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NER SPARK Dec 09. 2023

침묵으로 제압하라.


법정에서 재판장이 변호인과 피고인에게 최후변론을 하라고 한다. 변호인인 내가 먼저 일어나 피고인의 사정에 대해 구구절절 얘기하고 선처를 구하고 앉는다. 재판장이 "피고인, 최후변론 하세요."라고 한다. 


그런데 잠시 동안 침묵이 감돈다. 내가 좀 이상하다 싶어 옆에 있는 피고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피고인은 입술을 깨문 채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동안 살아온 여정이 그려지고, 무엇보다 가족들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이럴 때 판사도 피고인을 재촉하지 않는다. 피고인의 그 침묵이 온 법정을 지배한다. 피고인의 침묵이 길어지자 판사가 조용히 한마디 한다. "피고인 최후변론 하시지요." 피고인은 여전히 입을 떼지 못한다. 이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까지 들썩인다. 방청석에서도 조용히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얼른 일어나 "피고인이 가족 생각에 감정이 북 바쳐서 최후변론을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한데 피고인이 직접 써온 서류로 대체하면 어떨까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피고인이 들고 있는 손으로 쓴 최후변론서를 빼앗아(?) 법원사무관에게 넘긴다. 


피고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침묵과 행동이 많은 말을 했다. 최후변론을 한 경우보다 더 좋은 '변론'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사건은 결론이 의외로 좋다. 판사도 판사실로 돌아가 판결문을 쓰면서 피고인의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많은 경우에 침묵을 지킨 사람의 승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승리는 아니더라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협상테이블에서 상대를 설득하려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별로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가진 밑천을 드러내는 실수를 하기 십상이다. 어떤 때는 상대방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고 아무 말도 않을 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때가 있다.


우리는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너무 많은 말을 한다. 남을 욕하는 말, 자신에 대해서 과장하는 말 등 자신은 가치 있게 보이려는 말을 많이 한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존경받을 만한 사람으로 설득하기 위해 말을 많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말을 많이 함으로써 상대에게 나의 약점을 보일 때가 많다. '내 약점이 여기 있으니 공격하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침묵은 사람을 가치 있게 만든다.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상대방은 침묵을 지키는 사람을 보면서 혼란에 빠진다. 그 생각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침묵하는 사람의 생각을 추론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인다. 계속 궁금해한다. 신비감까지 준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할 필요는 없다. 상대방에게 알아내라고 하는 태도가 좋다. 상대방은 침묵에 제압된다. 어떻게든 당신의 생각을 알아내고 싶어 안달한다. 


특히 나의 꿈을 타인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 그냥 묵묵히 생각하는 데로 걸어가면 된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그들은 내 생각이 틀렸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내가 옳다고 그들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 상대가 나를 바보 취급하더라도 대응하지 않으면 된다. 차라리 꿈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침묵으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흥미롭다. 그들이 내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침묵으로 나는 더욱더 나의 깊은 내면에 집중할 수 있다. 


침묵은 나를 내면의 핵심으로 안내한다. 


내가 내향인이라서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외향인이든 내향인이든 침묵으로 자신의 내면과 연결하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솔직한 욕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을 주도하고 지배할 수 있다.  


[히말라야만년설산(그림판그림) by INNER SPAR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