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베트남 권력 구조, 베트남의 미래는?

14년간 베트남 최장수 최고 권력자였던 응우엔 푸 쫑 서기장이 지난 7월 19일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부정부패 척결’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쫑 서기장은 미스터 클린’이라 불렸다. 그 덕분에 베트남은 국제투명성기구가 해마다 발표하는 ‘부패 인식 지수’에서 ‘2012년 123위’였던 것이 ‘2023년 83위’로 40 계단이나 뛰어올랐다. 아세안에서는 싱가포르(5위)-말레이시아(57위) 다음으로 베트남이 3번째 순위이다. 아세안 주요 국가인 태국(108위), 인도네시아(115위), 필리핀(115위)은 100위권 밖으로 11년 전보다 순위가 오히려 더 떨어졌다.

[정권의 명운을 건 부패척결 운동]

미국과 유럽 투자자들은 불확실 요인이 많은 신흥개발국에 투자할 때 사회 투명성을 투자 판단 주요 지표로 삼는다. 베트남은 EU와 FTA를 협상할 때 EU의 요구에 따라 ‘부패 방지’ 항목을 합의 사항에 반영했다. 중국을 대체할 세계 최적의 생산기지로 떠오르던 베트남이었지만 유럽 투자자들은 사회 투명성 측면에서 베트남을 불신했다. 하지만 EU는 쫑 서기장의 강력한 부정부패 척결에 큰 신뢰를 갖기 시작했다. 쫑 서기장이 ‘불타는 용광로’로 명명하며 부정부패 척결 운동을 전방위적으로 진행하던 2019년, EU는 결국 베트남과 FTA를 체결한다. 2019년 그 해 베트남 부패인식지수는 ‘96위’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100위 내로 진입했다. 이윽고 2021년 덴마크 기업이자 세계적인 조립 블록 완구 업체인 레고가 13억 달러를 (1조 8천억 원) 투자해 베트남 남부 빈즈엉에 제조 시설을 설립했다. 23년 베트남-EU 무역액은 723억 달러로(100조 원) FTA체결 전인 2019년 대비 38% 성장해 FTA 체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23년 5월 일본에서 열린 G7정상회담에서 베트남 판민찐 총리를 만난 샤를 미셀 EU 상임의장은 베트남의 부패방지 성과에 대해 거듭 높은 평가를 표했다.

쫑 서기장이 부정부패 척결 운동을 시작할 때 세간의 평가는 ‘정적 제거용’이라고 의심했었다. 하지만 쫑 서기장은 경제가 발전할수록 베트남 국민들의 의식이 높아지는 만큼 부패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1년 12월 전국 당간부회의에서 ‘부정부패 척결은 당의 생명과 정권의 생존이 걸린 일’이라며 부패 척결을 멈추지 말라고 강조했다. 베트남의 최고 권력자는 국민을 두려워하고 그 국민의 기대를 반하면 당의 존립 근거가 없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실리 균형 외교의 달인]

쫑 서기장의 또 다른 업적으로 ‘실리적인 균형 외교’를 꼽는다. 좌우로 잘 휘지만 제자리는 변화 없는 대나무에 빗대 베트남의 균형 외교를 ‘대나무 외교’라 부른다. 베트남의 외교 원칙은 유연하게 주변 강대국들과 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베트남의 기본 원칙과 주권은 견고하게 지키는 균형 외교를 하는 것이다.

쫑 서기장의 대나무 외교는 23년 9월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 23년 12월 중국 시진핑 주석, 24년 6월 러시아 푸틴 러시아 대통령까지 1년 사이 세계 최강의 국가 정상들을 베트남으로 불러들이는 마술을 펼쳤다. 게다가 이들을 상대로 베트남 국익에 필요한 것은 최대한 받아내는 신공까지 발휘했다. 지난 10여 년간 미-중 갈등으로 어느 한쪽 편에 서기를 강요하는 강대국들의 으름장에도 베트남은 굴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양쪽 편 모두와 우호 관계는 유지해 전 세계 외교가에서 찬사를 받았다. 물론 베트남의 중립 외교는 쫑 서기장 한 사람의 힘에 의해 설정된 것이 아닌 베트남의 오랜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지만 이를 훌륭하게 발전시킨 것은 쫑 서기장이다.

