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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어 Aug 24. 2020

신사없(3)

리테일 : 오프라인 매장의 미래는 배달의 전초기지인가요?

2018년 무렵에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온라인 유통이 오프라인 유통을 과연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오프라인 매장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은 과연 온라인 유통의 지각 수용자(Laggards) 일뿐인 걸까?


제품수명주기(위)와 혁신수용주기(아래) 1)


이미 온라인 쇼핑과 모바일 쇼핑이 거의 모든 계층에 수용되어 있고, 거의 모든 상품을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하지 않고 구매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오프라인 쇼핑이 제공하는 경험에 어떤 대체 불가능한 편익이 있어서는 아닐까?


"즉시성이나 현장감 같은 게 있었지. 즉시성은 당일배송이나 즉시 배송 같은 배송 혁신으로 극복됐고, 현장감도 VR 같은 걸로 극복되지 않을까?"
"팀장님, VR요? 그건 좀 너무 간 거 아닌가요?"
"아니야. 이미 옷이나 신발 같은 걸 가상으로 피팅하는 서비스가 나왔다니까?"


아, 팀장님께서 말씀하신 건 AR인 것 같습니다만, 가까운 시일 내에 VR로도 구현이 가능할 겁니다. 그러면 가상의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피팅해 볼 수 있겠지요.


좀 전에 짚어주신 것과 같이, 배송의 혁신으로 구매의 즉시성이라는 경험은 극복이 되었습니다. 그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국내의 3대 유통사들이 모두 당일배송 서비스를 론칭하였습니다. 이마트는 2018년에 "쓱배송"을, 홈플러스는 2019년에 "당일배송"을, 롯데마트는 2020년 4월에 "바로배송"을 각각 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서비스는 공통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픽업하여 배송하는 프로세스를 일부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국내 유통사들의 온라인 유통의 오프라인 잠식에 대한 대응전략을,


첫째, 온라인 유통에 진출한다.
둘째, 기존 매장을 물류창고로 활용하여 배송시간과 비용을 절감한다.

 

와 같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국내 시장의 주요 업체들은 오프라인 매장의 미래를 배송의 전진기지로 보고 있는 셈입니다.


"그건 좀 우울한데?"
"아, 맞아! 홈플러스도 창고형 매장을 내놨지? 그게 그래서 나온 건가?"2)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유통 3사의 전략은 팀장님 말씀대로 우울한 방향으로 잡혀 있습니다. 매장이 매장 본연의 가치랄까, 제조사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니까요. 아마도 일자리 감소도 불가피해질 겁니다.


이와는 별도로 컨설팅 업계에서는 오프라인 유통의 혁신을 오프라인 그 자체에서 찾는 것 같습니다. 고객이 상품을 경험하는 쇼룸으로서의 가치3)를 강조하거나, 온라인 유통이나 게임산업에서 활용하는 데이터 분석 내지는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 기법을 오프라인에 적용하는 방법4)을 제안하는 것처럼요.


"그로스 해킹? 아니, 그보다 이런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러게요. 쇼룸은 새로운 역할을 찾는 거라고 치는데, 데이터 분석은 그냥 하던걸 더 잘하자는 정도밖에 안되니까요."


음, 쇼룸형 매장에서 고객의 행동을 분석해서 제조사에 '어떤 제품이 고객에게 소구 된다'는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오프라인 유통 업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엮이는 게 아닐까요?


"어? 잠깐만. 나도 그런 거 들어본 적 있어. (검색) 여기 있네. 베타(b8ta). 미국 회사."5)
"뭔데? 어? 신기하다?"


어떻게 보면 제조사로부터 사서 소비자에게 팔던 순방향 수익모델에서 소비자로부터 데이터를 사서 제조사에 파는 역방향 수익모델로 전환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베타 같은 경우에는요.


그래서 컨설팅 업체들의 전략 제안을 이렇게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현장감과 즉시성에 집중하여 고객의 방문을 유도한다.
둘째,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여 고객의 구매 경험을 향상한다.
셋째, 도입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정보를 모아 새로운 사업을 연계시킨다.


"말은 그럴 듯한데, 손에 딱 잡히지가 않는걸?"
"결국은 일단 신기술을 도입해 놓고, 그 뒤에 뭐든 새로운 걸 해 보자는 얘기잖아? 그런 정도의 아이디어에 어떻게 투자를 해?"
"아, 그리고 팀장님이 얘기한 VR인가? 그거 나오면 이것도 끝이잖아?"
"에이, 그래도 그건 좀 멀었지. 식료품이나 화장품 같은 건 VR로 안 되잖아."


