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시절 나는 최악의 부장님을 상사로 두었다. 그 부장님은 작은 실수에도 크게 나무라는 성격을 가진 분이셨다. 같이 일하기 싫은 직장상사 1위였다. 나는 그런 부장님을 세상 제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평온한 어느 봄날 아침. 나는 부장님 방문을 두드리고 걱정 가득한 얼굴로 들어갔다. 부장님은 저쪽 컴퓨터 앞에 있다가 결재 탁자로 와 앉으셨다.
나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부장님, 큰일 났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순간 부장님의 얼굴에 웃음기와 핏기가 동시에 사라졌다. 검사가 실수라니. 검찰청에서 검사가 실수했다는 것은 뭔가 대단히 걱정할 일이다. 부장님의 머리에는 '뭐야, 이 자식이 큰 사고를 쳤나 보네. 아! 나도 순탄한 검찰 인생이 이 자식 때문에 망하나 보다....'라는 생각이 오간다.
층층시하 검찰청에서는 부장검사도 한낱 결재단계의 약한 한 고리에 불과하다. 부하가 사고를 치면 부장도 같이 책임을 진다.
부장님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묻는다.
'이봐, 뭐야. 정신 차리고 천천히 얘기해 봐'
부장의 입술이 고통으로 바짝 타들어 가고 있다.
그때 나는 아주 사소한 잘못을 고백한다.
순간 부장님과 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흐른다. 갑자기 부장님의 얼굴에 화색이 만발해진다.
"이 자식이 말이야. 진작 그렇게 말하지. 놀랐잖아. 그 정도는 실수도 아니야. 가서 일 봐. 허허허!"
그리고 박장대소한다.
나는 이렇게 윗분들을 종종 행복하게 해 드렸다. 그리고 나는 아주 실력 있고 위트 있는 검사로 낙인찍혔다.
그런데 만일 내가 내 실수부터 고백을 했다면? 부장님은 먼저 잔소리부터 10분가량했을 거다. 그리고 행복감이라고는 1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나는 아주 형편없는 검사로 낙인찍혔을 가능성이 크다.
검사생활을 좀 웃기게 표현했지만, 우리 인생도 다르지 않다. 고통부터 맛을 봐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깨닫는다. 행복한 생활부터 시작해서 계속 행복하다면 자기가 행복한 상태라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한다. 그러다 한 번 일이 잘 안 풀리게 되면 그냥 무너진다. 인생 자체가 무너진다.
하루라도 어릴 때 고통부터 맛봐야 한다. 인생의 쓴맛을 먼저 봐야 달콤함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된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어봐야 한다. 풀려고 해도 전혀 풀리지 않는 문제의 연속.
그런 고통과 어려움부터 겪은 사람은 인생 전체가 행복으로 그려진다. 어려운 문제를 풀 때마다 얻어지는 성공으로 인해 분비되는 도파민이라는 쾌락물질은 부산물이다.
이렇게 큰 고통이나 어려움을 겪은 사람은 그 시간을 버텨내면 큰 사람으로 변한다. 생각이 아주 큰 사람이 된다. 그렇게 큰 사람이 된 이후에 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그냥 성공을 향해 가는 여정에 당연히 있어야 되는 무엇이 된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순간은 큰 고통이 따르고 생명이 크게 위협을 받는 상태다. 그런 고통과 위험을 견뎌내야 진짜 세상에 나오게 된다.
고통이나 어려움 없이 성장해 왔다면 오히려 위험한 인생이 된다. 앞에 분명히 큰 위험이나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것을 견뎌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게 된다. 성장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통과 어려움이 필수다. 그것이 우주원리다. 벼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안다. 논에 어린 벼를 심으면 어려서는 병충해를 견뎌야 한다. 성장한 이후에는 태풍이라는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큰 고통을 겪어 본 동물이 상위서열을 차지한다.
가장 위험한 회사는 대표가 순탄한 삶을 살아온 2세인 경우다. 그 회사는 잘 되는 듯하다가 큰 어려움을 겪고 쓰러질 수도 있다. 그 어려움을 이겨낸 대표는 비로소 진정한 사업가가 된다.
회사를 크게 성장시키는 사람은 큰 고통을 겪어본 사람이다. 더 크게 성장하려는 사람은 그 과정에 고통과 장애물이 있을 걸 안다. 고통과 장애물이 성장의 거름임을 안다. 고통을 즐긴다. 두려움조차도 즐기게 된다.
고통을 나쁜 것으로 단정 지으면 그것을 회피하려고 하게 된다. 하지만 고통은 인생의 필수다. 고통이 없으면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인생 자체가 무료한 인생이 된다. 도전도 없으니 성취감도 없다.
인터넷 게임 중에서 망한 게임이 뭔지 생각해 보자. 너무 쉽게 장애물을 뚫고 목표로 돌진하게 해주는 게임이다. 각종 크고 작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지막 단계에 오른 게이머를 보고 우리는 흥분한다. 우리의 영웅이 된다. 그 게임은 대박이 된다. 그 게임에 중독된다. 어려움을 이겨내면 희열이 솟구쳐 오르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된다.
인생에는 항상 리듬이 있다. 나쁜 날이 있으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오게 된다. 그것이 선순환된다. 가장 좋은 와인의 원료는 극한의 가뭄이나 토양 상황을 이겨낸 포도다. 행복을 주기 위해서는 항상 먼저 고통과 결핍을 겪게 한다. 그것이 우주원리다.
항상 고통만을 원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어쩌면 내가 가장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그것이 내 행복의 치트키일 수 있다. 하는 일 자체에서 오는 어려움이나 고통을 받아들이라는 얘기다.
인생에 펼쳐지는 사건들은 좋고 나쁨이 없다. 그냥 내 인생이다. 내가 영웅이 되는 게임이다.
칵테일인생(그림판그림) by INNER S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