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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큼대마왕 May 25. 2023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국가들의 관계 2. 해양 아세안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대륙 아세안 국가들은 대체로 자신의 민족 영토를 되찾으며 나라를 건국했다. 반면 해양 아세안 국가들은 유럽 국가들의 식민 영토를 토대로 나라가 생겨났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말레이 연방과 (나중에 말레이시아 / 싱가포르 / 브루나이 3개국으로 분리)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스페인-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으로 신생 국가들이 형성되었다. 


같은 뿌리의 민족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지금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사람들은 수 천년 전 말레이 반도에서 퍼져 나간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2만개가 넘는 섬에서 각자 흩어 살던 이 지역은 서기 7세기경 수마트라 섬을 기반으로 한 스리위자야 제국이 (671년 ~ 1025년) 지금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대부분을 지배하며 처음으로 통합했다. 그 이후에도 이 지역을 통치하던 왕국들에 의해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가 유입되어 동일한 종교에 의한 동질성은 더욱 견고해졌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먹는 음식도 비슷한 것들이 많고 무엇보다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는 동일한 뿌리 언어라 양쪽 지역 사람들은 일상 생활 언어는 편하게 주고 받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민족의식이 움트면서 인종, 종교, 문화적, 역사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서로에 대한 통합 움직임도 제기되었다. 



1950년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를 비롯한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자들은 말레이 연방과 인도네시아 지역을 통합하는 ‘그레이터 인도네시아_Greater Indonesia’를 주창했다. 또한 1962년 7월 마카파갈 필리핀 대통령은 말레이연방, 필리핀, 인도네시아 모두를 아우르는 마필린도_Maphilindo(말레이-필리핀-인도네시아 앞 글자 조합)를 제안했다. 하지만 공산국가 지도자들과 가까이 지내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를 경계하던 영국은 말레이시아 연방 자체적으로 독립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반발한 수카르노는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보르네오 섬에서 말레이시아와 전투를 벌였다. 결국 영국연방의 일원으로서 호주, 뉴질랜드의 군사적 지원을 받은 말레이시아가 3년 6개월 만에 승리했다. 통합의 꿈은 사라졌지만 ASEAN 창설 정신의 밑거름이 되었다.


1965년 11월 25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3개국 정상회담 



아직도 마필린도를 꿈꾸는 일부 인도네시아인들이 만든 마필린도 캐릭터와 통합 국기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말레이시아가 과거 자신들의 한 역사였다고 생각하지만 말레이시아는 정부 사이트를 통해 자신들의 시조는 말레이반도에서 융성했던 말라카 왕국 (1403년~1511년)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한 뿌리에서 나고 자라 각자 살림을 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애증의 관계로 동일한 음식과 문화에 대해 서로 원조임을 내세우며 기싸움이 대단하다. 양국 간에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 경기라도 있는 날에는 우리의 한일전 이상의 긴장감과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는 헌법에 명시된 말레이 토착민들을 위한 독특한 차별적인 특혜법이 있다. 예를 들면 말레이시아에서는 무슬림이며 말레이 토착민의 경우에는 재정 상태와 상관 없이 부동산을 구매할 때 7%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대학 입학 정원의 55%는 말레이 토착민에게 할당되어 있다. 이 때문에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대학 가기 어려운 중국계 말레이인들은 호주나 영국 대학으로 유학을 간다. 비토착민이 공무원이 되는 것 역시 어렵다. 공식적으로는 어느 인종이나 공무원이 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비토착민 공무원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나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군과 경찰 공무원직에서 비토착민의 자리는 희박하다. 이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아닌 합벅적인 차별이다.


 1957년 말레이시아 정부는 말레이 토착민에 대한 특별한 권리를 헌법에 명시했다. 당시 말레이시아 초대 총리인 툰구 압둘 라만은 ‘중국인은 돈 벌이에 관심이 있고 능력이 뛰어나지만 말레이인은 단순하고 쉽게 만족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헌법의 보호 없이는 내 나라에서 떠돌이가 될 수 있다’라며 토착민 특혜법 취지를 설명했다. 시장 장악 능력이 뛰어난 중국인들에 치여 토착민들이 하층민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말레이 연방에서 싱가포르가 쫓겨나듯 분리 독립하게 된 것도 중국인들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내부적으로 이 법률에 대한 대폭 완화나 철폐를 해야만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는 목소리는 나오지만 손에 쥔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시아 속 서양, 필리핀


동아시아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독특한 국가는 필리핀이다. 7천여개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은 지역간 물리적인 교류가 쉽지 않다 보니 통합된 왕조도 없이 원시 부족 단위의 삶을 살아왔다. 필리핀 북부 지역은 중국인들이 해상 무역이나 해적질을 하며 살아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1521년 마젤란이 필리핀을 점령하면서 필리핀의 역사 기록이라는 것이 처음 시작된다. 필리핀이라는 나라 이름 역시 당시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수 많은 섬에서 흩어져 살아오느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문자나 문명이 없었다 보니 민족 의식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필리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바로 순수 스페인계와 혼혈인 간의 차별이었다. 


스페인 식민 통치와 함께 시작된 카톨릭은 필리핀인들의 구심점이었는데 필리핀 카톨릭의 교구 수장은 스페인에서 파견 온 순혈 스페인 사제만이 할 수 있었다. 300여년 동안 필리핀에서 나고 자란 스페인계, 중국계, 원주민 그리고 그 혼혈들은 자신들의 근간인 신앙을 차별 받게 되자 분노는 극에 달했고 그 분노는 독립 전쟁으로 까지 이어졌다. 필리핀인들은 스페인과 미국 전쟁 틈에 독립을 쟁취하나 했지만 미국의 식민통지가 48년간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를 지닌 필리핀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다른 아시아 사람들과 동질감을 못 느낀다. 필리핀인들의 역사 자체이자 근본이 425년 역사를 함께한 카톨릭의 스페인과 미국이기 때문이다. 여느 아시아 국가들은 과거 선조들의 찬란했던 역사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나라를 되찾는 ‘광복 운동’을 했다면 필리핀인들은 자신을 친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은 스페인으로 부터 ‘분리 독립’ 운동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세안 각국의 역사는 다채롭고 서로 간의 얽히고 설킨 역사의 실타래가 복잡하다. 아세안에 관심을 갖고 각 국에 대해 좀 더 공부해 외교 문맹이 되지 않게 노력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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