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by Plato Won
Plato Won 作


"글을 쓴다는 것은

앞에 쓴 글에 대한 공허와 실패를 딛고

매번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지성이자 生의 스토리텔러

고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말이다.


죽음이 다가온 그에게 기자가 물었다.


"선생님, 럭셔리한 삶이 뭘까요?"

"스토리텔링을 많이 갖고 있는 삶이

럭셔리한 삶이지."


그에게 삶이란 이야기를 차곡차곡

모으는 재미였던 것이다.


그렇게 누구보다 많은 사람과 교류하며

이야기를 쌓아온 그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실패한 인생이라

말하고 떠났다.


"내게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내 삶은 실패했다.

혼자서 나의 그림자만 보고 달려왔던 삶이다.

동행자 없이 숨 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더러는 동행자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경쟁자였다."


무슨 의미일까?


이어령 선생만큼 아래위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과 교류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런데 그는 왜 인생 끝자락에

친구가 없다고 자조했을까.


혹시 이 시대의 지성답게

세상을 너무 의무감으로 살아온 것에 대한

후회는 아닐까.


300여 권의 저서가 말해주듯

많은 이야기를 남겼지만,

정작, 자신의 소소하고 알콩달콩한 이야기는

쌓지 못한 아쉬움은 아닐까.


레비나스는 '타자의 윤리'에서

" 사랑이란 타자의 자리, 그 절대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 자리가 윤리의 출발이라고 했다.


타자를 나의 것으로 만들지 말고

그가 있는 그대로 있게 하는 그 자리가

사랑이고 윤리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선생님의 성공한 삶이란

의지의 발현이고 그것은 곧

타자를 나의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역사의 진보고

너도 좋고 나도 좋고 그래서 공동체도

좋은 것이라고 늘 이야기를 쌓아온

허무감과 중압감에 대한

반어법적 표현은 아니었을까.


글을 쓴다는 것이

앞에 쓴 글에 대한 공허와 실패를 딛고

매번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면,


오늘 나의 글쓰기는

어제의 공허와 실패를 딛고,

의무감과 중압감도 놓아버리고,

그 자리를 소소한 일상과 사랑으로 채우는

그런 글쓰기일 것이다.


오늘 다시 시작하는 글은

세네카의 글이 와닿는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는가.

불안한 풍요를 위해

삶을 끝자락까지 밀고 가는

愚를 범하지 마라."


근거 없는 근심과 의미 없는 쾌락에

인생을 허비하기보다

지금 있는 벗과 지금 쓰는 글과

지금 이 시간을 즐길 것이다..


삶은 매번 다시 시작하는 글쓰기다.


이어령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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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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