[청렴했던 미스터 클린]

쫑 서기장의 '미스터 클린'이라는 별명은 부정부패를 깔끔하게 청소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하지만 그의 삶 역시 청렴한 그 자체로 보인다. 쫑 서기장의 국가 장례차 치러지는 현장에 있는 오래된 도요타 차량이 베트남 젊은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1998년에 생산된 쫑 서기장의 관용차인데 쫑 서기장이 국회의장이던 시절 전임자로부터 물려받아 20년 동안 타고 다녔던 차이다.

쫑 서기장이 20년간 타고 다닌 관용차_98년식 도요타 크라운

베트남 국가 권력 서열 4위가 전임자가 타던 것을 받아다가 권력 서열 1위로 14년간 재임했는데도 그 차량 그대로 타고 다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베트남 젊은 층들이 크게 호응했다. 게다가 쫑 서기장에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는데 둘 다 평범한 국가공무원이다. 베트남 최고의 권력자 아버지의 후광으로 핵심 요직에서 각종 이권을 통해 부자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 두 자녀들은 평범한 공무원으로 조용히 근무하고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쫑 서기장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본래 밤 10시까지만 운영할 예정이었던 추모 방문은 넘쳐나는 시민들로 인해 24시간으로 급히 변경했다.

[급변하는 베트남 권력 구도]

7월 22일 또 럼 (To Lam) 공안부 장관이 베트남 국가 권력 서열 2위인 국가 주석에 선출되었다. 하지만 쫑 서기장이 별세하자 주석에 선출된 지 2주 만인 8월 3일 또 럼 주석은 국가 권력 서열 1위인 베트남 당 서기장에 선출되었다. 베트남 핵심 지도부의 공백으로 베트남 권력 구도는 상당히 혼란스럽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3월 전임 국가 주석이 당 규정 위반과 결점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재임 1년 만에 주석직에서 물러난 것이다. 5월에는 서열 4위인 국회의장, 5위인 당 상임서기가 같은 이유로 연달아 사임했다. 이외에도 베트남 집단 지도체제 구성원인 정치국원 3명이 더 그만두었다. 그런데 국가 서열 1위인 당 서기장과 3위인 총리 모두 공안부 최고위직 출신들이다. 이 때문에 공안부가 부정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정적을 제거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더해 외교, 경제를 잘 모르는 공안부 출신의 지도부가 국정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취임 연설을 하고 있는 또 람 신임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_출처 베트남 전자정부 홈페이지

 하지만 지금 새 지도부에 대한 우려와 응우옌 푸 쫑 서기장 연임 당시의 상황이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2016년 응우엔 푸 쫑 서기장이 연임 당시 사상 유래 없는 현직 총리의 강력한 도전을 받아야 했다. 당시 쫑 서기장의 부패척결 운동으로 총리 측근들이 부패 혐의로 대거 구속 수감되었다. 이에 당시 총리는 경제를 모르는 당서기장이 외국인 투자를 위축시키고 국가 운영을 잘 못한다며 공개적 비난을 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퇴임하는 총리가 당서기장 선거에 나서겠다고 해서 베트남 정가가 발칵 뒤집혔었다. 하지만 쫑 서기장의 연임 기간인 2016년~2020년의 평균 경제 성장률은 6.8%이었다. 2017년과 18년은 7%대 경제 성장을 하며 베트남 경제는 최고 호황을 누렸다.

2021년 쫑 서기장이 2 연임까지만 가능한 당헌에 ‘특별 예외’를 적용해 3 연임을 하게 되었을 때는 ‘베트남의 시진핑이 되려고 한다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외신에서는 쫑 서기장이 친중파라 미국, 유럽과 관계를 멀리하고 중국과 가까워지려 한다는 의심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모두 다 틀렸다. 앞서 말했듯 쫑 서기장은 유연한 균형 외교를 펼쳐 외신들의 예측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외교 싱크탱크인 유소프 이샤크 연구소의 홍 히엡(Hong Hiep) 베트남 담당 선임 연구원은 7월 13일 독일 국영 방송국 도이체 벨레(DW)와의 인터뷰를 통해 ‘베트남의 외교 정책은 정치국에서 집단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공안 출신 지도부라도 기존 베트남 외교 정책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베트남 전문가인 미국 국방참모대학의 자카리 아부자 교수는 7월 21일 닛케이 아시아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또 람은 경제 성장을 통해 베트남 공산당의 정통성과 국가 안보가 보장되며, 베트남이 중진국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고 믿는 실용주의자’라고 분석했다.

베트남 지도부가 사상 유래 없는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느 한 권력자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 집단 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집단 지도 체제였던 중국이 시진핑에 권력이 집중되면서 발생한 문제를 잘 지켜본 베트남은 중국의 길을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