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니는 마음으로 行하면 저절로 이루어진다

장자의 덕충부,덕은 스스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by Plato Won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매화꽃, 백매화는 매화꽃 중 고매한 선비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다.Plato Won 作
Plato Won 作,백매화
조팝이 하얀 이유는 자기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파란하늘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양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조팝은 장자의 덕충부를 아는 봄꽃이다.


장자의 내편 다섯 번째 주제는

덕충부(德充符)로, '德이 가득해서 저절로 밖으로

드러남'을 뜻한다.


보통의 德은 남의 눈에 띄어 칭찬을 받지만

지극한 德은 오히려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德을 가진 사람은 비록 절름발이에 곤충,

언청이에 혹까지 달고 있을지라도 뭇사람들의

사랑을 얻게 되는 법이다.


장자는 말한다.


"德이 높아지면 형체는 잊혀진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德 높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德은 어떻게 닦는가?


"德을 닦으려면 마땅히 情을 없앨지니,

좋아하고 싫어함으로써 몸을 해치지 말라.

그것이 바로 人爲이니, 다만 무위자연(無爲自然)에

일신을 맡길지라,"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道를 만물의 어머니'로 표현한다.


道를 섬세한 여성적인 면으로 표현하는데 반해,

장자는 德을 육체가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등장시켜, 비록 육체는 온전하지 못하지만

그 속에 있는 천부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

진실로 의연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음으로

표현한다.


德이란 道를 닦은 사람이 갖추게 되는 내면의

힘이자, 그 힘이 남에게 끼쳐지는 이익이다.

그래서 道를 닦게 되는데, 제물론 편에서 만물을

가지런히 하는 게 德을 닦는 요령이라 했으니,

道人은 형체를 초월해서 사물과 사물을 보고

응접하게 된다.


<형벌을 받아 발뒤꿈치를 잘린

올자(兀者)와 공자 이야기>


노나라에 왕태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형벌을 받아 발뒤꿈치가 잘려나갔다.


벌을 받아 얼굴에 먹물 글자가 새겨지는 묵형이나,

발뒤꿈치를 잘려 올자가 되는 것은 치욕 중의

치욕이다.


그런데도 올자 왕태는 제자가 수천 명이나 되었다.


이에 공자에게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왕태는 올자인데

어찌 저리도 제자가 많습니까?"


그러자 공자가 답하길

"그는 성인이다. 그는 생사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니

하늘이 뒤집혀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만물을 하나로 보아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자신이 잃어버린 발뒤꿈치를 한 덩이 흙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여긴다.

그는 육신을 초월하여 천지를 육신으로 삼는

사람인 것이다."


여기서 왕태와 공자는 장자가 지어낸 가상인물이다.


장자는 덕충부에서

말없이 말함을 뜻하는

'불언지교(不言之敎)'를 논한다.


육체가 온전치 못한 왕태를 내세워

말이 많은 공자의 본고장 노나라에서마저 공자와

맞먹는 명성을 얻고, 특별히 말로 가르치지도

않는데도 제자들이 수천 명이라는 우화를 지어낸다.


공자가 제자에게

왕태가 성인의 경지에 이른 이유를 열거하는데,


첫째는 생사에 초연한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사물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아

천지개벽이 와도 꿈쩍하지 않는 의연하고 의젓한

사람이라는 것이며,

셋째로는 운명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일 뿐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의 입장에서 보아 만물에

경계가 사라지므로,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장자는 이를 마음을 노닐게 하는 마음

유심(遙心, 노닐 유, 마음 심)이라 말한다.


노닌다는 것은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즐기며 行한다는 뜻이다.


남의 눈치나 칭찬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실현만을 위해, 차분하고 조용히

정진했을 뿐인데도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거울 같은 맑은 마음에 자신의 참모습을 비추어 보는

명경지수 (明鏡之水, 밝을 명, 거울 경, 갈지, 물 수)

와 같은 마음이다.


보통의 德은 칭찬을 받아 드러나지만

지극한 德은 오히려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충만하면 저절로 표시되니

섣불리 표현하지 말고 말없이 말함을 실천하라.


덕충부는 바로 불언지교(不言之敎) 자세다.


장자는 말한다.


"

대개 세상은 이론은 말하지 않으면 가지런해지고,

가지런히 하려고 말하는 순간 가지런해지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말이 없다. 그러나 아주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니, 말을 하되 말이 없는 것이다.

이런 경지에 서면 한평생 말해도 말함이 없게 된다.

"


서두르지 말고 노니는 마음,

유심(遊心)으로 즐겁게 行하고 세상을 대하면

안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장자의 덕충부의 핵심이다.


Plato Won



○ 어제는 서울서부본부 학원장 간담회가 있었다


DMC 증산 캠퍼스 선생님들과
DMC 증산캠퍼스 원장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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