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핸드폰을 택시에 놓고 내렸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가다가 깜빡 잊고 흘렸던 것 같다.
덕분에 집에 들어가면 연락하겠다는
그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던 나는 하루 종일 집 나간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종종거렸다.
집에는 잘 들어갔나?
잘 들어갔겠지, 애도 아닌데
택시에서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겠지?
설마 잃어버렸겠지.
잃어버려도 연락은 할 수 있지 않나?
아픈가?
출근은 했나?
진짜 무슨 일이 있나?
다음 날밤 열 시까지 연락이 되지 않자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락이 오면 기필코 화를 내겠다고 다짐했다가
아무 일도 없이 제발 무사하길 바랬다가
오락가락 예민 보스가 되어갔다.
그때쯤이었을까,
짜증과 불안이 진심이 되어가던 그때,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안해
핸드폰을 택시에 두고 내려서
이제야 찾았어
연락하려고 했는데
뒷자리 번호밖에 생각 안 나더라.
화났어?
정말 미안해.
그 순간 나는 안도와 분노가 한 번에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사한 것에 대한 안도감, 아직도 전화번호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실망, 그래도 연락할 방법을 찾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분노 등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겹쳤다.
결국 나는 그의 연락이 왔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선택지 중에 ‘화를 낸다’를 택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선택을 후회하는 중이다.
화를 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우리가 아직도 전화번호를 못 외우는 사이처럼 가볍게 느껴졌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연락을 취할 다른 방법을 찾지 않은 그가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결국 둘 다 나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전화번호를 못 외운다고 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도 그의 전화번호가 가끔 헷갈리지만 그를 사랑한다.
오히려 전화 말고 다른 SNS로 내게 연락 못했지만 pc카톡, 인스타그램, pc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었다. 그리고 혹시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전화번호를 외우고 외우지 못하고,
연락을 하고 안 하고,
사소한 일로 예민하게 굴어 관계를 망치지 말자,
그가 나의 믿음을 져버리거니,
그가 나의 가치를 깎아내리거나,
가치관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일이 아니면
그의 진심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사소한 말투 토라지지 말자,
우리가 더 사랑하는데 중요한 일이 아니면.
by. 쏘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