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존재를 위하여
아파트 1층이라 한낮에도 해가 들지 않는 낮 시간 거실에서 혼자 책을 읽다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돌덩이 같은 심기를 느끼자 마자 얼른 썬캡을 쓰고 밖으로 나갔다. 땅에 빛을 내리꽂듯 강하게 비추는 해로부터 의욕적으로 빛줄기를 받으려 일부러 양지를 걸으며 마음을 달랬다. 햇빛 아래서 걷기. 쓰러질 때마다 스스로에게 외치는 구호다. 남들이 모두 잠든 심야의 어둠을 거닐며 밤 산책을 했던 청춘에는 몰랐던 이야기.
빛 아래서 걷기.
햇빛이 내게 건넨 말들.
햇빛 아래서 걷는 것이 루틴이 된 건 지난 가을부터였다. 전세 절벽으로 세입자 구하기가 어려웠던 난 발품이라도 팔겠다며 거주지 부동산 사무실 이곳 저곳, 가을 햇빛 아래를 여기 저기 걸어 다녔다. 제발 세입자 좀 구해 주세요, 제 앞에 세입자가 나타나게 해주세요, 기도하며 매일 한두 시간씩 걸었다.
가을이라 제법 쌀쌀한 기운이 있었지만 햇빛은 따뜻했다. 아, 따뜻하다. 운동화 주위로 굴러 다니는 단풍잎과 은행잎들을 보다 하늘로 눈을 들면 세상에서 가장 환한 빛들이 내 몸을 비춰주고 있었다. 작고 따뜻한 손들이 내 몸을 신중하게 터치하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먼지 같은 나의 몸에 대자연이 이토록 우호적이고 다정할 수 있는 것일까 신기해 하며 걸었다.
그 가을 어느 밤, 서울의 중심에서 수많은 젊은 영혼들이 하늘로 떠났던 계절. 슬픔과 분노와 무기력이 일상을 점령해 도저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주저앉아 있던 그 날도, 햇빛의 위로를 받으러 집을 나섰더랬다. 사람이 사람을 위로할 수 없을 때, 햇빛은 사람을 만져줄 수 있을 거라며.
그래, 그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햇빛을 받으며 내 마음을 돌보기 시작한 게. 햇빛과 함께 하는 내면 여행이라니! 나의 내면 여행은 십수년간 자정을 향해 가는 밤 열시 무렵의 어둠과 함께이지 않았나. 햇빛 아래서 마음에 관해 생각하다 꼭 '햇빛 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근사한 습관이 시작된 것이다.
햇빛이 내게 건넨 말들은 대체로 이랬다.
너의 인생은 눈부셔도 된다고. 그러니 눈부시라고. 눈부신 존재가 되라고. 그렇게 어두운 곳에서 어둠과 친구하며 끝내는 어둠이 되어 버리는 그 상상을 그만 거두라고. 어둠을 등지고 빛으로 나올 때 널 비난할 사람들을 그만 생각하라고. 빛 아래서 가만히 서있으라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하늘과 연결되라고. 햇빛을 충만하게 품고 있는 그 하늘에 와락 안기라고 했다.
눈부시라니. 하늘에 안기라니.
두려울 정도로 황홀한 말이었다. 도망가고 싶을 만큼 부담스럽고 강력한 메시지였다. 햇빛이 보낸 이 다정한 말들에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다가 깨달았다. 나 지금 이 말을 다시 한 번 더 듣고 싶구나, 좋아하는구나. 내 삶, 내 인생 그 누구도 내게 해주지 않았던 이 이야기를 말이다.
햇빛처럼 눈부신 존재가 되어 하늘에 온전히 품기길.
감사하며.
햇빛과 하늘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살게 되서.
2023.05.16.화
마음이 무척 힘들었던 낮을 떠올리다
오늘을 꼭 기록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