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에 갇힌 아이>

가정폭력 시간 속에 멈춰버린 내면아이

by 내면아이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늘 공포가 함께 살았다. 겨우 여섯 살이었던 나에게 집은 생존해야 하는 전쟁터였다.

그 시절을 회상해 보자면 긴장감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입이 바싹 마르는 기억들만 가득하다.

아빠는 거의 매일밤 엄마를 때렸다. 발로 머리를 걷어차고,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밟고, 물건을 사방으로 던지고, 엄마는 숨죽여 울었다.

잠들지 못하는 아이의 밤은 매일 너무나도 길었다. 그 밤이 너무 길어서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그 시간 안에 멈춰있다. 단 한 뼘도 자라지 못한 채, 여섯 살의 아이로 굳어버렸다.


아이는 아마 평생 크지 못할지도 모른다. 치유는 사과에서 시작된다고들 하는데 내게 사과해야 할 사람은 끝내 사과하지 않을 사람이다.

그래서 서른 살의 나와 여섯 살의 아이는 아직도 그곳에, 그 시간에 서려 있다. 현재를 살다가도 무의식은 부메랑처럼 끊임없이 그 자리로 돌아간다. 마치 그 자리가 가장 어울리는 자리라는 듯이.

낯익은 곳으로, 익숙한 공포감 속으로 돌아가서 지긋지긋할 만큼 반복해서 긴장하고, 무기력한 슬픔을 만끽한다. 지옥 속을 헤집다가 현실로 돌아와서 밀려오는 우울감과 절망감에 잠식당하기를 반복한다.


아빠는 낮에 일을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와 분노를 집에서 푸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아무리 잘해도 아빠는 잘못한 한 가지를 기어이 찾아내서 엄마를 벌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올 때부터 이미 화가 나 있어 분노의 원인이 엄마가 아니었음에도, 술에 취한 아빠는 가장 만만하고 약한 엄마가 원인이라도 되는 듯 잔인하게도 때려서 굴종시켰다. 무릎을 꿇려서 엄마의 존엄감을 여섯 살 딸이 보는 앞에서 굴욕적으로 짓밟은 후에야 폭풍이 가라앉았다.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내 심장은 요동쳤다. 아빠가 집으로 들어오면 하루의 마무리 루틴처럼 비릿한 술냄새를 풍기면서 엄마를 죽지 않을 만큼 때리고, 물건을 깨부수며, 은밀한 포식자로 군림했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잦아들면 나는 그제야 폭풍이 지나갔음에 안심하고 긴 밤을 숨죽인 채 건넜다.


지금의 나는 취업도 했고, 결혼도 했다. 선하고 다정한 성품을 가진 남편과 함께 평화롭고 조용하게 살아간다.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고, 밤마다 숨을 조여 오는 공포도 이제는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지금, 나는 더 불안해졌다. 어린 시절의 공포보다 훨씬 깊은 우울이 천천히 차올랐다. 생존하기 바빠서 우울하고 슬픈지도 몰랐던 여섯 살의 진짜 마음도 수면 위로 같이 떠올랐다. 목구멍 끝까지 슬픔이 차올라 넘칠 듯이 찰랑거렸지만 토해내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다.

한동안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했다. 무너지는 마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이 병들어있다는 걸 인정하면 도미노처럼 모든 게 무너질 것만 같았다. 생존이 인생의 목표였던 여섯 살에 마음이 썩어가도 감정을 숨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일까.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 안에 사는 나를 닮은 아이가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 일에 치여 바빴던 나는 아이에게 내 인생을 방해하지 말라며 윽박질렀다. 과거 따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매일 웅크리고 슬프게 울었다. 아주 가끔은 나에게 괜찮냐고 묻기도 하면서. 아이는 행복한 날보다 불행한 날에 더 자주 찾아와서 나에게 스치듯 닿고 달아나기를 반복했다. 아이와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를 지켜봤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호기심반 두려움반으로 아이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오래 잠겨 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회피하고 싶었던 생생한 통각들이 나를 아프게 짓눌렀다. 어쩔 줄 몰라 허우적대며 쓰나미처럼 가파르게 밀려오는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고 어두운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기분.

정체를 알 수 없고, 정의하지 못하는 비참하고 불쾌한 기분으로 점점 위태로워지던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내 발로 정신과를 찾아갔다. 나약한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정신과가 그날은 유일한 피난처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