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과 공감의 예술이자 시민 교육의 장,비극

아라스토텔레스 윤리학과 정치학 <추상화 읽기 > 스크립트

by Plato Won
Plato Won 作

(1) 예술과 모방에 대한 상반된 시각


이데아만이 본질이자 절대 진리라고 확신했던 플라톤.

그에 따르면, 예술은 이데아의 모방인 현실 세계를

다시 모방한 것이기에 ‘이데아의 그림자의 그림자’,

즉 허상에 불과합니다.


예술 작품은 진리로부터 두 단계나 떨어져 있어서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할 따름이라는 것이지요.

그에게 ‘회화’는 무지한 대중을 미혹하는 기만적 눈속임이며,‘시’는 격정을 불러일으켜 젊은이들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백해무익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시인, 즉 예술가를 이상 국가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시인 추방론’을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의 기원이 되는

‘모방’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해석합니다.

예술가는 현실의 겉모습을 감각적으로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진리를 찾아내어 모방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예술의 모방은 진리를 인식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 셈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과 관찰을 중시한 현실주의자답게 고대 그리스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비극에 주목합니다.


그리스 비극의 등장인물은 신과 영웅, 왕족이지만,

그 주제는 시민의 의무를 일깨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연설을 시민의 본분인 정치적 삶의 일부로 여겨 수사학의 체계를 다졌던 것처럼,

비극 감상이 개인과 공동체의 최선을 고려함으로써

미덕 실천에 도움을 주는 ‘시민 교육의 장’이라 보았습니다.


(2) 민주정과 비극 공연


당시에는 도시국가마다 1만여 석 규모의 야외극장을 갖추고,정부나 독지가의 후원으로 매년 두 차례 정도 비극을 상연했습니다.


비극 공연을 국가 차원의 행사로 승격시켜

전폭적으로 후원한 사람은 아테네의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입니다.


기원전 534년, 그가 최초로 개최한 비극 경연 대회는

민주정의 황금기인 기원전 5세기에 절정을 맞습니다.

아테네 최고 행정장관인 아르콘의 주도하에 작가들을 선발한 후,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작품을 각자 완성하는 방식으로 치러졌지요.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가

‘3대 비극 작가’로 손꼽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최고의 비극이라고 극찬한 『오이디푸스 왕』은 경연에서 18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던 소포클레스의 대표작입니다.


비극 경연 대회는 매년 봄, 디오니소스 축제 기간에 개최되었습니다.정부는 이 기간 동안만큼은 가난한 사람들도 생계 걱정 없이 온종일 연극을 관람할 수 있도록 장려했다고 합니다.


대중이 최고의 권력을 지니는 민주정에서,

단시간에 많은 인원을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대규모 공연은 정치가들에게 매력적인 수단이었습니다.


비극을 공연하려면 합창단 편성, 의상 제작 등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데,명문 귀족들은 비극 작가들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야망을 품고 있었던 그들로서는 비극 경연 대회야말로 대중에게 자신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3) 비극의, 비극에 의한, 비극을 위한 『시학』


『수사학』이 연설을 위한 효과적인 설득의 원리를 다룬다면,

『시학』은 비극과 서사시를 통해 모방과 공감을

이끌어 내는 창작의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때 ‘시’는 오늘날과 달리 문학의 한 갈래가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음악적인 언어의 구조물’을 가리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에 더욱 주목한 것은

서사시보다 비극이 우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비극은 공연상의 제약 때문에 사건을 압축적으로 제시합니다.그러다 보니 구성이 짜임새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극적인 효과를 위한 음악과 무대

연출이 추가되는 등,서사시의 모든 요소를 포함하면서 훨씬 다양한 요소를 지니고 있지요.


