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 잊히는 것과 기억되는 것

보존과 삭제

by 여름비 CLIO

지난 주말 부산광역시 박물관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모든 박물관들이 모여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매년 가을에 하는 행사인데, 나도 올해 두 번째로 참여를 했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역사관은 재개관한 지 만 2년 차라 아직까지 인지도가 조금 낮은 편이다. 그래서 체험부스에 사람들이 적게 올까 좀 걱정이긴 했는데, 다행히도 올해는 매 회차 만석. 우리 역사관에서 준비한 체험활동은 페브릭 달력 만들기. 부산에 남은 근대 건물들을 색칠해서 2026년도 달력을 완성하는 것인데, 어린이들보다 성인들에게 좀 더 인기가 있었다. 여러 이유가 있긴 했지만, 아무튼 성인들이 많이 찾아주셨다. 어떤 박물관을 가더라도 어린이들에게만 열린 행사인 게 평소 불만스러웠는데, 이렇게 성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행사가 되었고, 그게 우리 부스인 것이 좋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청소년, 성인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니까 말이다.


이번에 준비한 페브릭 달력 그림은 2종이었다. 하나는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예전 동양척식주식회사(줄여서 동척)의 건물, 다른 하나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세관 건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 건물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래도 동척 건물은 남아있고, 또 역사관으로 사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건물에 대한 역사와 그와 관련된 역사를 알 수 있는 기회는 있다. 그 앞을 지나가다 볼 수도 있고, 남아있으니 누군가는(나 같은 사람?) 계속해서 이야기할 것이니, 우연히라도 만날 기회는 있다. 그런데 사라진 세관은 우연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애를 써서 알려고 해도 알기 어려울 수 있다.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서 남겨두는 것이다. 그런데 사라졌으니 잊히는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는 애써서 기억을 하고, 그 기억을 알려야 한다. 사라져서 잊히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는 것이 내 역할이 아닐까. 그래서 이번에 프로그램 체험 전에 사람들에게 두 건물을 모두 설명하면서도 세관에 대한 시간을 조금 더 할애했다.


세관 건물은 1911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부산이 개항장이 되고, 부산역과 부산항이 생기면서 세관의 일이 중요해졌다. 그러면서 일제는 부산에 세관 건물을 새로 지었고, 그게 지금 부산데파트가 있는 곳이다. 세관 건물을 지으면서 최첨단의 공법으로 지었는데, 그 이유가 부산역과 부산항일대는 모두 매립지이기 때문이다. 매립지에 지어야 하다 보니 기반을 단단히 다질 필요가 있었다. 단단히 다졌지만 높이 짓는 건 위험부담이 있어 한 층이 150평 정도로 하여 2층 건물에, 건물 끝단에 4층짜리 종탑을 붙였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금 남은 사진이나 그림을 보아도 고풍스러움이 느껴진다. 외관은 붉은색 벽돌과 대리석으로 장식을 했는데, 그 벽돌은 러시아에서 수입해 온 것이라고 한다. 그 당시 인부들의 하루 일당보다 벽돌 한 장이 더 비쌌기 때문에 수입을 해오면서도 한 장씩 따로 포장을 해왔을 정도라고 한다. 그렇게 지어진 세관 건물은 부산의 랜드마크가 되어 부산항으로 들어온 관광객들은 이 세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뒤에 일정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세관 건물은 많은 인기를 누리며 존재했고, 한국전쟁과 부산역 대화재 등의 여러 위기도 넘기고 부산지방문화재로 지정도 되었지만, 경제적 논리에는 살아남지 못했다. 많아지는 물동량의 문제와 부산항을 좀 더 키우기 위해서 도로를 넓힐 필요가 생겼고, 결국 이 세관 건물을 철거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당시 많은 시민들과 예술가 단체에서 철거를 반대했지만 결국엔 철거를 했고, 지금은 다른 부분은 다 없어지고 4층 종탑 윗부분만 부산 세관 뒷마당에 남아있다.


여기까지가 역사적 사실이다. 이걸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 며칠 전 서울시의 문화유산 인근 개발제한 규정 완화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제기한 소송에 대한 결과가 떠올랐다. 서울시의회의 승소. 결국 종묘 주변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 가능해지도록 한 판결이다. 이 판결 결과를 보면서 너무 슬프고 화가 났다. 오래된 것들이 가치를 인정받고, 그것이 더 오래도록 유지되고 기억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경제적 논리에 지다니. 물론 법리상으로 따진다면 서울시 의회 조례가 상위법 위반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결국 문화유산의 파괴이고 가치의 훼손하는 일로 이어진다면, 과연 법률로써만 이 일을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을까. 법의 문제라면, 문화재보호 법으로 막아야 하겠지. 그렇지만 나는 법률가도 아니고, 국회의원도 아니고,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걸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기억시키고, 잊히는 속도를 늦추도록 하는 것.


그래서 세관 건물 설명 말미에 이 말을 덧붙였다.

“최근 서울시의 종묘와 관련된 판결이 있었습니다. 그 판결을 보면서 이 세관 건물의 철거가 떠올랐습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들이 경제적 논리에 밀리는 걸 볼 때면 많이 속상하고 아쉽습니다. 그래도 기억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 가치는 사라지지 않을 거고,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세관 건물은 사라졌지만,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가치 있는 것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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