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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큼대마왕 Jun 15. 2024

한류가 만능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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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아세안 월드컵이라 불리는 스즈키컵에서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의 우승으로 베트남 전체가 흥분의 도가니였다. 박항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승승장구했고 스즈키컵 우승으로 명실상부 아세안 최고 축구팀이 되었다. 


마침 스즈키컵 결승전이 있던 날 코트라(KOTRA)가 베트남 호치민에서 기획한 한국 소비재 판촉전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국내 한 언론사가 <베트남 K뷰티에도 ‘박항서 매직’>이라는 제목으로 코트라 행사 소식을 보도했다. 보도 내용은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박항서 감독 덕분에 코트라 행사장에 사람들이 몰렸고 특히 ‘한국산 화장품과 건강기능 식품’이 인기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화장품 기업의 법인장으로서 행사에 참여하고 있던 필자로서는 쓴웃음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베트남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박항서 감독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으나 당시 기획전은 스즈키컵의 우승과 상관 없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박항서 감독의 인기와 K뷰티는 전혀 무관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박항서 매직’이 K뷰티 인기에 조금이라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 베트남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황당해하는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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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에서 한류 인기가 높아 한국 제품이라면 무조건 잘팔릴 것이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 개인뿐만 아니라 굴지의 대기업마저도 그런 황당한 생각을 한다. 


이따금 필자에게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이나, ‘한국에서 판매가 부진한 제품’을 저렴하게 공급하면 ‘베트남에서 팔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문의하는 업체들이 있다. 이들의 질문 속에는 ‘동남아는 못 사는 나라이니까 하자가 있더라도 한국 제품이라면 잘 팔릴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아세안 시장 상황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라 이해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류를 해외사업의 만능’이라고 맹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류 만능’에 대해 현실 상황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가 있다. 


2022년 hy(옛 한국야쿠르트)가 세계적인 한류 스타 BTS 멤버들의 사진을 넣어 판매한 콜드브루 커피는 세계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서는 반응이 좋지 못했다. 베트남에서 BTS 커피를 독점 유통한 업체의 대표는 베트남에서 유명하고 영향력이 상당한 사람이었다. BTS 커피 런칭 당시 베트남 주요 언론에 광고를 하고 베트남 연예인들을 불러 BTS 커피 런칭 토크쇼까지 진행했지만 베트남에서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베트남은 2019년 전세계에서 BTS 팬이 2번쨰로 많은 나라였다. 팬덤 연구소 블립(Blip)의 유튜브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한 ‘2019년 K-POP 세계지도’에 따르면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BTS 인기가 높은 나라였다. 당시 베트남에 이어 전세계에서 BTS 인기가 3번쨰로 많은 나라인 인도네시아에서도 역시 BTS 커피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언론 매체인 모조크 (Mojok)는 ‘가격은 비싸고 맛은 평범하다’고 혹평을 내놓기도 했다. 그래서 업계 관계자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서 판매하기에는 BTS 커피의 가격이 높기 때문에 반응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모두 270ml 용량의 BTS 커피를 현지 한 끼 식사 값인 한국돈으로 2800원가량에 판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오판이다. KPOP 열풍의 중심에 있는 베트남 10대~20대 초반들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세계 2위 커피 원두 수출국가인 베트남의 직장인들은 졸음을 깨우고 집중력을 위해 카페인을 섭취한다. 야외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카페인 함량이 높고 단기적인 에너지 보충을 해줄 수 있는 달콤한 연유가 듬뿍 들어간 커피를 선호한다. 당시 베트남에 판매되었던 BTS 커피는 모카 라떼, 바닐라 라떼로 베트남 소비자들의 취향에도 맞지 않았고 주요 소비자가 될 10대들은 커피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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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사례가 있다. BTS 커피가 런칭하기에 앞서 세계적인 음료 기업 펩시는 2021년 블랙핑크 멤버들 사진이 들어간 펩시 콜라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했다. 해당 제품은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베트남에서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다. 인근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서 순식간에 품절이 났을 정도로 인기였지만 베트남에서는 딱히 반응이 없었다. 



블랙핑크 스페셜 에디션 펩시 콜라의 가격은 기존 펩시와 차이가 없는 9천동(450원)이었다. 가격도, 한류 스타도 판매에 절대적 영향을 준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한 펩시 입장에서는 블랙핑크 팬 한 명이 각 멤버 얼굴이 인쇄되어 있는 펩시 4개를 모두 구매해서 집에 보관하길 원했겠지만 베트남 팬들은 펩시에 큰 관심이 없었다. 펩시 콜라 자체가 베트남 10대들에게 인기 있는 음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세계 음악 시장을 뒤흔들던 BTS와 블랙핑크였지만 베트남에서 만큼은 안팔리는 제품을 잘 팔게는 하는 만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물론 한류의 영향으로 물건 판매가 잘 되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판매가 잘 되는 것을 더욱 잘되게 하는 것이지 안팔리는 제품을 팔게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한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이렇게 입장을 바꾸어 설명을 해보려고 한다.


한국에 피자와 스파게티를 판매하는 식당이 수 천 곳이 있는 것을 확인한 이탈리아 기업이 ‘한국은 이탈리아 문화 열풍이라 이탈리아 상품을 수출하면 대박이 날 것이다’라고 분석한다면 우리 한국인들은 쉽게 수긍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프랑스 홀릭에 빠져있다! 프랑스 제품이라고만 하면 무조건 팔릴거야!


또한 대한민국 베이커리 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1, 2위 기업의 이름 모두 프랑스어로 되어 있고 프랑스풍 베이커리를 추구하고 있으니 프랑스 제품이라면 무조건 팔릴 것이라 판단한 프랑스 기업 담당자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물론 이탈리아, 프랑스 명품은 한국에서 엄청나게 팔리지만 그 외에 제품이나 두 나라의 문화 상품은 인기가 없다. 이탈리아인과 프랑스인이 우리 나라에서 충분히 오판할 수 있는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스스로에게 자문자답 한다면 한류가 해외 사업의 만능은 아닐 것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해외 사업하는데 있어 ‘한류 만능’을 경계하고자 이 글을 쓰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아세안에서 한류를 앞세운 ‘문화식민화’를 경고하고자 함도 있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못 사는 나라’에서의 ‘한류’ 덕분에 한국 제품도 당연히 잘 팔릴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은 ‘아세안을 한류의 문화식민지’로 확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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