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고 싶었던 여섯 살 아이
나는 잠이 많다. 주말에는 12시간은 기본이고, 16시간을 자기도 한다. 남편은 나에게 잠이 많다고, 뭐가 그렇게 피곤하냐고 묻고, 나는 대충 둘러대고 만다.
사실 우울증은 아침이 가장 힘들다. 몸이 납덩이처럼 무겁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실패한 기분이 든다.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감,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공허하고 텅 빈 느낌, 아침이 되면 또 버텨야 될 하루가 주어진 괴롭고 비참한 기분이 든다.
그 불쾌하고도 무기력한 기분을 잠시나마 회피하려고 30분만 더 자고, 또 10분만 더 자기를 반복한다. 졸리지도 않은데 단지 도망가기 위해 다시 이불에 몸을 파묻고 억지잠을 청한다. 잠이 오지 않아도 침대 밖으로 나오는 게 두려워 움츠리고 있다. 그렇게 주말은 거의 해가 중천에 뜨도록 침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침, 점심도 거르고 해가 거의 넘어가는 저녁때쯤 살금살금 침대에서 내려와 늦은 끼니를 챙기고 다시 침대로 들어가 버린다.
평일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불안이 유난히 높은 날이 오면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쉰다는 어설픈 구실로 회사에 연차를 내고 이불속으로 숨어버린다. 하루는 아슬아슬한 불안감이 밀려왔지만 외면하고 일어나 출근한 적이 있다. 머지않아 출근길 차 안에서 올라오는 불안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이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눈물이 홍수난 거처럼 왈칵왈칵 쏟아져서 운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앞이 흐렸는데, 그날도 결국에는 생리통을 핑계로 오전에 조퇴했다.
깨어있는 시간보다는 덜 끔찍해도 잠은 도피처가 되지 못한다. 현실이 힘들어 눈을 감으면 더 깊은 곳으로 하염없이 가라앉는다. 몸은 침대 위에 누워 있는데, 정신은 자꾸만 시간의 뒤편으로 미끄러진다. 형광등이 깜빡이고, 부엌 그릇이 다 깨져서 유리파편이 튀어있는 집으로, 끔찍했던 여섯 살로 다시금 돌아간다. 비단 악몽만 꾸는 것이 아니다. 이불속에 숨어서 고요해진 집안의 공기를 느끼고 있으면 계속해서 생각이 과거로 흐른다. 과거 중에서도 가장 끔찍하고 충격적인 순간들만 골라서 반복재생된다.
방문 앞에 숨을 죽이고 서 있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컵이 깨지는 소리, 무언가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 고함치는 아빠의 목소리, 절규하는 엄마의 목소리까지. 심장은 작은 몸에 비해 너무 크게 뛴다. 혹시라도 내 심장소리에 아빠의 심기가 거슬릴까 숨을 억지로 참는다. 발끝에 힘을 주고, 내 존재를 지우려 애쓴다. 여섯 살의 나는 매일 간절히 숨고 싶었다. 하지만 그 집에서 안전한 공간이 없었다. 그때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작았고, 가장 무력했고, 충격적인 장면들 앞에 발가벗겨진 채 노출됐다. 그 시간으로 아무리 돌아가서 반복 재생을 해도 과거는 바꿀 수가 없다. 그래서 상처받고 또 상처받은 채로 돌아온다.
깨어있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나는 피신하지 못한다. 낮에는 회사에서 평범한 얼굴로 키보드를 두드리고도 밤이 되면 다시 여섯 살로 돌아가 문 앞에 서있다. 나는 매일 나를 과거로 끌고 들어가 자신을 벌한다. 언제쯤 도망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제쯤 나를 벌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