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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큼대마왕 Jul 26. 2024

좌초 위기 인도네시아의 꿈
- 수도 이전

좌초 위기 인도네시아의 꿈, 수도 이전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숙원 사업이었던 수도 이전 프로젝트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본래 올해 8월 17일 독립기념일에 맞추어 새 수도 누산타라에서 공식 수도 이전을 선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수도 이전 두 달을 앞두고 최고 책임자 2명이 갑작스럽게 사임하더니 별다른 설명 없이 자카르타와 누산타라 두 곳에서 각각 독립기념행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정부 발표가 나왔다. 7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조코위는 누산타라 새 대통령 집무실에서 일할 것이라며 수도 이전에 자신감을 보여왔다. 하지만 싱가포르 언론매체 CNA는 지난 7월 8일 조코위가 전기, 수도와 같은 기본 인프라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며 수도 이전 연기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포화상태 자카르타

 현재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는 3340만 명이 거주하고 있어 심각한 과밀상태인 데다 해마다 최대 8cm씩 지반이 침하되고 있다. 게다가 극심한 교통 정체와 세계 최악의 대기 오염으로 오래전부터 수도 이전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하지만 핵심 권력과 자본이 몰려 있는 자카르타 기득권들의 반대가 극심해 매번 무산되었다.


2022년 2월 누산타라 건설 발표하는 조코위 대통령_출처 인도네시아 내각 사무국


 그럼에도 재선에 성공해 국민들의 지지를 업은 조코위는 19년 4월 칼리만탄(보르네오 섬)에 새 수도 누산타라 건립을 선포한다. 2040년까지 모두 3단계로 진행되는 인도네시아 새 수도 건립 사업은 1단계로 2024년까지 대통령궁, 정부청사, 국회 등 주요 국가 기관들 이전을 목표로 한다. 2단계는 2030년까지 6개 위성 도시를 포함해 교육, 의료 상업 지구 등을 개발하고 2040년까지 수도 확장 사업을 하는 것을 3단계로 사업이 종료된다. 


모두 300억 달러의 (원화 40조 원) 비용이 드는 수도 건립 사업은 인도네시아 정부 예산 20%를 투입하고 나머지는 해외 투자를 포함한 민간 자본으로 충당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2020년 코로나 펜데믹으로 사업 진행은 차질을 빚었고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투자 유치는 쉽지 않았다. 임기가 몇 개월 남지 않은 현재까지도 조코위가 해외 곳곳을 다니며 누산타라 외자 유치에 적극 나섰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다. 투자 유치가 어려운 이유로는 정권 교체로 인한 수도 이전 프로젝트 불확실성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프라보워의 무상급식 공약에 대해 해외 투자자들이 우려한다는 로이터 통신의 기사


대통령 당선인 프라보워 수비안토는 선거 기간 중에는 수도 이전을 지속하겠다더니 당선 이후에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자신의 대선 공약이었던 8230만 명의 어린아이들 대상으로 한 100% 무상급식을 우선 이행하겠다는 공언을 수 차례하고 있다. 무상 급식에 필요한 예산은 연간 450조 루피아(38.5조 원)로 수도 건립 전체 사업비와 맞먹는다. 이에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와 무디스는 무상급식 공약 이행시 인도네시아 재정 위기를 경고하고 나섰지만 프라보워 측은 국가부채에 대담해지겠다고 맞받아쳤다. 지난 7월 18일 무상급식 공약 이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변하던 프라보워의 조카가 신임 재무부 차관에 임명되면서 무상급식에 밀린 수도 이전 사업의 앞날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인도네시아 민족주의 산물 누산타라

세계 주요 언론은 조코위가 임기 내에 수도 이전 프로젝트를 안착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고 비판하고 있다. 아시아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보르네오 섬으로 수도를 이전하면 현지 자연환경을 파괴할 것이라는 환경보호론자들의 비난도 쏟아져 나온다. 게다가 고등 교육을 받은 대도시 출신의 공무원들과 그 가족들은 상류층을 형성하고 현지 원주민들은 하층민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쏟아진다. 하지만 조코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도 이전을 강행했다. 인도네시아 국민 지지율 77%에 달하고 인도네시아 외교 위상을 드높인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던 조코위는 왜 수도 이전에 집착하는 것일까? 


