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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얼굴을 가진 도덕경

1-4,천의 얼굴을 가진 『도덕경』

by Plato Won


(1) 노자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주나라를 떠나 서쪽 먼 곳으로 가기로 결심한 노자는 소를 타고 국경 검문소에 다다릅니다.


마침 그곳 책임자인 윤희가 노인의 비범함을 알아보고,떠나기 전에 가르침을 달라 간청합니다.


이에 노자는 5,000여 자의 글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는데,그 뒤로는 아무도 그를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마천은 『사기』의 「노장신한열전」에서

『도덕경』의 창작 배경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현자와의 만남을 통해 세기의 고전이 탄생한 순간이기 때문일까요.


노자가 윤희와 만나는 장면은 이후 여러 차례 화폭에 옮겨집니다.


조선의 경우에는 정선의 <청우 출관>을 시작으로 김홍도가 <노자 출관도>를 그리기도 했지요.


건국 이래 500여 년간 유교가 사상적 근간이었던 조선에서 노자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근대 이후 서양의 지식인들 사이에도 노자 열풍이 불었는데,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극작가인 브레히트는 「노자가 떠나던 길에 도덕경을 써 주게 된 전설」이라는 제목의 이야기시를 남기기도 했지요.


(2) 도와 덕 그리고 정치 철학


『도덕경』에서는 도와 덕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도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룹니다.


도가의 ‘도’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자연법칙입니다.


그래서 장자는 ‘도란 개미와 땅강아지에게도 있고,벽 속의 기와나 심지어 대소변에도 있다‘고 묘사했지요.


문제는 심오한 뜻을 담고 있어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도가와 유가의 ‘도’는 서로 갈라섭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입니다.


그는 하늘이 우리에게 준 ‘성(性)’, 즉 본성을 실천하는 것이 ‘도’이고,

도를 가르치는 일이 바로 ‘교육’이라 주장합니다.


이는 ‘도’가 언어로 표현이 가능하고,

언어를 매개로 전달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덕에 대한 도가와 유가의 견해는 어떨까요?


도가와 유가는 ‘덕’을 인간이 지닌 본성,

곧 ‘덕성’으로 해석합니다.


다만 유가에서 말하는 덕은 인간의 윤리적 본성으로,맹자가 주장한 사덕(四德)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뜻합니다.


반면에 도가에서 말하는 ‘덕’은 인간의 자연적 본성으로,지식과 욕심에 집착하지 않는 무지(無知)와 무욕(無欲)의 상태를 가리키지요.


도와 덕에 대한 견해는 인간관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정치 철학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노자는 무지와 무욕의 본성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 보고, 이를 ‘무위의 정치’, ‘무치(無治)’라 불렀습니다.


다스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다스림이라는 뜻이지요.


(3) 『도덕경』의 의의


도는 매우 심오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노자조차도 “‘크다’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라고 했을 정도였지요.


그가 강조하는 ‘무위’는 진정한 도를 실현시켜 주는 이상적 삶의 태도인 동시에 정치의 지향점이기도 합니다.


‘동양의 마키아벨리’라 불리는 한비자는 자신의 저서에서 권모술수에 가까운 군주의 통치 기법인 ‘술(術)’을 언급하며

‘무위’를 비롯한 노자의 개념을 가져옵니다.


유가의 인, 의, 예와 상반되는 ‘법(法)’의 원칙을 강조하고, 법을 운용하는 군주의 기술을 설명하기 위해서였지요.


‘노자 사상에 대한 해설’이라는 뜻을 지닌 『한비자』의 「해로(解老)」 편은 『도덕경』에 대한 최초의 주석서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도덕경』을 다양하게 해석해 왔습니다.


임금은 제왕학으로, 정치가는 정치학 개론으로, 무인은 병법서로,사상가는 철학서로, 종교인은 경전으로 받아들인 것이지요.


『도덕경』이 여러 갈래로 해석되는 이유는

길이가 비교적 짧고 내용이 함축적이기 때문입니다.


동양화의 여백이 그냥 빈 공간이 아닌 것처럼 여백이 있는 글은 해석의 여지가 많아서 사고를 무한히 확장시켜 줍니다.


이는 『도덕경』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4) 추상화 이해하기



그러면 『도덕경』에 담긴 노자의 메시지를

추상화를 통해 살펴볼까요?


나란히 쓰여 있는 한자 ‘도(道)’와 ‘덕(德)’.

『도덕경』은 도와 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경전이라는 뜻입니다.


해와 구름, 산과 강이 보이네요.

낮과 밤, 물의 순환, 암석의 퇴적과 풍화가 반복되는 가운데,만물의 생성과 소멸도 되풀이됩니다.


이것이 바로 노자가 말하는 ‘도’,

즉 자연의 이치입니다.


동심원 모양의 소용돌이는 천체의 운행을,

새끼줄처럼 꼬인 띠는 대립과 순환을 상징하지요.


하나로 합쳐진 도와 덕.

둘은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도경’에도 덕에 관한 언급이,

‘덕경’에도 도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저녁이 찾아오자, 산과 강도 더욱 짙은 빛을 띱니다.투명한 물방울이던 ‘도’라는 글자가

힘찬 폭포수가 되어 콸콸 흘러내립니다.


좋은 책은 일종의 문과도 같습니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무위자연’의 정신,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修)'의 정신을 담은 『도덕경』.


노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도의 세계로 발을 내딛게 됩니다.


사방에 어둠이 내려야, 달과 별은 비로소 밝게 빛납니다.


무한한 우주를 상징하는 검푸른색이

강물과 더불어 화면 전체를 역동적으로 휘감고 있군요.


별자리를 닮은 푸른 띠는 생명의 신비를 상징합니다.


무자비한 살육의 시대, 노자는 ‘도’라는 이름으로 생명과 평화를 노래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날카로움을 무뎌지게 하고, 얽힌 것을 풀고,

빛을 감추어 속세와 함께하면, 이를 일컬어 ‘도와 하나가 된다’고 한다.”


『도덕경』이 주는 울림은

고요한 강의 표면처럼 잔잔하게 다가오지만,그 깊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Plato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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