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 되면 베트남 도로 곳곳에는 꽃을 파는 상인들과 사려는 사람들 때문에 길이 복잡해진다. 베이커리에는 아침 일찍부터 사무실에서 여성의 날 기념식을 위해 케이크를 구매하려는 직장인들로 문전성시이다. 회사 CEO가 영화 캐릭터 모습을 분장해서 여직원들을 재미나게 해주고 여직원 모두에게 장미꽃을 주기도 한다. 점심 시간 식당가는 회사에서 여성의 날을 기념한 회식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쇼핑몰과 백화점에서는 여성 고객들에게 장미 꽃을 선물하고 각종 할인 행사와 구매 금액에 따른 상품권 지급과 같은 프로모션이 한창이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은 베트남 유통업계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대목이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여성의 날은 단순하게 여성들에게 선물을 사주기 위한 소비 천국의 날만은 아니다.
필자는 베트남이 꼭 발전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 확신하는데 그 근거 중에 하나가 바로 ‘베트남 여성’들 때문이다. 베트남 여성들은 강인한 생활력으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데 베트남 역사 속 수 많은 여성 영웅들이 이를 증명한다. 천 년 중국 지배 역사 속에 후한을 상대로 민중 봉기를 일으켜 베트남 최초의 독립 국가를 건국한 영웅은 Trung Trac (쯩 짝) / Trung Nhi (쯩 니) 자매이다. 이 두 여성이 역사적 거사를 일으켰을 때 이들을 도와 중국군과 싸웠던 영웅 호걸들은 36명의 여성 장수들과 백발백중으로 적들을 벌벌 떨게 했다는 여성 궁수 부대들이었다. 단순하게 모계 사회 국가에서 있었던 전설 같은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 ‘두 명의 쯩’ 여사라는 뜻의 Hai Ba Trung (하이 바 쯩)이라 부르며 베트남 전국 대도시 곳곳의 중심 도로 이름을 ‘하이 바 쯩’이라 명명하고 이 두 여성 영웅을 기린다.
베트남에는 그 외에도 수 없이 많은 여성 영웅들이 있다. 프랑스와의 독립 전쟁 중에 나라를 위해 헌신한 Nguyen Thi Minh Kay (응웬 티 민 카이), 우리의 유관순 열사와 비슷한 시기에 17살의 나이로 무장 독립 운동을 하다 순국한 Vo Thi Sau (보 티 사우), 국가 부주석까지 올랐던 Nguyen Thi Dinh (응웬 티 딘) … 등등 베트남에는 이들 여성 영웅들 기리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딴 학교와 도로가 전국 곳곳에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 중 여성과 아이들은 주로 피해자이다. 여성이 전쟁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물품을 공급하고 지원해주는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하지만 베트남 여성들은 남성 군인들과 함께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베트남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전쟁 기록물을 보면 남성 군인들과 나란히 총을 겨누고 있는 여성 군인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 베트남 여성의 강인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는 모습이 하노이 전쟁박물관에 전시된 추락한 미군 전투기 잔해를 포획한 사냥감 마냥 끌고 가는 여성 전사의 모습이다.
베트남 민족의 영웅 호치민 주석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1945년 9월 2일 하노이 바딘 광장에서 베트남 민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이 때 바딘 광장에서 첫 국기 게양식을 하는데 여성 2명과 남성 2명이 국기를 게양하게 했다. 평소 호치민 주석이 ‘여성은 혁명을 함께 이루어 낸 동지이며 남성과 여성의 권리는 동등하다’고 강조한 것을 전세계에 상징적으로 보여준 모습이었다. 호치민 주석은 일찍이 프랑스와의 독립 항전 중인 1930년 10월 20일 베트남여성연맹을 창립하게 해 여성들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여성의 존재 가치를 존중하는 국가 기념일로 선포했다. 그래서 베트남에는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과 10월 20일 ‘베트남 여성의 날’ 이렇게 두 번의 여성의 날을 국가 전체가 기념한다.
전쟁이 끝나고 베트남 여성들은 생활 전선에서 독립적이고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어 나갔다. 2021년 국제노동기구 ILO가 내놓은 <베트남의 성과 노동시장>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생산가능 인구에 속하는 베트남 여성의 70.9%가 경제활동 인구였다. 이는 글로벌 평균인 47.2% 보다 월등하게 높은 수치이다. 베트남 여성들은 기업에서 임원 비율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2021년 시장 조사기관 IPrice (아이프라이스)가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동남아 주요 6개국 전자상거래 기업의 임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베트남은 여성임원 비율이 46%로 1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회계 컨설팅 기업 Grant Thornton (그랜트 쏜튼)이 해마다 발간하는 <Women in Business 2021>에 따르면 베트남 기업의 최고 재무 책임자 60%, 인사 임원 59%, 최고 마케팅 책임자 34%가 여성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베트남 기업에서 여성 임원 비율은 세계 3위이다.
베트남 1인당 국민소득이 2020년 기준 3,000달러가 채 안되지만 여성들의 사회적 참여율이 높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베트남 여성들은 가족 소비의 주체이다. 미중 갈등으로 베트남이 중국을 대신할 시장으로 부각되면서 안정적이고 빠른 경제 성장을 하고 있으니 베트남 여성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은 이 베트남 여성 소비자를 어떻게 붙잡아야 할까?
사회 공헌 활동을 하더라도 여성들만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여성들이 질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교육을 시켜주고, 여성들만을 위한 장학금을 수여하는 것도 여성 소비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이다. 어떠한 홍보를 하고 사회 공헌 활동을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강인한 베트남 여성’들이 꿈을 실현 시킬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