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장자 대종사, 큰 스승은 좌망하는 진인이다.

큰 스승이란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유연한 태도를 지닌 사람

by Plato Won
Plato Won 作,큰 스승은 총명함으로 남을 이기려는 욕심을 좌망하고 그 위에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이치인 道를 올려놓을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Plato Win 作,하늘에 떠 있는 저 구름도 땅에 발을 딛고 하늘을 향하는 저 나무도 크게 보면 하나다.
나무가 제아무리 솟아본들 하늘에 닿을 수 없고 하늘이 제아무리 내려다 본들 땅에 닿을 수 없으니 좌망하고 하나로 살아야 한다

장자의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주제는

덕충부,대종사로 노자 도덕경 핵심 주제인

德과 道를 다루고 있다.


장자는 노자가 말하는 道를 대종사 편에서

어떻게 논하고 있을까?


장자 내편 여섯 번째 주제는 대종사(大宗師),

'클 대, 마루 종, 스승 사, 위대하고 으뜸 되는 스승'

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문제를 논한다.


지금까지 장자는 소요유, 제물론, 양생주,

인간세 편을 통해서 일상의 굳은 마음(成心)을

스승으로 삼을 수 없으니 그런 마음을 깨끗이

비우는 심재(心齋), 마음 굶기기를 실천할 것을

논하였다.


큰 스승을 일컫는 대종사 편에서는

진정한 앎을 얻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의지해야 할 스승으로 진인(眞人)을 새롭게 등장시킨다.


진인은 참된 사람으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참된

스승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장자가 말하는

진인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그것은 진인도 결국은 道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궁극적으로 道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가장 위대하고 으뜸이 되는 큰 스승이라고 장자는

대종사 편에서 말하고 있다.


이는 노자가 도덕경 제25장에서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는

것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장자는 큰 스승이란 진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진인은 노자가 도덕경에 말한 스스로 그러함

을 본받는 道를 터득한 사람으로, 한마디로 좌망

(座忘). 앉아서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여우(女偶)가 가르치는 득도의 단계>


"남백자규가 여우(등이 굽은 여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이가 많은데 아직도 얼굴은

갓난아기와 같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道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道를 배울 수 있을까요?"

"안 됩니다. 당신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복량의는 성인의 자잔을 갖춘 사람으로서

내 제자가 되었소. 그를 지켜본 지 사흘이 지나자

그는 세상을 잊었소. 다시 이레가 지나자 사물을

잊읍디다. 다시 아흐레가 지나자 삶을 잊었고,

삶을 잊게 되자 그는 '아침 해살 같은 밝음'을

얻었고 모든 것이 하나로 보이고, 하나를 보게 되자

과거와 현재가 없어졌소이다. 과거와 현재가

없어지자 죽음도 없고 삶도 없는 경지에 그는

들어가게 되었소이다."


장자는 대종사 편에서 道를 터득한 대표로

등이 굽은 여자인 여우를 등장시켜

의식의 심화 과정, 득도의 일곱 단계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외천하(外天下)에서 시작하여 외물(外物),

외생(外生), 조철(朝撤), 견독(見獨)에 이르고,

여기서 무고금(無古今), 무시간의 경지와,

불사불생(不死不生)의 경지에 이르는 단계에

이른다. 여기서 바깥 외(外)는 잊을 망(忘)과 같이

'잊어버린다'의 뜻이다.


득도의 단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일정한 수련을 통해 일상적 의식에서 비일상적

의식으로 들어가므로, 외부 세계, 물질세계를

잊어버리고, 결국에는 생과 사도 잊어버린다.

이렇게 완전히 잊어버리면, 비로소 새로운 의식이

생겨나 사물을 꿰뚫어 보는 형안(炯眼, 빛날 형,

안목 안) 열려 '밝음'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 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하나로 보게

되는 경지에 이르면 주체와 객체가 분리될 수

없고 모두가 그 하나 안에 담긴다는 것이다.


장자는 우화에 공자를 등장시켜 공자의

인의예지 사상을 역설적으로 비판하며,

장자 철학의 핵심 사상인 좌망(座망)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공자와 안회의 좌망 이야기>


"어느 날 제자 안회가 스승 공자를 찾아와

말했다.


"스승님 저는 요즘 공부가 조금 늘어,

스승님이 그토록 강조하시는 인의(仁義)를

잊게 되었습니다."


이에 공자가 말했다."아직 멀었구나"


그러고 다시 얼마 뒤 안회가 찾아와

"스승님 이제 저는 예악(禮樂)을 잊게 되었습니다."


다시 공자가 말했다."아직도 멀었다."


또다시 얼마 뒤 안회가 찾아와

"스승님, 저는 이제 좌망, 모든 것을 다 잊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자

공자가 "아니 좌망이라니? 대체 그 경지가

무엇이더냐?"라고 물었다.


