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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너피스 Feb 17. 2020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에서 적성찾기

'진짜 원하는 일'을 찾는 조금 다른 방법 (1)



좋아하는 건 없고요. 잘하는 것은 더더욱 없습니다.
이번 생은 망한 건가요?



세상에는 아주 잘 알려진 적성 찾기 공식이 하나 있다.

바로 "흥미 + 재능 = 적성"이라는 것이다. 즉,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면서 잘하기도 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천직이라는 것이다. 이 공식은 흥미와 재능을 하나씩 채워 넣으면 마치 '내가 원하는 일'이 방정식처럼 똑 떨어지리라 여기게 만든다.


하지만 이 공식은 아주 잔인한 면이 있다.

가슴이 뛸 만큼 좋아하는 일도, 누구보다 특출 나게 잘하는 일도 없는 사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TV 강연 프로그램이나 성공한 인사로부터 '가슴 뛰는 일을 찾으라', '누구에게나 강점이 있다'라는 류의 말을 듣는 게 지겨워졌다. 그것이 없는 사람은 마치 뭔가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은 굉장히 가변적이다. 없었다가 생겨날 수도 있고, 생겨났다가 금세 시들어 사라질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 또한 특별한 흥미나 재능을 지닌 것을 마치 인간으로서의 기본 조건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어릴 때부터 새로운 것은 늘 추구하나 뭐 하나에 깊이 빠진 적이 없었다. 연예인이든 취미든 이성이든 처음에는 호기심이 강하게 일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스르륵 흥미를 잃고는 했다. 그래서 뭐하나에 꽂히면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덕후 기질 보유자들이 오히려 부럽기도 했다.


어떤 일을 하는 것만으로, 어떤 것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어떤 이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저렇게 오래도록 행복감을 느낄까 질투가 났다. 그러면서 뭐든 금세 싫증내고, 끈기 있게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하자 있는 인간'으로 여겼다.


그러나 회사를 퇴사하고, 직장 밖에서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적성을 찾는 방법'에 대한 내 생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꼭 세상에는 그 적성의 방정식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흥미나 재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원하는 일'을 찾는 법


(1) 내가 분노하는 지점에서 찾기


결혼 잔소리에 분개해 싱글 전용 셰어하우스를 열었습니다


'비혼'이라는 말이 생겨나기 전부터 '결혼은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부르짖던 친구에게서 추석에 전화가 왔다. 한껏 씩씩거리는 목소리에 이유를 물으니 부모님의 명절맞이 결혼 잔소리 때문에 이번에도 대판 싸움을 치렀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를 매일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결혼=결단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인 친구였다.


본인들은 그렇게 고통 속에 살았으면서 왜 자기에게 자꾸 결혼을 강요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그 친구는 30분 동안 화를 토로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독립을 꿈꾸어 왔지만, 수입이 불안정한 예술 전공자라 서울에서 월세살이로 살다가는 신용불량자 되기 십상이었다. 때문에 부모 집에서 무료로 숙식하는 대가로 늘 부모와의 갈등에서 오는 화를 삭여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나 보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싱글 전용 셰어하우스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월세를 최대한 들이지 않으면서 결혼 잔소리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다 셰어하우스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그 후 월세를 절약하는 것을 넘어 플러스 수익이 생기자 현재는 예술인들을 위한 셰어하우스 분점을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들과 공동으로 생활하며 세입자들의 여러 요구를 맞춰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집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그녀는 자존감이 높아졌다며 꽤 만족하고 있다. 부모의 잔소리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그녀에게 오히려 안정된 고정수익을 안겨다준 것이다.


스트레스에 의한, 스트레스를 위한 스타트업이라니


1년 전 업무 상 우연한 계기로 '스트레스 컴퍼니'라는 회사의 대표님을 만나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제품들을 판매하고 스트레스 관련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참으로 시의적절한' 회사였다.


처음 만나 어떻게 그런 회사를 차릴 생각을 다했는지 여쭈었다. 그 대표님은 디자이너로 근무하다 다혈질의 사장님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처음 '스트레스 컴퍼니'를 구상했다고 한다. 이후에는 스팸문자들을 보내는 업체들에게 복수를 하겠다며 스팸전화번호부 데스노트를 만들었고, 쌍심지 켜듯 분노를 태워버리고 싶어 '분노 캔들'이라는 것을 제작해 판매했는데 이를 계기로 스트레스 컴퍼니는 시작되었다고 한다. (참고 : 스트레스 컴퍼니의 브런치 https://brunch.co.kr/@stresscompany)


물론 그 대표님이 어떠한 흥미나 재능이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창업이 바로 그 분노와 스트레스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없는 직장인이 어디 있겠냐만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솔루션으로 풀어낸 것에 나는 물개박수가 절로 나왔다. 


새로운 스트레스가 곧 자원이자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는 선순환 구조의 회사.

얼마나 위트 있고 매력적인가.


아무도  안 할 거면 내가 해버릴 거야


최근 들어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오랜 기간 심리적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른바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심리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 내담자를 종종 만나게 되는데, 문제는 비전문가들의 잘못된 정보들로 인해서 오히려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반려동물을 잃은 이들을 위한 자조모임이 이미 활성화되어 있는데, 찾아보니 국내에는 이런 모임이나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드물었다. 그러다 보니 일말의 책임 없이 심리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나는 이를 계기로 뜻이 맞는 상담전문가들과 함께 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펫로스에 대한 논문을 쓰고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모임을 기획 중에 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그 분노에서 시작되었다. 미약한 시작이지만 함께 준비하는 우리는 일종의 사명감을 느낀다. 이것이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역사를 쓴 봉준호 감독.

2014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방글라데시에서는 큰 배를 분해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이 투입됩니다. 실제 상황이고, 참 마음 아픈 일이죠."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보았던 그 불편한 진실은 영화 <설국열차>에서 왜소한 아이가 기차 내부를 관리하기 위해 기계 안에 들어가 있는 끔찍한 장면으로 표현되었다. 영화 <괴물> 또한 미군 포름알데히드 방류 사건과 똑 닮은 장면으로 시작되지 않은가.


봉준호 감독은 사회 곳곳에서 보여지는 이 '비애의 지점'들을 포착하여 그만의 상상력을 더해 미학을 완성했으리라 예상된다. 모순적이고 계급적인 사회에서 느낀 분노와 불편함이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분노'라는 감정을 부정적이고 죄악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분노라는 감정은 원초적인 감정일 뿐 변화를 위해서 꼭 필요한 감정이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사회의 변혁과 지금의 민주주의는 분노하는 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오지 않았나.


분노는 큰 에너지를 만든다. 그것을 그저 플렉스 소비나 시발비용, 폭식 등으로 회피하느냐. 아니면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소명으로 삼느냐는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분노를 느끼는 그 지점에, 볼 때마다 열불이 나고 짜증이 솟구치는 그 지점에 어쩌면 내 천직이 숨어있을지 모른다.


나는 무엇에 가장 분개하는가?




'진짜 원하는 일'을 찾는 조금 다른 방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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