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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26. 2024

육아와 멈춤

고독의 필요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엄마 m과 돌 아이를 둔 새로운 동네친구 j랑 만나 대화를 하는데, m과 j 모두 이런 얘기를 꺼낸다. 이 엄마들 저 엄마들 만날 때마다, 여기 식구들 저기 식구들 만날 때마다, 뭔가가 흔들리고 귀는 팔랑거려서 마음이 힘들다고.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마음이 휘청일 때가 자주 있다. 육아서의 결도 워낙 폭이 넓고 다양해서 이게 좋다 저게 좋다 이건 나쁘다 저건 나쁘다, 서로 딴 얘기를 한다. 시시때때로 혼란스럽고 방황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공통적으로 좋다고 하는 것과 공통적으로 나쁘다고 하는 것들을 감각적으로 추리고, 나와 아이에게 주어진 여건에서 적용시켜 볼 만한 것들을 다시 한번 추려냈다. 이와 함께 이런저런 경험 속에 부딪히다 보니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틀이 잡혀갔다. 아마도 그 무렵부터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점차 육아서의 비중은 줄고, 문학 등 다른 영역의 독서 비중이 늘면서 나의 세계가 소복이 자리 잡혀갔다.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새로 알게 되는 나의 모습, 과거에 대한 재해석, 현재의 상황에 대한 유의미한 서사가 부여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 모든 것은 팔 할이 '고독'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이를 방치하거나 폐기하지 않고 귀한 선물임을 알아볼 수 있었던 건 아주 처음부터는 아니고, 결국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점차 깨닫게 된 것이다. 

 

막 태어난 새 생명을 돌보면서 자연스럽게 획득한 특별한 경험과 홀로인 시간이 '나를 알아갈 기회'를 줬다. 아이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절대 몰랐을 내 밑바닥, 절대 겪지 않았을 갈등, 나의 욕구보다 아이의 욕구를 우선해야 하는 상황들, 애매하게 홀로인 시간들. 아이 신생아 시절에는 수유하고 트림시키고 재우고 나서 다시 아이가 깨어날 때까지 막상 남는 시간은 어중간한 1시간 길어야 1시간 반 정도였다. 그 틈에 잠시나마 잠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잠이 보약이라는데 내게는 어쩔 수 없이 책이 보약이 됐다. 읽고, 생각하고, 끄적였다.


그렇게 이어진 몇 년간의 독서리스트와 독서노트들.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는 일이 하루의 습관처럼 되자 내 안에서 무언가 변해갔다. 거기에는 과거의 구제를 통해 자기혐오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일, 신앙/하나님과의 관계 발전, 나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의미 부여, 서사를 구축하는 일 등이 포함됐다.


아이의 탄생, 퇴사와 육아, 마흔이라는 나이, 인생의 거대한 변화 앞에 부여된 고독의 시간이 새로운 나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는 고유한 나를 발굴하는 일이기도 하다. 섬세하게 복원하고, 부수기도 하고, 다시 조각하기도 한다. 여전히 매일 나는 이 과정 중에 있다. 다른 어떤 재미도 이 재미를 못 따라온다. 


고유한 나를 알아가는 시간. ‘나를 아는 것'은 지상 과제이고, 최우선 순위다. 틀림없이 홀로였기에, 멈춰 섰기에 가능했다. 스스로에 대해 깊이 생각할 틈 없이 닥치는 대로 살아져 가는 시간에는 절대 깨달을 수 없는 어떤 것이 분명 있다. 멈춰야만 보이는 것들. 그러니 나 혼자 멈춰있는 것 같다고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이 멈춤은 ‘멈춤'이라는 제목의 새로운 챕터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라는 서사에서 커다란 전환이 일어나는 중요한 꼭지.


육아라는 새로운 에피소드는, 내가 삶의 판을 다시 짜도록 했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도록 했다. 나는 그 판이 마음에 든다. 순간순간 선택과 행동은 매번 어려웠지만 결국 선택하고 행동해야만 새로운 것이 창조된다. 그 선택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완전한 선택이라는 게 세상에 있을까? 그저 순간의 최선이 있을 뿐이다. 실수와 경험이 레퍼런스가 되어 나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든다. 겉으로 보기에 더 많은 것을 갖추고 화려하고 예뻐 보였던 나보다, 보이지 않는 아기자기한 구석들을 조용히 만들어 가고 있는 지금이 좋다. ‘지금의 내가 꽤 괜찮아'라는, 아주 낯선 기분.


어떤 이들에게는 이런 생각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뒤늦게 획득한 ‘내가 좋아'라는 생각이 더 귀하다.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든 실패와 자기혐오의 시간과 분투하며 후천적으로 남몰래 노력하고 있는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 아이와 함께 분명 건강하고 근사하게 잘 성장할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꼭 육아에서 비롯된 고독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멈춰서 홀로인 모두에게 아무것도 늦지 않았으며 이제 겨우 시작이라고, 인생의 진짜 챕터는 지금부터일 수 있다고 전하고 싶다.


그러니 조급함과 불안, 두려움, 자꾸 바깥을 곁눈질하는 초조한 시선을 내려놓고 차분하게 오늘 하루를 맞이할 일이다. 시간에 몸을 맡기고 틈틈이 조금 읽고 조금 쓰고 조금 생각하는 것이다. 쌓이면 커다란 것이 된다. 시간은 배반하지 않는다. 고독은 과연 신의 선물이며, 지금은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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