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숲이 필요하신가요
나는 가끔 스푼 방송을 한다.
스푼에서 나는 목소리로, 청취자는 댓글로 소통을 한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스푼을 켜면 한 두 분씩 길게 참여해 주셔서 외롭지 않다.
나는 요즘 대화 상대를 찾는 중이다.
친구가 있긴 하지만 다른 대화 상대도 원한다.
친구와는 매번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해서일까.
가족도 있지만 가족과는 오랜 통화를 하지 않으려 한다.
꼭 전화가 길어지면 결국엔 가벼운 토크를 넘어선 주제로 넘어가 잔소리를 듣게 되거나 지치기 되더라.
어제 오랜만에 스푼을 켰다. 스푼 방송을 킬 때 생각해야 하는 점은 내가 청취자 즉, 소통 상대를 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팬이라는 개념이 스푼에도 있어서, 전체를 상대로 방송을 할 것인지, 팬만 들을 수 있는 방송을 할 것인지 정할 수 있다.
하지만 팬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대화 상대를 선택할 수 없다.
최근 스푼 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공통점이 있다.
다들 본인 이야기를 많이, TMI 수준으로, 주제를 바꿔가며 한다는 것이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런 것이다.
어제 나는 호불호 갈리는 음식에 대해서 청취자 두 세분과 소통을 하고 있었다.
근데 그중 한 분이 눈에 띄었다. 같은 주제에 대해 DJ, 다른 청취자와 함께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본인 할 말만 하는 것이다.
음식 이야기를 했다가, 본인 직업 이야기를 했다가, 약속 이야기를 했다가....
스푼을 킨 나로서는 대화가 자꾸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추석 연휴였을 것이다.
방송에 한 분이 들어오시더니, 본인과 일대일로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이 이야기에 끼어드는 게 싫어서라고 했다.
그분이 말씀하신 끼어든다는 것은 다 같이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본인 직업 이야기를 해서 대화가 끊기는 느낌을 받고 싶지 않다는 것 같았다.
이해는 되지만 내가 스푼을 하는 이유는 여러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에 이유를 설명하고 거절했다.
(실제로 그분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로운 청취자가 들어와서 "안녕하세요"만 남겨도 불편함을 표하셨다.)
대화 상대를 찾는 사람은 대형 DJ 방송을 피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청취자가 많은 방송일수록 본인과 티키타카가 되는 느낌이 적어서 그런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일부러 청취자가 없는 방에 들어가서 소통을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나도 뭐 다른가? 생각도 든다.
나도 대화 상대가 필요해서 스푼을 켰으니까.
다만 나는 목소리로, 청취자는 댓글로 소통할 뿐이다.
커넥팅이라는 어플도 있다.
랜덤을 7분 동안 통화하는 것이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추가 구매를 하면 다른 기능도 쓸 수 있는 것 같던데 해보지는 않았다.
다들 대화 상대를 찾나?
대나무 숲이 필요한가?
+ 대나무 숲 이야기의 유래
―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옛날 어느 나라에 귀가 당나귀처럼 긴 임금님이 살고 있었어요.
그 사실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오직 임금님의 머리를 다듬어 주는 이발사 한 사람만 알고 있었죠.
하지만 이발사는 그 비밀을 알고 난 뒤 너무 괴로웠어요.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예요!”
이 말을 하고 싶지만, 임금님의 비밀을 누설하면 목숨이 위태로웠거든요.
이발사는 점점 답답해져서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어요.
결국 어느 날 숲으로 나가서
아무도 없는 대나무밭 속에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그 순간 마음이 후련해졌어요.
하지만 며칠 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들이 속삭였죠.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결국 세상 사람들은 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럼에도 이상하게, 이발사는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숨기고 눌러왔던 말을 털어놓으니 속이 시원했기 때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