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과정>

분출되지 못한 분노는 내부를 향한다

by 내면아이

가족에 대한 내 감정들은 어느 하나도 정리되지 못하고 구겨진 채로 마음 깊은 어딘가에 처박혀있다.

아빠의 폭력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에 대한 억울함, 아빠를 향한 분노, 매 맞는 엄마에 대한 연민, 나를 지켜주지 못한 엄마에 대한 원망, 서로 다른 감정들이 뒤엉켜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 화가 난 사람은 나인데, 그 분노는 가장 큰 원인인 아빠에게 닿지 못한다. 사과하지 않을 사람에게 분노를 던지는 건 허공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아서, 결국 그 돌은 다시 나에게 떨어진다. 복수하지 못한 분노는 방향을 잃고 안으로 파고든다. 너무 뾰족한 분노가 나를 헤집어놓곤 한다.


나는 사실 몇 년 전 부모와 연을 끊었다. 어린 시절은 잊고 어른 대 어른으로 잘 지내보려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끝내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폭력이 훈육이었다며 변명을 했다. 그때는 다른 집도 다 그랬단다. 나의 아픔은 그렇게 지극히 유난스럽고 철없는 아이의 투정으로 희화화된다. 부모의 훈육에 고마운 줄도 모르는 불효녀가 된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수년간 나는 쇼윈도 가족의 평화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누르며 수치심을 참아왔다.


엄마도 완벽한 피해자는 아니었다. 또 다른 가해자일 뿐이었다. 나에게 어릴 때 철이 없어서 대들었다느니, 말을 안 들어서 맞았다느니, 구질구질하게 옛날 일을 왜 아직도 기억하고 있냐며 어린 시절의 내 잘못을 귀신같이 찾아서 비난하고, 아빠 편을 들며 내 상처 위에 소금물을 붓고 사포질을 했다. 엄마 말을 듣고 있자면 나는 유치원생 때부터 갱생이 불가한 인간쓰레기였던 거 같다. 그냥 태어날 때부터 인성이 망가져있던 불량품이었던 거 같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아빠는 여전히 가정폭력을 완전히 멈추지 못했다. 여전히 엄마에게 화내고 윽박지르며 위협했고, 엄마는 타지에 있는 나에게 전화해 힘들다며 하소연했다. 성인이 된 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쓰레기통이 폭발해 버렸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냥 폭발하기에 적기라고 생각했다.


충동적으로 부모에게 그동안의 설움을 담아 장문의 문자를 보내고 바로 휴대폰 번호를 바꾸면서 모든 연락을 끊었다. 후천적 고아가 된 기분이었다. 슬플 줄 알았는데, 외로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후련했다. 처음으로 숨이 쉬어지는 느낌, 진짜 자유가 이런 거구나. 살아있음을 느꼈다. 연을 끊고 몇 번의 설과 추석이 있었는데 절대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부모와 마주치기 싫어 사촌 결혼식에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설연휴에는 이상하게 서럽고 외로웠다. 마음이 먹먹해 산책을 나왔는데 아파트 엘리베이터로 퍼지는 전 굽는 냄새, 벽 너머로 들려오는 가족들의 도란도란한 목소리가 이상하게 가슴을 후벼 팠다. 부럽고 서러웠으며 짜증이 났다. 나는 왜 부모를 잘못 만나서 의지할 가족조차도 없을까 싶어 화가 났다. 그러다가 화살은 다시 나에게 향했다.


왜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연을 끊었냐고, 어차피 사과하지 않을 사람인 거 알면서 왜 무리수를 두었냐고, 나는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분명 나는 피해자였는데, 지금의 나는 나 자신을 괴롭히는 가해자가 되어 있다.


“남들도 다 맞고 컸는데 왜 너만 유난이야.”


내 머릿속에서 누군가 끊임없이 나를 나무란다. 그 목소리는 아빠 같기도 하고, 엄마 같기도 하고, 내 목소리 같기도 하다. 분출되지 못한 화가 갈 곳을 잃고 나에게 부메랑처럼 계속 되돌아온다. 나는 용서받지 못하는 나, 용서하지 못하는 나 때문에 너무 아프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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