비극의 본질은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와 사건을 모방하여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작법이 플롯인데,

사건과 사건 사이에 인과 관계가 긴밀하게 설정되어

개연성이 있을수록 설득력도 높아집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인공의 행복과 불행 사이에 반전이 필요하고, 생동감 있는 표현이 요구되지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영혼’이라 단언할 정도로 플롯을 강조한 이유는 비극의 효과인 카타르시스를 그만큼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감정의 조절은 덕의 실천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감정은 이성이 판단한 것을 실행하는 힘을 제공하는 반면, 외부에 의해 억압될 경우에는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에도 해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 작품 감상을 통해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이라 보았습니다.


비극 속 주인공의 삶을 지켜보면서 적당한 수준의 공포와 연민을 느끼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한 관객은, 실제 삶에서도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여

개인과 공동체에 유익한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4) 추상화 이해하기


그럼 추상화에 담긴 의미를 함께 살펴볼까요?


왕관을 쓴 채 울고 있는 듯한 가면.

그 뒤로는 웃고 있는 듯한 가면이 보입니다.

고대 그리스 연극은 대규모 야외극장에서 상연된 까닭에,멀리서도 배우의 표정을 금방 알 수 있도록 가면을 사용했습니다.


인간의 표정을 모방한 가면은

인간의 행위를 모방하여 보편적 진리를 찾고자 했던

고대 그리스 비극을 상징합니다.


물론 우는 표정의 가면이 비극 또는 불행을,

웃는 표정의 가면은 희극 또는 행복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지요.


행복과 불행, 희극과 비극을 상징하는 두 가면이

한데 뒤섞여 기묘한 형상을 선보입니다.

그 주위로 연극 상연장이 모습을 드러냈군요.


원형 극장에 들어찬 관객들.

가면 위로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네요.

고귀한 신분의 주인공이 한순간에 불행으로 추락했나 봅니다.


주인공을 덮친 불행이 자신에게도 찾아올지 모른다는 ‘공포’.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밑바닥으로 추락한 주인공에 대한 ‘연민’.이 두 감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에서 관객이 얻게 되는 쾌감과 정신적 안정이 ‘카타르시스’입니다.


눈앞의 비극에 도취한 나머지,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듯 휘청거리는 관객들.이윽고 푸른빛을 띠는 폭풍우가 강력하게 휘몰아치면서 온통 다채로운 빛깔에 휩싸입니다.이는 정교한 플롯에 의해 카타르시스의 효과가 극대화되었음을 상징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훌륭한 비극의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복합적인 플롯,

둘째는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나 사건,

셋째는 큰 명성과 부를 누리다가 악덕이나 악행이 아니라 실수나 결함 때문에 불행해지는 주인공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인공의 좋은 예로 제시한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의 답을 맞혀 테베의 왕이 된 인물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의 예언이 결국 실현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자신의 눈을 찔러 실명한 채 딸과 함께 방랑의 길을 떠나지요.


극적인 전개가 돋보이는 플롯 덕분에 당시 아테네인들은 오이디푸스의 기구한 운명에 가슴 졸이면서 공포와 연민을 느꼈을 것입니다.


극이 발단과 전개, 절정으로 나아갈수록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다가,결말에 이르러 갈등이 해소되고 나서야 비로소 쾌감과 정신적 안정을 되찾았을 테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일이 내면의 감정을 조절하여 미덕의 실천에 도움을 준다고 확신했습니다.


다시 하나의 형태로 융합된 두 가면.

인생의 불행과 행복, 희극과 비극은 원래부터 하나였을지도 모릅니다.

비극을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삶에서 철학의 목표를 이루어 가는 인간의 행위로 본 아리스토텔레스.감정의 부작용을 비판하고 예술을 경시했던 플라톤과 달리, 그는 비극 감상 과정에서

얻은 감정들이 미덕 실천에 얼마나 유용한지를

일깨워 줌으로써 예술의 가치를 옹호하고자 했습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배우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삶에는 영원한 불행도, 영원한 행복도 없습니다.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늘 변하게 마련이므로 현명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지혜가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의 정화를 통한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고, 성숙한 인격과 미덕의 고양에 이바지

하는 비극은 철학이 추구하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해 주는 하나의 길이자 이정표라 할 수 있습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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