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국가들의 관계
우리의 최대 흑자국이었던 중국으로의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그 대체 지역으로서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관심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큰 관심에 비해 아세안 각 국가 간의 문화적 특징이나 서로의 정치 외교적 역학 관계까지는 잘 모른다. 동남아 10개국을 ‘아세안’이라는 하나의 국가 연합체로 묶어서 이 지역을 바라보다 보니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오인까지도 하게 된다. 인접 국가 간에는 수 천년간 치열하게 싸우며 영토를 복속하기도 하고 정치적, 경제적으로는 절대 동맹 국가였다가 최근에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으로 사이가 멀어지기도 한다.
ASEAN은 크게 ‘대륙 아세안’과 ‘해양 아세안’ 이렇게 두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1) 대륙 아세안 :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 (5개국)
2) 해양 아세안 :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필리핀 (5개국)
대륙 아세안 국가 지역에 대해서는 ‘인도차이나 반도 5개국’ 또는 ‘메콩강 5개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인도차이나’라는 표현은 지금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지역을 점령한 프랑스가 중국과 인도 사이에 있는 어중간한 지역이라는 뜻으로 명명한 것이다. 최근에는 인도차이나 반도 영역을 태국, 미얀마까지 포함하는데 현재 2억 5천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상당히 굴욕적인 지명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를 ‘차이나재팬’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이 지역 5개국 모두를 관통해 흐르는 메콩강 이름을 따라서 ‘메콩강 경제권’ 이라 부르는데 메콩강을 둘러싼 중국과의 깊은 갈등으로 메콩강 국가들이라는 표현이 전세계적으로 자주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태국의 바트 경제 3국
태국은 대륙 아세안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하며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는 태국의 화폐인 Baht_바트 경제권이다. 이 3개국에서는 미국 달러와 함께 태국 바트화가 쉽게 통용이 된다. 태국을 중심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 나라 사람들은 소비재 유통 강국인 태국을 통해 다양한 물자를 보따리 무역 형태로 수입하기도 한다.
유엔 국제이주기구의 IOM의 2022년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가 확산되기 이전 2019년 태국에는 300만여명의 등록된 외국인 노동자가 있었다. 그 중 48%인 144만여명이 미얀마 국적이며 34%인 102만여명이 캄보디아인, 18%인 54만여명이 라오스인이었다. 정식 등록되지 않은 불법 체류자까지 더하면 이들의 숫자는 배 가까이 늘어난다. 정식으로 등록된 외국인 노동자 숫자만으로도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전체 인구의 3~7% 규모가 태국 바트화를 받고 그 돈을 자국으로 보내니 태국 바트 경제권이 형성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육로로 쉽게 국경을 오가는 이들은 태국에서 유통되는 제품들을 보따리 무역 형태로 물자가 부족한 자국에서 팔기도 한다.
아세안 소속도 아니고 바트 경제권도 아니긴 하지만 10만여명의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태국에서 일을 하고 있어 이들을 통해서도 방글라데시로도 물건이 유통될 수 있다. 또한 태국 방콕에는 ‘Soi Arab’이라고 불리는 중동 무슬림 거리가 있다. 중동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한 숙박업소와 식당, 각종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들이 밀집해 있는데 태국으로 보따리 무역을 위해 찾아오는 중동의 다양한 국적의 상인들이 찾아 온다. 그래서 태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이 자리를 잘 잡으면 태국 뿐만 아니라 인근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는 물론 방글라데시 멀리 중동에까지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이 확장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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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영향력 아래 국가 캄보디아, 라오스
캄보디아, 라오스가 경제적으로는 태국과 밀접하고 연관을 맺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베트남의 정치적 영향 아래 있는 국가들이기도 하다. 1978년 12월 베트남은 수 백 만명의 캄보디아 국민을 학살한 킬링필드의 주범 폴 포트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베트남 정권을 수립했다. 39년째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훈센 총리는 베트남에 의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베트남을 견제하려는 중국의 집요한 캄보디아 공략으로 최근에는 중국 자본에 의해 경제가 좌지우지되는 캄보디아이긴 하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베트남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라오스는 베트남이 미국과 전쟁을 하는데 적극적으로 도와준 혈맹이며 베트남은 라오스 공산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게 핵심적인 도움을 줬다. 1987년 라오스와 태국의 국경 분쟁 당시 라오스가 태국에 밀리자 베트남 군이 태국 국경을 공격하는 등 절대적인 우방 관계였다. 라오스 초대 공산당 서기장이자 국가 수반이었던 까이선 폼위한은 베트남계 라오스인으로 오랫동안 정치 경제적으로 베트남에 의지하며 라오스를 이끌었다.
최근 라오스와 베트남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2021년 3월에 베트남 건설부가 1억 1100만달러 (한화 1450억원)을 들여 라오스에 기증한 라오스 국회 의사당이다. 특이한 것은 라오스 국회의사당을 민간 건설업체가 아닌 베트남 11공병 사단이 건설했는데 ‘베트남과 라오스는 피를 나눈 전우’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으로 보인다.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수 많은 것들이 베트남 영향력 아래 있음을 보여주는데 가장 상징적은 것은 주요 국가 인프라 사업의 베트남 지분이다. 캄보디아의 국적기 ‘앙코르 에어’와 라오스의 ‘라오 에어라인’의 지분 49%를 베트남 국영 항공사 베트남 항공이 보유하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경영이 악화된 베트남 항공은 22년 5월 앙코르의 에어의 지분 35%를 매각해 현재 14%만 보유하고 있다) 또한 지난 칼럼을 통해 소개한 베트남의 군통신사 Viettel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1위 통신 기업이다.
대륙아세안 지역에서는 오랜 맹주였던 태국과 1980년대 후반 뒤늦게 개혁개방을 하며태국의 위상을 맹추격하고 있는 베트남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해양 아세안 국가 그룹에서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서로 해양 그룹에서의 원조 맹주 싸움을 벌이고 있고 필리핀은 전혀 아시아적이지 않는 독특한 역사로 아세안에서 겉돌고 있다. 해양아세안 국가들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