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장자의 외편 15가지 이야기

패럴랙스 인문아트 <노자와 장자> 3권 5과,장자 외편 정리

by Plato Won
Plato Won 作,비가 자연의 순환의 결과이듯,自快도 道의 순환의 결과이다.
Plato Won.作,빗방울이 흐르면 꽃잎에 맺히듯,道가 흐르면 사람의 성품에 맺힌다

장자의 외편外編,

15가지 우화를 정리해 보자.


장자의 철학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

스스로 즐기는 삶.

자쾌(自快)의 삶으로 정리된다.


사마천의 <노자한비열전>에

나오는 장자 이야기는

장자가 추구하는 삶이

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자쾌란 타인에 의한 의존적 쾌락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난 쾌락을 말한다.


"자신의 즐거움을 자신이 정하고

자신이 즐기는 것이지,

남이 만들어놓은 틀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어리석음 범하지 마라."


이것이 장자가 전하고자 하는 自快다.


사마천의 <노자한비열전>에

나오는 장자 이야기다.


~~ ~~

장자가 복수라는 곳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이때 초나라의 왕이 장자에게 신하를 보내

재상(宰相)의 자리를 권하였다.

이에 장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신하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듣기로는 초나라에는 죽은 지 300년이나

된 거북을 왕께서 귀히 여겨 비단으로 싸서

박제해 보관하고 있다 들었소.

그 거북이 죽어서 뼈를 남겨 그렇게 남겨지기를

원했겠소, 진흙에 꼬리를 끌고 다닐지언정

살아있기를 바랐겠소.

돌아가시오, 나는 차리리 진흙에서

꼬리를 끌고 다니겠소"


~~ ~~


여기서 장자는 단순히 권력을 멀리하고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한 삶을 살겠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법과 윤리가 무너진 초나라에서

세상을 다스리는 상의 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것으로,

형식이 실질을 앞설 수 없다는 것이다.


장자의 자쾌는 그저 스스로 소박하게

안위하면서 만족하는 그런 자쾌가 아니라,

무엇보다 끊임없이 노력해서 자기 스스로

만들어서 자기 성장을 거친 후의

자쾌를 말한다.


사마천은 사기열전에서

장자를 가리켜서

"기학무소불규(其學無所不규)

학문에 있어서 들여다보지 않은 곳이 없다."

라고 평하였다.


장자의 無爲는 無知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표피적 앎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장자의 자쾌 또한 타인에 의해 규정된 쾌를

벗어나 스스로의 엄격한 기준을

충족한 자유, 自快를 말한다.


방탕한 삶이 자유로운 삶이 아니라,

스스로 정해논 규율에 의해 사는 삶이

자유로운 삶이며, 자유로운 삶이

주는 즐거움이 自快 것이다.


장자의 외편(外編)은

장자의 후대 사상가들이

장자의 철학을 보충하고 재해석해서

15가지 우화로 다시 설명하고 있다.


주로 공자를 등장시켜 공자의 유가 사상인

仁義를 인위적인 것으로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道를 독특한 비유를 들어가며

옹호하고 있다.


공자의 인의를 여섯 번째 손가락으로

비유하며 쓸데없는 군더더기로 표현하기도 하고,

공자가 중시하는 책은 옛 성현이 남긴

찌꺼기에 비유하며, 天道인 하늘의 도를

중시하며 인간이 본래 타고난 천성의

순수함을 강조하고 있다.


외편 추수(秋水) 편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 (정저지와井低之蛙)와

대롱을 통해 하늘을 쳐다보기(관견觀見)

이라는 비유를 통해 장자가 말하는 道가

얼마나 광대한지를 비유와 언어로 살핀다.


"가을 물(秋水)이 여름 내내 물을 모아

황하로 흘러드니 그 흐름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물 끝을 볼 수 없는 광대한 북해의

장관을 보고 하백은 잠시 멍해졌다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말해도 알지

못하고,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말해도

알지 못하듯이, 옹졸한 선비에게 道를

말해도 알지 못하는 법이네.

더 나아가 천지 우주의 차원에서 보면

이 광대한 북해 바다조차도 조약돌 같은 것이라."


지극한 즐거움을 뜻하는 지락(至樂) 편에서는

장자는 죽음이 삶보다 도리어 더 좋은 것인지

누가 아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통달한 삶을 뜻하는 달생(達生) 편에서는

명사수도 황금을 걸고 활을 쏘면 빗맞히듯

자기를 잊고 욕심을 버린 다음

정신과 마음을 오롯하게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이 달생이라 말한다.


"싸움닭을 기르는데 기른 지 열흘이 지나자

제 기운을 믿고 사납게 날뛰기만 하고,

다시 열흘이 지나자 여전히 싸울 기세를

버리지 못하고, 또다시 열흘이 지나자

다른 닭을 보면 움직이고, 다시 열흘이 지나자

이제 다른 닭이 덤벼도 마른나무처럼

끄떡하지도 않았다."

는 우화를 싸우지 않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달생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


외편 마지막은 앎이 북쪽에서 노닌다는

지북유(知北遊) 편이다.


세상 사람들은 말 잘하는 것을 부러워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칭찬하지만 장자는

말보다는 침묵을, 지혜보다는 잠잠하게

없음(無)과 없음의 없음(無無)에

도달한 경지를 찬양한다.


"어느 때 지知가 북쪽의 玄水에서

놀다가 은분(隱奔)의 언덕에서

무 위위(無爲爲)를 만났다."


여기서 '知'는 앎을 의인화한 것이고,

'북쪽'은 깊고 아득함을 상징하고,

'은분'은 멀고 알기 어렵고 우뚝함을

'현수'는 헤아리기 어려운 경지를

무 위위는 무위를 의인화한 은유적 표현이다.


無有는 심원하고 공적(空寂)하여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손을 대 보아도 만져지지 않는다.


그래서 빛으로 번쩍 거림인 광요(光曜)가

있음이 없음인 무유(無有)에게 항복하며

이 말을 남겼다.


"아 지극하구나!

내가 일찍이 無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無조차 없는 줄은 깨닫지 못했구나"


장자의 외편 지북유의 마지막은

有는 無요.無有는 無無라고 말하며

끝을 맺고 있다.


장자의 道와 德으로 깨달음을 얻는 자는

無心의 天眞에서 노니는 자로,

이 자들은 스스로 만든 규율에 따라

타인의 형식과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쾌할 수 있다.


장자는 이러한 사람들은

智人, 神人, 至人, 聖人이라 하였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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