네, 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투자를 하기에는 관련 기술이 너무 초기 단계에 있는 데다 수익모델도 불확실합니다. 우리가 기술 선도기업이나 투자를 받는 벤처기업은 아닌 만큼 이쪽 방향으로 사업을 전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 일단 데이터가 들어가면 안 건드리는 게 좋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오프라인 쇼핑이 주는 대체 불가능한 경험이란 무엇일까? 새벽배송과 바로배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주말에 가족들과 코스트코나 스타필드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왜 당일 배송이 되는 온라인 쇼핑을 이용하지 않을까요? 잠깐 비는 시간,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에 가까운 서점이나 백화점에 들어가 사지도 않을 상품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왜 커피숍에 앉아 온라인 몰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는 걸까요?


"현장감! 아까 얘기했잖아!"


그렇습니다. 현장감도 있습니다. 다만, 앞서 말씀하신 현장감은 다소 이성적인 방향에 치우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신 저는 감성적인 방향으로 접근을 해 보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현장감이 주는 즐거움입니다. 사실 이 방향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성공시킨 사례는 이미 있습니다. 대형 할인점이 몰려오던 1980년대의 미국에서 식료품점 체인인 웨그먼스(Wegmans)가 만들어낸 사례입니다.6)


웨그먼스는 매장 디자인부터가 쇼핑 현장의 즐거움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사진을 보면 백화점 식품코너를 몇 배 더 고급화 해 놓은 것 같습니다. 인테리어와 매장 레이아웃이 주는 어메니티(amenity)를 강조한 것입니다.


웨그먼스 매장 전경(왼쪽)과 타 식료품점 매장과 비교한 사진(오른쪽)


그 외에도 정상급 셰프들의 레시피 시연과 같은 볼거리 제공, 가족들과 함께 식단계획과 메뉴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자료인 전단과 잡지 배포 등도 하고 있습니다. 즉, 구매 과정은 물론 구매 이전의 계획 단계에서까지 고객의 즐거움을 설계하고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한데, 그 정도는 대부분의 유통사들이 다 하고 있지 않나? 매장 디자인도 그렇고, 웨그먼스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대체로 이미 하고 있는 것들 같은데?
"그러게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사례 같네요."


네. 무려 40년 전의 성공사례이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유통기업들이 따라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오프라인 유통의 위기는 온라인 유통이 이 수준의 경쟁우위를 뛰어넘는 수준의 가치제안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사례를 언급한 것은, '최저가'라고 하는 이성적 가치제안을 쇼핑의 즐거움을 극대화한다는 감성적 가치제안으로 뛰어넘은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구매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최저가'를 극복했다면, 다시 한번 이를 강화함으로써 '편의성'을 극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저는 게임화(gamification)을 제안해 보려고 합니다. 7)


"게임화? 전번에 네가 너무 도파민 지향적이라고 비판했던 개념 아니야?"
"응? 도파민 지향적? 그게 뭐야?"


그러니까 업무의 게임화라는 게 과업이나 과제를 '목표-달성'의 연속체로 설계해서 성취감을 높이는데 의의가 있는 건데요, 도파민은 중독을 유발한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게임화를 잘못 도입하면 워크홀릭을 양성할 수 있다는 얘기였는데.... 아, 뭐든 나쁜 점은 뭐든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보다 퇴근시간인데 집에 가면 안 될까요? 이걸로 보고서 쓸 것도 아닌데..


"어, 그래. 들어가. 그런데 이거 아직 안 끝난 거다?"


네, 네. 그럼 퇴근하겠습니다!




1) 제품 수명주기와 혁신 수용 주기를 종종 혼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둘 사이의 관계를 멋지게 표현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과 그림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PRANAVSHETTY16"의 블로그 MARKETING DIARY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 홈플러스는 2018년부터 기존 마트에 창고형 할인점 성격을 가미한 "홈플러스 스페셜" 매장을 오픈하고 있습니다. 2017년 CEO로 부임한 임일순 사장이 코스트코 이력이 있는 점이 작용한 게 아닐까 추측을 해 봅니다.


3) "오프라인 리테일의 생존법", 딜로이트 코리아 리뷰, 2020 No.14, p.6-15


4) "리테일 애널리틱스 프레임워크 구축", pp. 17-25


5) 베타(b8ta)가 소개된 도어 크리에이티브의 기업 블로그


6) 웨그먼스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다음의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에이드리언 J. 슬라이워츠키 & 칼 웨버, 「디맨드 Demand」, 유정식 옮김(다산북스, 2012), p.74-103


7) 게임화에 대한 정리는 다음의 자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Gamification의 동향과 사례", CT 인사이트, 2013년 6월호, 한국콘텐츠진흥원,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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