 산책하며 전날 정리한 내용들을

아버지에게 설명해 보는 것이다.이렇게 익힌 내용들은

단순히 암기해서 앵무새처럼  내뱉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유하고 질문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재해석

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존 스튜어트 밀의 생각열기 천재학습법은

매우 유명해서, 시카고 대학의 허킨슨 총장이

이 교육법을 도입해서 당시 삼류대학이였던 시카코

대학을 일약 노벨 수상자를 91명이나 배출한 명문대학

으로 발전키기도 하였다.


조각그림 2의

고뇌하는 듯한 얼굴 형상은 생각열기학습을 하는

밀의 얼굴 형상으며, 머리 위 기둥은 밀의 생각열기

학습을 표현함과 동시에 생각열기학습법으로 최고

의 지성인이 된 밀이 학습의 월계관을 쓴 건으로

표현하였다.얼굴 뒤 건물은 밀의 생각열기 학습법을

도입한  시카코 대학을 의미하며,밀의 얼굴 형상의

이마 부분의 직사각형들은 밀이 어릴적 읽었던

플라톤 국가론,헤로도토스의 역사 등의 인문고전 책들을 표현함과 동시에 밀의 생각열기학습의 도움을 받아

노벨상을 수상한 91명의 시카코 대학 출신 지식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각추상그림 뒷 배경 중 회색부분은

치열히 사유하고 질문하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나

이런 학습의 과정이 있어야 생각열기학습법이 완성될

수 있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조각 그림 3


얼굴 유화 부분과 왼쪽 얼굴부분 붉은 색  배경 부분


밀을 이야기할 때 그의 정신적 동반자이자 자유론의

집필에 영감을 주었던 그의 부인 헤리언 테일러를

제외할 수 없다.그만큼 밀의 인생에서나 사상예서

영향을 미친 부인 헤리엇 테일러와의 운명적인

사랑과 정신적 동반자였다는 점을 표현하기 위해

밀의 얼굴 형상 전면에 붉은색으로 표현하였다.

붉은색은 헤리엇테일러와의 열정적 사랑과

정신적 교감을 의미한다.


ᆢ ᆢ


"나보다 더 뛰어난 사상가이며 내 생애의 영광이며, 으뜸가는 축복으로 나에게는 하나의 종교이며, 가치의 근본이며, 내 생애의 표준 같은 사람”


자유론 서문에  아내 헤리엇 테일러에 대해

밀이 극찬한 글이다.


25세가 된 밀은 운명적으로 유부녀 해리엇 테일러를

만나 21년 동안이나 정신적 교류를 이어 갔으며, 그녀의 남편이 죽은 다음 해에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그녀의 죽음으로 결혼 생활은 7년 만에 끝나고 만다.


두 사람은 사상적 동지이자 삶의 동반자였으며,

『자유론』을 공동 집필하였다고 밀은 자서전에서

밝히기도 하였다.


 밀은 말년에 프랑스 아비뇽에서 연구에 몰두하다

갑자기 병을 얻어 운명하고 만다. 그의 유해는 평생 그가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 해리엇의 묘 옆에 나란히 누워 잠들었다.


조각그림 3

고뇌에 찬 조각 그림의 얼굴 형상과 얼굴 주변의

붉은 색 조각그림은 
예순일곱의 나이로 진리에 대한 뛰어난 능력과 자유에

대한 열정적 마음을 가졌던 밀의 생애는 자유에 대한

그의 신념을 실천하는 여정이었음을 표현하고 있으며

운명적인 사랑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던 부인 헤리엇

테일러와의 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각 그림 4


바탕색을 제외한 자유론 책과 자유 여신상 유화 부분


"자유를 포기할 자유는 없다.”


밀에게 자유란 민주주의 사회를 지속적으로 진보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개인의 자유란 국가 권력에 의해

침해될 수도 있지만, 더 심각한 것은 다수의 사회 여론에 의해서 침해되는 것이라는 그의 통찰력은 탁월했다.


개인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자유를 가져야 한다.

만일 그 의견이 옳다면 인류는 진리 발견의 기회를 가질 것이며, 설사 틀렸다 하더라도 다수의 옳은 견해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는 것이

밀의 생각이다.


150년 전 자유에 대한 밀의 사유는 오늘날 자기 정체성 없이 사회의 불편한 진실에 휩쓸려 살아가는 이 시대의 지성인들에게 명치를 때리는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다수의 견해가 진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진실은 군중 속의 단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자유주의와 같이 가야 한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법으로 보호

하자는 법치주의와 연결된다.


