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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어 Mar 14. 2021

변화관리(1)

신라 율령비에서 배우는 변화관리 기법

"마, 전략이 니는 요새 뭔 생각 하고 사나? 재밌는 얘기 좀 해 보그라."


불판에서 고기를 한 점 집어서 입에 넣으려는 찰나에 사장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위기입니다. 실없는 소리를 하면 생각없는 놈이 되고, 깊은 얘기를 하면 쓸데 없는 생각이나 하는 놈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럴 땐 적당히 회사에 관련되면서도 가치중립적인 얘기를 하는게 좋습니다. 살짝 이론에 걸쳐 있으면서 회사 일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는 배제하는 거죠. 사례는 오히려 역사에서 가져오는게 좋습니다. 


뭐가 와 닿지 않는군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네. 저는 요즘 변화관리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변화관리? 이야, 그거 어렵던데! 그래, 뭔데?"


변화관리. 조직의 모든 리더들이 하는 고민입니다. 위에서 보면 아래에서 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맘에 들지 않고, 뭘 좀 바꿔 보려고 하면 말을 통 들어먹지를 않으니까요. 물론 아래에서 보면 윗사람은 늘 변덕스럽고 좀 지나면 그것도 시들해지는 거지만요. 그러니 상유정책(上有政策)이면 하유대책(下有对策)이라는 말이 나오고 꼽질은 짧고 가라는 길다는 말을 하는 것이고요.


 이 영원한 투쟁의 장에 서있는 리더들 고뇌를 "변화관리"라는 주제 만큼 잘 건드려 주는 소재는 없지요. 하지만 잘못 건드리면 그것이 바로 역린이 되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옆에서 팀장님이 눈치를 팍팍 주시는게 보입니다. 말 잘하라 이거겠지요.


"사장님, 제가 얼마 전에 경주 박물관을 다녀왔지 않겠습니까?"
"오, 니 경주 갔다 왔나?"


위험한 주제는 말하면서 한 번 꺾어 주는 겁니다. 사장님 경영에 간섭하려는 건 아니고, 회사 밖에서 가진 개인적인 체험에서 깨달은 바가 있어서 말씀 드리는 거라고요. 회사랑은 상관 없는 이야기로 만들어서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역사를 끌어 오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한동안 리더들에게 인문학 열풍이 불었지 않았겠습니까? 인문학 하면 문사철(文史哲) 이 중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것이 역사입니다. 철학은 접근 장벽이 높아서 애초에 다들 접근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학은 공연히 인용을 했다가 상대방이 하필이면 그 작품을 읽지 않았어 보세요. 상대를 소양 없는 리더로 만들어 버리는 역효과가 생깁니다. 하지만 한국사는 현재 리더 세대라면 필수교과로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해서 12년을 배웠으니 공감대 형성이 용이하지요. 그래서 이렇게 끌고 갑니다.


"네. 그런데 거기 가보니까 율령비라는 비석이 하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변화관리의 정수를 보고 왔습니다."
"그래? 그게 뭔데?"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포항 중성리 신라비


"이 비석을 세울 때가 드디어 이제 신라라는 나라가 법을 만들고 그 법에 따라서 통치하겠다고 하는 변화의 시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화백회의니 해서 귀족 가문들이 건건이 협의해서 결정하던 것을 이제는 왕이 정한 법대로 실행한다. 이것은 고대 국가에서 대단한 변화였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 비석에는 국가 단위로 그 엄청난 변화를 관리해 나간 모든 과정이 다 담겨 있습니다."
"그래? 뭔데?"


거의 다 왔습니다. 이제 마무리만 잘 하고 빨리 다른 주제로 넘어가면 무난하게 위기를 넘게 됩니다. 팀장님도 눈치 안 주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고 계십니다. 급발진 없는 얌전한 마무리를 향해 가 봅시다.


"비문의 내용과 구조는 이렇습니다."
1. 어느 지역의 유지 중 누구와 누구의 분쟁이 있었고 그 중 힘센 자가 약한 자의 땅을 빼았았다.
2. 왕께서 그 땅을 돌려주라 명령하시고, 이 건을 재론하면 중벌을 내린다고 하셨다.
3. 이에 두 사람은 소를 잡아 제사를 지내 왕명을 지킬 것을 맹세하였다. 1)
4. 모년 모월 모일, 이 사실을 비석에 기록해 모두가 보도록 한다.
"소를 잡아?"
"아무래도 농경시대니까요. 그리고 저는 여기에 변화관리의 모든 기법이 다 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어떤 원칙을 세웠으면 이에 반하는 사례가 발생하였을 때 신속하게 개입하여 해결한다.
2. 해당 사례를 해결하면서 원칙을 되돌리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한다.
3. 원칙이 집행된 것을 셀레브레이션(celebration)을 통해 당사자들과 모든 구성원에게 확정시킨다.
4. 원칙이 집행된 사례를 기록하여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전시한다.
"이런 조직 경험이 누적이 되면 결국에는 모든 구성원들의 행동도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고대에 국가 단위에서도 이렇게 해서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현대에 회사 단위로 하면 더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잘 마무리 한 것 같습니다. 사장님께서도 매우 흡족해 하시고, 팀장님도 도끼눈을 뜨지 않으시니까요.


"이야! 근래에 들은 이야기 중에서 젤로 재미있었다. 회사에서는 맨날 재미 없는 얘기만 한다 아이가?"


아시죠, 이럴 때 직장인은 어께에 뽕이 올라간다는 거? 저는 얻을 것을 다 얻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사장님, 그런데..."
"야, 근데 경험이 꼭 누적적아어야 되나? 한번에는 안 되고?"
"사장님, 신라 율령비도 몇 년에 걸쳐서 여러 개 세웠더라고요."


얼른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1) 이건 중성리 신라비가 아니라 냉수리 신라비에 있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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