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주의와 전체주의는 그 경계가 모호하다

3-6,루소 사회계약론

by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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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주의를 경계하라

(1) 공중과 대중의 차이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은

‘공중(public)’과 ‘대중(mass)’이라는 두 얼굴을 지녔습니다.


공중은 ‘공공의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서 합리적인 판단과 충분한 토론을 거쳐 여론을 형성하는 다수‘를 뜻합니다.


반면에 근대 이후에 생겨난 개념인 ‘대중’은 '지위나 계급, 학력, 직업,

재산 등과 상관없이 불특정 다수로 이루어진 집합체‘를 의미합니다.


신분 제도의 붕괴, 산업화와 도시화의 진행과 더불어 성립된 근대 사회.

여기에 교육 기회의 확대, 대중 매체의 발달까지 더해져 대중은 사회의 중심으로 떠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누구나 손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가 탄생하기도 했지요.


(2) 대중과 대중주의


대중은 공동체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지니기 쉽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속성을 이용해서 대중의 환심을 사고 인기를 얻은 후,

정권 획득이나 집권 연장에 악용하는 정치가들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성원과 공동체의 행복’

이라는 정치의 본래 목적은 망각한 채,

대중의 인기를 정치적 야심에 이용하려는 경향을 대중주의라고 합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들이 대표를 선출하거나 국민 투표 등을 진행할 때,다수의 의사를 전체 의사로 간주하는 ‘다수결’을 널리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의견이라고 해서 늘 옳은 것은 아니듯이,가장 큰 파벌이 개별 집단의 이익만 추구한다면 최대 다수가 권력을 잡는 게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3) 대중주의와 전체주의


공동선을 위해 정치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할 국민이

이기적인 ‘대중’으로 전락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루소는 이러한 대중이 판을 치는

나라를 가리켜 '무의미하고 공허한 형태로 존재하는 멸망 직전의 상태’

라고 우려합니다.


모든 구성원의 마음속에서 사회적 유대가 끊어져 버리고, 일반의지는

계속 침묵을 지키게 됩니다.


천박하기 짝이 없는 사리사욕이

‘공공의 이익’이라는 신성한 이름으로 비화되고,이미 사사로운 이익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구성원들은 마치 국가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이 더 이상 시민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않습니다.


그 결과, 공정하지 못한 법률이

‘법’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부당하게 통과되기에 이릅니다.


전체주의의 일종인 파시즘과 나치즘, 군국주의도 소수 권력자의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개별의지’가 일반의지로 둔갑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등장했습니다.


전체주의에서는 개인이 하는 모든 활동은 오로지 전체, 즉 민족이나

국가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서만 의미를 지닌다고 봅니다.


그래서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유가 희생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요.


한마디로 개인보다는 사회와 집단, 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파시즘은 1919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내세운 정치 이념입니다.


‘묶음’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파쇼(fascio)’에서 나왔으며,

구성원들의 단결을 주장합니다.


나치즘은 히틀러가 창설한

민족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즉 ‘나치당’의 정치 이념입니다.

게르만인의 인종적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를 주장했지요.


군국주의는 군사력 증강이야말로

국가의 가장 큰 목적이라 여겨, 모든 정책의 초점을 전쟁 수행이나 전쟁 준비에 둡니다.


그 예로 고대의 스파르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일본을 들 수 있습니다.


파시즘과 나치즘, 군국주의의 공통점은

전쟁 직후 또는 사회 혼란기에 정치적 경제적 불안으로 인해 단기간에 사회 안정을 원했던 대중에게 인기를 끌면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합법적인 독재 정권이 탄생했고,

정치적 이해관계로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이 손을 잡으면서 세계는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4) 추상화 이해하기


독재 권력 정당화의 수단이 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루소의 일반의지.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개인의 가치관이나 의견은 정말 무의미할까요?


일반의지에 대한 복종을 강조하는 것이

인간을 수단으로 간주하는 전체주의와 다를 바 없는 걸까요?


이 질문을 염두에 두면서, 추상화를

보고 루소가 대중주의를 극도로 경계한 이유를 함께 생각해 볼까요?

불분명한 형상들 사이로 보이는 두 개의 손.잡히는 게 있을 리 없는 허공을 향해 뻗쳐 있군요.


왠지 모르게 절박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형상의 그림자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게임판의 말들.두 손은 과연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말들과 손에는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요?

사라졌던 두 손이 다시 등장하고,

검은 그림자까지 가세하여

두 손을 향해 점점 포위망을 좁혀 옵니다.

이윽고 무겁고 굵은 쇠사슬이 두 손을 칭칭 휘감습니다.


여기서 ‘손’은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말’은 대중을 상징합니다.

두 손이 말들에 의해 철저하게 포위된 상황은 대중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는 현실을 표현하지요.

검은 그림자가 색을 띠면서 넓게 퍼졌습니다.


대중주의의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졌나 봅니다.


‘보라색 손’은 일반의지가 잠시 침묵한 틈을 타서,일반의지로 둔갑한 독재자의 개별의지를 상징합니다.


파시즘과 나치즘, 군국주의의 경우에서 보듯,대중주의는 개별의지나 전체의지가 일반의지를 압도할 때 등장하지요.


루소가 대중주의를 극도로 경계한 이유는 국익을 해치는 수준을 넘어서

국가의 존속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르를 비롯한 군인 정치가들이 권력욕을 위해 평민들의 인기에 영합하려 했기에 로마 공화정 역시

차츰 변질되어 결국 제정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하던 쇠사슬의 고리가 끊어졌습니다.

대중이 공동체의 이익을 고려할 줄 아는 시민으로 거듭났군요.


보라색 손도 일반의지를 세상에 널리 알리려는 듯,단호하면서도 힘찬 움직임을 보여 줍니다.


루소는 대중주의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도덕성과 시민 교육을 강조했습니다.

구성원들은 주권자로서, 정치가들은 행정권을 위임받은 심부름꾼으로서

일반의지를 발견하려 애쓰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이처럼 양심적인 구성원, 양심적인 정치가를 지속적으로 길러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시민 교육입니다.


교육이 바로선 국가에서라면 대중주의는 결코 발붙일 곳이 없을 것입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플루타르크는

저서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

“국민의 뜻만 추종하는 군주는 그들과 함께 망할 것이고,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군주는 그들 손에 망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용감하면서도 양심적이고 자유로운 시민,이들이 자기 마음속에 자리한 양심에 귀를 기울이고, 이러한 일반의지가 곧 법이 되며,정치가들 역시 이를 국정 운영의 근간으로 삼을 때,

루소가 말하는 이상적인 국가는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중주의와 전체주의는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을 깊이 숙고해야 한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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