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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04. 2023

내 손을 떠난 편지, 손편지

쉬운 안녕은 없어요

목포에는 <동네산책>이라는 근사한 독립서점이 있다.


작년 11월에 독립서점을 키워드로 검색하다가 발견하고 처음 방문했었다.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다섯 번 정도 방문기록이 남아있으니, 두 달에 한 번은 간 셈이다. 눈이 정말 많이 내리던 날, 그래서 운전조차 조금 무섭던 날에는 그 아름답고 고요한 공간에 우리만 있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갔던 대부분의 날에 비가 왔다. 일부러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는데, 10월 3일,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뿌렸다.


단독주택을 개조해 만드셨다는 이 서점에는 소담한 마당이 있다. 마당에는 동백꽃도, 수국도, 백일홍도 피고 진다. 어여쁜 고양이들이 살고 있어서 아이는 이곳을 서점이 아니라 ‘야옹이들이 사는 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야옹이들아 안녕. 우리가 좋아하던 동네산책 올라가는 계단. 올라가다보면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높은 지대에 있는 단독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전체적인 공간 자체가 주는 매력이 가장 크지만, 공간의 세부 그러니까 공간 활용과 배치, 조명, 소품 뭐 하나 튀는 것 없이 근사하게 잘 어울린다. 처음 방문했을 때 이 공간의 주인은 분명 뭘 하든 프로일잘러 일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만큼 곳곳에 미친 손길이 세련되고 세심했다. 음악도 취향저격인 공간이었다. 대부분 재즈가 흘러나와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집에서도 일상의 bgm으로 70% 정도는 재즈를 틀어두기 때문에, 귀와 마음이 편했다.  


여름 오후. 어김없이 비오던 날. 빗소리가 타닥타닥 들려온다.


무엇보다 문학 중심의 서점인 것이 내게는 가장 좋았다. 문학은 누군가에는 쓸모없는 분야일지도 모르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문학은 귀하고 중요해’라고 느낄 수 있다. 소설이나 시뿐만 아니라 글쓰기에 대한 섹션도 있었는데, 반보 앞에서 살짝씩 끌어주는 느낌의 책들이었다. 내가 무지했던 세계에 대한 책들.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주던 책들.


그 서점이 영업 종료 소식을 알렸다.


마음이 덜컹 내려앉을 정도로 놀랐다. 세 식구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기대하며 설레하며 방문하는 몇 안 되는 곳이었는데.. 서점을 운영하는 책방지기님이 건강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하신 것 같았다. 무척 염려가 되면서도 기회가 있을 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소중한 곳이고, 공간을 통해 여러 좋은 기운을 받기만 한 기분이라, 뭔가 아주 작게라도 보답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고 싶은.


떠오른 것이 손편지였다. 손편지라는 작은 봉투에 마음을 담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동네산책 덕분에 누렸던 것들에 대해 적어 내려가며 매 순간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도 눈도 쉴 수 있었던 공간. 알 수 없는 이유로, 알 수 없는 것들로 마음이 채워지던 공간.


그런데 다 쓰고 봉투에 붙이고 나니, 갑자기 현실적인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걸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그러니까 모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대상에게 편지를 써본 적은 없다. 손편지라는 건 친한 친구나 남편에게만 써봤지, 나 홀로 내적 친밀함을 느끼는 대상에게 써본 적은 없는 것이다.


부치지 못한 편지로 남겨야 하나 어째야 하나 고민을 하다 든 생각이, 새삼스럽게도 이건 정말 물성의 형태를 가진 선물이구나하는 것. 이메일이나 요새 많이 사용한다는 디엠으로 무엇을 보낸다면 내게도 흔적이 남는다. 전자편지의 ‘보낸’ 흔적.


그런데 이 편지는 내가 굳이 찍어두지 않는다면, 완전히 내 손을 떠난 편지가 된다. 편지의 주인이 바뀐다. 어쩌면 나는 나중에 내용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내 마음의 일부. 그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원본이 존재하고, 그 원본의 소유가 내 것이 아닌 게 되는.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편지의 행보는 이제 받은 사람의 몫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더 ‘선물’로서의 의미가 있구나 싶었다. 그러다 보니 고민이 사라졌다. 나는 감사했고, 작은 선물로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고, 그 마음이 진심이니 더는 고민할 것이 없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에 대한 편견이 많이 깨졌다.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이 지나가다 처음 만난 아이 얼굴 앞에서 얼마나 환한 주름과 미소로 순식간에 바뀌는지 자주 봤다. 책이 있는 공간은 으레 조용해야 하고, 무엇보다 내가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이곳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그림책들은 그 자체로 아이를 조용히 환영했다.


책방지기님은 ‘어른‘이었다. 좋은 어른. 아이를 환대해 주셨고, 아이도 그것을 분명 느꼈고, 그래서 편안하게 그곳에 머물렀다. 우리는 때로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고 민폐가 너무 싫어 공공장소에서 어쩌면 다소 과하게 행동을 통제하는 부모이긴 하지만(이런 면모가 좋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공간의 주인이 아이를 환영해 주시니 한결 더 편안한 마음으로 있을 수 있던 건 어쩌면 당연하다.       


좋은 어른이 있는 곳, 동네산책이 내게 그런 곳이다. 좋은 어른이 만든 따스하고 근사한 공간. 그곳에서는 아이도 나도, ‘아이인 모습으로’ 있을 수 있었다. 그저 좋아하는 것들 속에 흠뻑 빠져.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며 나름의 기준이 생기고 취향이 생기다 보니 내 마음에 맞는 어떤 것들을 찾는 게 어려워진다. 어렵사리 마음에 맞는 것들을 발견하면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시간을 들이게 된다. 시간을 들이는 것이, 내 몸을 그곳에 두는 것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갈 수 없는 공간이 되었지만, 너무 머지않은 때 꼭 다시 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인생의 시기가 바뀌어 그때는 지금과 같지 않더라도, 그만큼 달라질 그 공간에서의 시간을 가만히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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