이에 안회가 "좌망이란 손발과 몸, 귀와 눈 등

형체를 떠내고 앎을 버려서 저 지극한 道와

하나 되는 것. 그것이 곧 좌망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공자가 탄식하며

"도와 하나가 되면 변하여 막힘이 없을 지니,

아이고 안회야, 이제 내가 너의 제자가

되어야겠구나."라고 말하였다."


장자는 이 우화에 공자를 등장시켜 공자가

강조하는 인의예지를 여지없이 반어법으로

공격함으로써 道의 경지를 좌망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장자는 역시 역설과 반어법의 언어 마술사라

블릴만 하다. 가히 세상을 달리 바라보는 관점 디자이너,생각열기를 통해 생각의 생각을 초월하는

철학자임에 틀림이 없다.


장자의 대종서 편에 나오는 '좌망'은

제물론 편의 나를 장사 지낸다는 '오상아',

인간세 편의 마음을 가지런히 한다는 '심재'와

더불어 장자의 핵심 사상이므로 좀 더

설명을 이어가 보자.


<좌망, 생사를 잊고 道와 하나가 되어라.>


공자는 "삶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논하겠느냐?"

고 말하지만, 장자는 삶과 죽음의 초월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사를 넘어갈 수 있을까. 장자는

모든 것을 잊는(忘)것이 그 방법이라고 말한다.


손발과 몸, 귀와 눈 등 형체를 떠나고 앎을 버려서

저 지극한 道와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座忘이다.


이 좌망 사상은 훗날 불교와 결합하여 선(禪)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는데, 禪은 인도의

씨앗과 중국의 토양이 결합한 것으로 이해된다.


禪은 앉아서 수행하기 때문에 座禪이라고도

불리는데, 좌선은 장자의 좌망과 같은 같은 의미로

禪家는 드높은 기상을 숭상한다는 점에서도 장자와

통하는 중국의 불교사상이라 할 수 있다.


大死一番, 대사일번, 크게 한 번 죽어라!

그러면 새로워질 것이다. 그것이 좌망이다.


장자는 도에 깊이 이르는 길은 우선 인의(義),

예악(藝樂) 같은 인위적이고 계산적이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이고 합리적이고 관념적인 의식구조를 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잊기 위해서는 먼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원초부터 無知뿐

이면 잊고 말 것도 있다. 좌망 한다는 것은 먼저 획득

함이 있고, 그 후 이런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우치고 이것을 초월해야겠다는

단계로 넘어설 때 좌망의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좌망이란 합리적 사고를 잊어버려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식과 합리적인 사고로는 복잡한 현안을 해결할 수 없으니, 기존의 인식체계를 뛰어

넘는 초월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 번잡한 인간의

인식구조 체계를 벗어던지는 단계를 말한다.


座忘하는 眞人은

그 모습이 우뚝하나 무너지는 일이 없고,

뭔가 모자라는 듯하나 받는 일이 없고,

한가로이 홀로 서 있으나 고집스럽지 않고,

넓게 비어 있으나 겉치레가 없다.

엷은 웃음 기쁜 듯하고,

하는 것은 부득이한 일뿐,

빛나느니 그 얼굴빛,

한가로이 덕에 머물고,

넓으니 큰 듯하고,

초연하였으니 얽매임이 없고,

깊으니 입 다물기 좋아하는 것 같고,

멍하니 할 말을 잊은 듯하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것과도 하나요, 좋아하지

않는 것과도 하나다. 하나인 것과도 하나요,

하나 아닌 것과도 하나다. 하나인 것은 하늘의 무리요,

하나가 아닌 것은 사람의 무리이니, 하늘의 것과

사람의 것이 서로 이기려 하지 않는 경지.

이것이 바로 진인(眞人)의 경지다.


장자가 말한 진인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대립,

상극, 이원론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이것도 저것도

하나 됨의 경지, 막히고 걸리는 것 없는 통전적

(統全的, 거느릴 통, 완전 적 )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장자는 말한다.

"총명함으로 상대를 이기려는 욕심이 그대를

괴롭힐 것이니 그 총명함을 좌망 하고 이것과

저것이 하나 되는 진인으로 살면 그대의 유연함과

부드러움이 세상에 우뚝 설 것이다."


노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이라고


장자의 대종사, 큰 스승은 좌망(座忘)하는

진인(眞人)이다.


노자의 도는 우주의 생성원리를 논한다.

장자는 대종사 편에서 도를 모든 것을 잊고

하나 되는 좌망이라 하였다.


노자는 덕을 도의 실천규범으로 논한다.

장자는 덕충부 편에서 덕을 명경지수의 마음으로

설명한다.흐르는 물에서는 자신을 비출 수 없으며

고요한 물에만 자신을 비출 수 있다.장자가

말하는 덕은 서두르지 말고 노니는 마음,

유심(遊心,노닐 유,마음 심)하는 것이

지극한 덕이라 말하고 있다.


장자가 말하는 대종사,큰 스승은 도를 터득한

좌망히는 진인이고,장자가 말하는 덕충부,

지극한 덕은 서두르지 않고 노니는 마음으로

삶을 살 수 있는 여유를 지닌 사람을 말한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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