밀은 『자유론』을 1854년 짧은 에세이로 집필했다가, 1855년 로마 의사당 돌계단을 올라가던 중 이 원고를

다시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자유론』 원고를 집필할 때 늘 하던 방식대로 원고를 두 번씩 썼다고 한다. 초고를 그대로 옆에 두고 가끔 꺼내서 문장 하나하나를

다시 읽어 생각해 보고 비판하면서 다시 써 내려갔다.


이런 집필 습관은 어릴 적 아버지와 학습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제임스 밀은 단순히 기억력에만 의존하는 학습 태도를 용납하지 않았다. 모든 단계에서 이해력이 앞서도록 훈련시켰다. 스스로 사유하고 질문해서 알 만한 지식은 노력해서 알게 될 때까지 절대로 먼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조각그림 4의

뉴욕의 자유 여신상과  밀의 자유론 책을

이성을 의미하는 푸른색으로 같이 표현하였다.


이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성립 배경은

영국 청교도들이 종교적 탄압을 피해 신대륙인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한 현대 민주주의의 본산이다.


오른손엔 횃불을 치켜들고 왼손엔 미국독립선언문을 든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의  정식 명칭은

'세계를 비치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

이다.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서 프랑스가 선물한

것으로 미국의 독립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인권,기회 등을 의미한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 유안으로 지정되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밀의 자유론이 현대민주주의

의 근간이 되었음을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자유론 책을 푸른색으로 같이 표현함으로써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혼자 우뚝선 자유의 여신상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자유론의 핵심 사상을 의미하고 진실은 군중 속의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수 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조각그림 5


전체그림


생각열기 학습의 선구자 밀은 어릴 적부터 지식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관점을 달리해서 재해석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생각열기 학습훈련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열기는 밀이 살았던 당시 영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게 했고,

남들은 보지 못했던 ‘다수결의 원칙’의 심각한 위험성을 간파하고 『자유론』을 집필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밀은 아내 헤리엇 테일러가 갑작스레 죽게 되자

아내의 유해를 묻은 아비뇽 근처에 집을 마련하고

평생 돌보며 글 쓰기에 집중한다


1859년 그의 대표작 자유론을 집필하고

2년 뒤에는 대중 민주 정치의 문제점을 비판한

<대의정부론>을 발표했다.

이후로도 <공리주의>,<여성의 종속>등을 집필했다.


밀은 오랫동안 동인도 회사에 근무하였으며

예순 살이 되던 해 정치에 잠시 발을 들이기도 하였으나

말년에는 프랑스 아비뇽에서 글 쓰기와 연구에

몰두하며 곤충기의 저자 파브로와 소풍을 갔다가

갑자기 병을 얻어 사흘 만이 1873년 3월 운명하며

그를 간호한던 양딸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은

 "나는 내 일을 다 끝마쳤다." 였다고 한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자유의 개념을 최초로 정립한

밀의 예순일곱의 삶은 진리에 대한 뛰어난 능력과

자유에 대한 열정적 마음을 가졌던 여정이었다.


그는 평생 사랑했던 해리엇 테일러의 묘 옆에 영원히

안식을 하며,죽어서도 영원한 사랑을 얻은

열정의 위대한 지성인으로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지성인이었다.


밀이 이 시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신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했으나

자유를 포기할  자유는 허락하지 않았다.”



Plato Won


○ 밀에 관계된 에피소드


수학에서 연산을 전혀 못하는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과 아침 산책을 하며 아들에게
9 더하기 4는 얼마인지 질문하자
아들이 2라고 답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유를 물었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감탄하면 천재라고
말하고 너의 생각법은 생각열기학습법이다고

칭찬했다.

아들의 대답은
아버지는 학문적으로 큰 사람이니 9 같은 사람이고

자기는 아들이고 학생이니 작은 사람이니 4이고
그래서 아버지 9와 아들 4가 산책하니 9 더하기 4는

2라고 답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왜 수학 연산을 못하는지 이해를 하고,
생각의 관점을 십진법으로 생각하는 법을 일러준다.

9+4를 십진법의 산수 계산방법으로 설명하자

 아들은 이제 산수에서도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자유론의 저자 밀은 어릴 때 한 때는
산수를 지질이도 못했던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 제임스 밀은 아들이 산수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관점을 달리해서 해석하는 생각열기의 천재라 생각하며 학습 지도를 했다.

절대로 스스로 깨우치고 이해할만한
지식을 먼저 설명해주지 않은 제임스의 교육법이

패럴랙스 교육의 핵심 가치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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