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시율과 新녹시율을 높이면

by Plato Won
Plati Won 作


'녹시율(綠視率. Index of Greenness)'


내 주변의 보이는 공간에서

식물의 잎이 점하는 비율이다.


녹지율이 평면적이고 수평적인 기준이라면

녹시율은 실제 사람 시각으로 파악 되는

녹지의 총량이다.


녹시율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전의 시대는 녹시율보다는

문명률을 기준으로 삶의 질을 판단했다.


세상은 두 가지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사람의 손때가 묻어있지 않은 자연이고

나머지 하나는 인간의 손때가 묻은 문명이다고

정의하는 철학자도 있다.


인간의 노력으로 손때가 묻어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물건이나 공간 서비스를 많이 점유한 사람이

권력자이고 삶의 질이 누렸던 시대가 있었다.


이미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녹시율을 중시했다.(?^^)


루소의 말이 녹시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루소는 인간의 문명과 학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불평등은 깊어진다고 진단하며

원시 시대 자연 상태의 인간의 자세로 돌아가야

인류의 행복을 담보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세상이 광속만큼 급박하게 돌아가는 21세기,

문명사회에 지친 인간들이

드디어 자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률을 제로화하고

화석연료를 쓰지 않으려고 하고

자연이 선사하는 태양열, 풍력을

이용하려 한다.


먹거리에도 인간의 손때가 덜 묻은 유기농을 찾고

인스턴트식품보다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고

대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녹시율의 정의를 관점을 확대 해석해 보면

행동하는 반경 내에 인간의 손때가

덜 묻은 비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를 이제부터 新녹시율이라

부르기로 하자.


만약 삶의 행동반경에서,일에서의 의사결정에서

新녹시율을 높이는 것을 행동 준칙으로 삼는다면

삶의 질은 매우 높아질 것이 자명하다.


아니, 그렇게 행동하고 의사결정해야

오래 건강하게도 살고, 일도 잘 되고

성공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사업 아이템을 찾을 때 新녹시율을 소홀히

대접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하루 일과 중 新녹시율을 높이지 않으면

건강을 담보할 수도 없다.


그럴 여건이 안 된다고 푸념하지 마라.

마당에 잔디가 멋들어지게 펼쳐진 집이 없어도

주말 일찍 일어나 주변 산에 갔다 오는 것

만으로도 新녹시율을 높이는 것이다.


먹고 싶은 라면을 거부하고 채식을

하는 것도 녹시율을 높이는 것이다.


투자 대상을 고를 때도 환경 친화적 기업의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 수익률이 더 높을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法만을

겨우 지키며 사는 삶의 자세에서 벗어나

자연적으로 우러나는 내면의 양심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려는 자세를 견지할 때

보다 정의로운 삶을 살 수 있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新녹시율을 높이면

格이 다른 미래가 열리지 않겠는가.


생각은 현실이 된다.

생각은 자석처럼 같은 종류의

주파수를 다 끌어당긴다.


머리속을 新녹시율로 채워보자.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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