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거인,뉴턴

1-6, 뉴턴의 프린키피아

by Plato Won


(1) 거인의 어깨 위에서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까지 종교적으로는 기독교가, 물리학 분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과 철학이,

천문학 분야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신의 지배하에 있다는 깊은 믿음과 절대 진리와도 같았던 그들의 강력한 권위는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야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발간,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 발표,

갈릴레이의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와

『새로운 두 과학』 발간 등이 이어졌고,


이러한 선배 과학자들의 노력을 종합하고 발전시켜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마침내 인류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뉴턴이 가장 오랜 시간 서있었던 거인의 어깨를 고르라면 단언컨대 데카르트의 어깨일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우리에게 철학자로 익숙한 인물입니다.


그의 철학은 확실한 진리를 추구했으며,

과학 또한 매우 보편적인 진리를 토대로

자신의 이론을 쌓아 올라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완전히 부정하며 데카르트가 제시한 기계론적 관점은 뉴턴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우주관에 따르면,

별과 별, 행성과 행성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고,그 공간에는 세밀한 물질이 가득 차 있는데,이 물질이 기계적 소용돌이를 일으켜 행성들의 방향이 바뀐다는 이론입니다.


예를 들면, 방향을 바꿔 날아가던 달은

다른 행성이 만들어낸 소용돌이의 영향으로

다시 지구 쪽으로 밀려나게 되고,


달은 소용돌이에 의해 이리저리 밀려나면서

기계적으로 지구 주위를 끊임없이 돌게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데카르트의 설명은 뉴턴이 관찰한 우주와는 다른 부분이 많았고,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뉴턴은 달이 지구를 도는 이유를 새롭게 제시하고자 우주의 운동과 힘의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데카르트의 우주론을

‘매 순간 지구가 달을 잡아당긴다’는 중력 이론으로 깨부수며 만유인력의 법칙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남들보다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인류는 뉴턴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후에야 천상의 움직임과 지상의 움직임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주의 운동과 정확한 힘의 원리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과학은 신의 품을 벗어나 비로소 무한한 발전의 문을 열었고,

인류의 지성사는 더욱 풍요로운 길을 걷게 됩니다.


(2) 미적분의 탄생과 논란


수학의 꽃이라고 불리는 미분과 적분.

수학 교과에서는 보통 미분을 먼저 배우고,

적분을 나중에 배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1800년경

땅의 넓이를 구하기 위해 적분이 먼저 탄생했고, 미분은 이보다 한참 늦은 17세기에 이르러서야 등장합니다.


제각기 발전해 온 적분과 미분 개념이

뒤늦게 하나의 학문으로 합쳐져 지금의 미적분학이 탄생한 것이지요.


지속적으로 변하는 사물의 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미분’이고,

미분과 반대 개념으로 쓰이는 연산을

‘적분’이라고 하는데, 적분은 수를 계속해서 작게 쪼개고 그것을 여러 번 합산하는 개념입니다.


미분은 17세기 중반 두 수학자에 의해

각기 독자적으로 발명되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영국의 뉴턴과 독일의 라이프니츠입니다.


뉴턴은 미적분의 원리를 물리학에 적용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일정한 질서와 궤도에 따라 움직이는 우주 행성들의 규칙성을 수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발명한 것이지요.


뉴턴은 1665~1667년 사이 고향으로 내려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면서 미적분도 함께 고안했습니다.


그러나 소심하고 까칠한 성격 탓에 여러 논란을 피하고 싶었던 그는

이를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편 이보다 다소 늦은 1673년과 1676년 사이에 독일의 수학자 라이프니츠도 미분을 발견합니다.


법률가이자 외교관이었던 그는

당대 유럽 최고의 과학자였던 호이겐스를 만나 본격적으로 수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호이겐스가 준 문제를 발전시켜 미적분을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뉴턴의 발견을 미처 알지 못했던 라이프니츠는 독자적인 연구를 거쳐 1684년에 미적분에 관한 첫 논문을 발표합니다.


이로부터 3년이 지나서야 뉴턴은

미적분을 물리학에 적용한 결과를 담아

『프린키피아』를 출간했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의 연구가 같다는 걸 알게

된 학자들은 누가 먼저 미적분을 발명했는가를 두고 논쟁을 시작했습니다.


논문의 출판 연도만 따지면 라이프니츠가 앞서지만, 그 완성도를 감안하면 『프린키피아』를 집필한 뉴턴이

먼저 발명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라이프니츠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영국 왕립학회에 진상 규명을 요청했지만,

당시 뉴턴이 회장으로 있었던 왕립학회는 뉴턴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후 미적분의 창시자 타이틀을 건 두 사람의 다툼은 영국과 독일 수학자들의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번졌습니다.


오늘날에는 미적분의 아이디어는

뉴턴이, 공식의 정교함은 라이프니츠가

더 우세하다고 판단합니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미적분은

대부분 라이프니츠의 표기법(dy/dx)을,

속도와 가속도를 구하는 미적분은

뉴턴의 표기법(y')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미적분을 발견했지만,

동시대에 살았던 두 거장의 위대한 발견은

어쩌면 시대적 필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3) 추상화 이해하기



뉴턴의 연구들은 앞선 과학자들의 지대한 공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추상화를 보면서

뉴턴의 업적과 앞선 과학자들의 지혜를 되새겨 볼까요?


사과나무에서 뻗어 나온 거대한 뿌리와 사과를 들고 있는 뉴턴의 손. 사과나무의 뿌리로부터 가지가 뻗어나가는 형상은

뉴턴에게 영향을 주었던 거인들, 즉 선대 과학자를 상징합니다.


뉴턴은 이 뿌리로부터 우주의 운동 법칙들을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뉴턴이 손에 든 사과는 그가 발견한 지식의 집대성임과 동시에 태양계의 중심축인 태양과도 같습니다.


사과를 중심으로 차례로 늘어선 여섯 개의 씨앗은 각각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을 의미합니다.

이제, 태양계의 행성들이 궤도를 그리며 회전하고 있습니다.


뉴턴이 발견한 고유한 역학 체계는

기존 자연철학의 틀을 깨고 우리에게 새로운 과학을 제시했습니다.


뉴턴은 갈릴레이와 로버트 훅의 영향을 받아 광학 연구에도 큰 성과를 보입니다.


그가 최초로 한 프리즘 실험을 통해

‘빛은 입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지요.


빛을 향한 뉴턴의 집요한 탐구 덕분에

인류는 기존의 오류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태양 안에 있던 사과나무는 느낌표와 물음표로 바뀌고 행성들이 회전하는 궤도 위에 거인의 발이 등장합니다.


거인의 발이 닿은 행성들은

아리스토텔레스, 갈릴레오, 데카르트, 로버트 훅 등 앞선 과학자들을 의미하고,

태양을 향해 걷는 거침없는 발걸음은

뉴턴의 위대한 업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선배 과학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뉴턴의 연구 성과는 행성 위를 묵묵히 걸어 나가는 모습으로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탔을 뿐’이라는 겸손을 담아냅니다.


태양 속 느낌표(!)는 이미 진리로 알고

있던 고정관념을, 물음표(?)는 끊임없이 질문과 검증을 반복했던 뉴턴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담겨있습니다.


느낌표와 물음표가 합쳐진 P는 사유와 질문으로 상징되는 Parallax의 P를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진리의 거인 뉴턴은 태양을 향해 달려갑니다.


뉴턴은 진리의 바닷속으로 들어가 세상에 의문을 품고 인류의 지평선을 넓혔던 위대한 과학자였습니다.


그는 이성의 힘으로 자연을 이해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 진정한 거인입니다.


Plato 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