새 수도 누산타라 공사 현장을 둘러보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한 자바섬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려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이다. <뉴욕타임스>는 23년 5월 16일 자 조코위와의 인터뷰를 통해 누산타라 수도 이전 속 뜻을 보도했다. ‘수 백 개의 언어와 민족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과 소수 기독교인과 여러 다른 종교인들 어우러져 살고 있는 세속적 민주주의 국가이다. 수 십 년 동안 종파 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응집되어 살고 있는 곳’이라며 ‘누산타라는 고대 자바어로 ‘군도 : 여러 섬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는 뜻으로 17,000여 개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수도’를 뜻한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자카르타는 국가 전체 인구의 57%가 모여 살고 국가 전체 GDP의 60%가 집중되어 있는 자바섬만을 위한 수도였다면 누산타라는 인도네시아 전체를 위한 수도라는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해양부 아세안 지역의 중앙에 위치한 누산타라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수도 이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도네시아만을 위한 수도가 아닌 말레이시아-싱가포르-부르나이-필리핀 모두를 아우르는 아세안 해양 대국의 중심지 역할을 원한 것이다. 22년 2월 독일 언론 도이체 벨레는(DW) 인도네시아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라하디안 룬잔 (Rahadian Rundjan)의 외부 기고를 통해 조코위의 수도 이전 계획은 ‘과거 식민지 유산을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함’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수도 자카르타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건설된 도시로 인도네시아에서 착취한 향신료를 유럽에 원활하게 수출하기 적합한 위치에 건립되었다. 인도네시아 지도를 펼쳐보면 자카르타는 인도양을 통해 유럽 대서양으로 빠르게 나아가기 좋은 위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세안 중심 수도라 하기에는 외곽 밑 부분에 쳐져 있다. 이에 반해 새 수도 누산타라는 아세안 해양 5개국의 한 중심에 있다. 게다가 보르네오 섬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소외된 영토인 ‘사라왁’과 ‘사바’ 주가 인도네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라하디안 룬잔은 ‘보르네오 섬에 새 수도 누산타라가 들어서면 말레이시아의 외곽 지역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조코위는 인도네시아 - 말레이시아와의 연합체를 꿈꾸고 그 연결 고리로 새 수도를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관심 받는 섬 보르네오에는 '인도네시아 - 말레이시아 - 브루나이' 3개국의 영토가 함께 있다


보르네오 섬에 새 수도를 건립하는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제시한 사람은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 수카르노였다. 수카르노는 1950년 식민지배의 산물인 자카르타 대신 보르네오 섬에 새 수도를 건립하고 말레이시아와 연방 국가를 수립하고자 했다. [가깝고도 먼 아세안] 지난 11회 칼럼에서도 다룬 적이 있지만 (주간경향 1529호 <말레이. 필리핀. 인니 ‘마필린도’를 꿈꾸었다> 참조) 아세안 해양 5개국은 본래 한 뿌리였다. 조코위는 수카르노처럼 인도네시아에 국한되지 않은 아세안 5개국 연합 국가를 꿈꾸고 수도 이전을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조코위는 이 큰 그림을 위해 자신이 속한 여당 대선 후보 대신 반대 진영이자 인도네시아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던 프라보워를 지지해 대통령에 당선시켰지만 토사구팽 당하게 생겼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라보워가 소유한 재벌 기업 이름이 ‘누산타라 그룹’인데 누산타라 수도 이전 계획은 프라보워에 의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있다. 수카르노부터 이어져온 조코위의 원대한 꿈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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