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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Dec 29. 2020

저급한 평등과 당당한 평등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이면

더 큰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착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의견을 공유하면

그것이 곧 확실한 진실이라고 믿는다면

그것도 큰 착각이다.


그런 논리라면 왕권시대에

"신이 내린 왕은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주장이나

 "다수결은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태도나

무엇이 다른가.


다수결의 원칙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은 망상이다.


진리와 도덕을 독점한 열성파 다수는

반대편을 가혹하게 압박한다.


200년 전 프랑스 정치 철학자

토크빌은 당시 신생국 미국을 여행하고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의 원칙의 폐단을 지적했다.


민주주의가 대세이고

민주주의는 곧 다수결 원칙이나

바로 여기서 민주주의의 맹점이 있으며,

이런 것이 곧 민주독재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고 보았다.


그는 누구도 도도한 민주정의 흐름을

막을 수 없으나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정이 오히려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억압할 가능성을 크다라는 것이다.


토크빌이 보기에는

평등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저급한 평등'이고

나머지 하나는 '당당하고 정당한 평등'이다.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자기들 수준으로

끌어내리면서 정의로운 일로 미화하는

저급한 평등에서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자유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했다.


대신 평범한 사람도 위대한 사람의 대열로

끌어올려주는 힘이 있는 '당당하고 정당한 평등'만이

민주주의의 자유를 지킬 수 있으며

인류의 진정한 행복과 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 토크빌의 생각이다.


독재군주는 반대파를 모두 제압할 수 없지만

법을 장악한 민주독재는 그 법으로

모든 국민을 합법이라는 가면으로

모두를 제압할 수 있다.


그리나 그 피해는  뒤에 고스란히

국민 전체의 피해로 돌아온다.

이유는 평등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저급한 평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 저급한 평등을 위해

 다수의 저편에 있는 소수의

자유를 말살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군중심리에 들떠있는 다수도

 멀지않아 자신들의 자유도 말살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이제 판이 깨지면

 다수에 섰던 그들은 더없이 자신들이 추종한

권력에 돌팔매질을 한다.


그러나 이미 국가는

 저급의 평등을 추구한 혹독한 대가를

 전체 국민들에게 희생하라며

강요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삼류 국가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토크빌은

 인간은 권력을 분별 있게 행사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무제한의 권력을 쥐는 것이

곧 타락으로 가는 첩경이라고 했다.


권력은 다수결에서 나온다.

그러나 다수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무한 권능을 가진 것은 아니니

지금은  루소의

"시민의 한 사람으로 아무리 영향력이

미미하더라도 정치를 연구할 의무가 있다"는

말을 실천해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저급한 평등이 실현된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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