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라랜드》, 참 재밌게 봤었다. 로맨스 영화는 대게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했다. 그 이유가, 영화가 현실적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연애와 사랑의 환상을 다루지 않고 헤어지는 결말을 통해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사랑을 보여주어서 마음에 들었던 것이라고.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니!
영화 라라랜드에서 사랑만큼 중요한 테마가 꿈이다. 주인공 미아와 세바스찬의 꿈에 대한 열정은 《위대한 개츠비》의 그것과 거의 맞먹는다. 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분명 초록빛 섬광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꿈에 대한 어리석을 정도의 믿음과 열정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이 당연한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어쩌면 라라랜드에서 제일 중요한 테마곡은 'Another day of sun'(앞으로 있을 일들을 쭉 훑는 이 곡에도 꿈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긴 한다)도, 'City of stars'도 아닌 'The fools who dream'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다 너무 좋은 곡들이지만.
미아는 이전에 만나던 남자친구인 그렉과 헤어지고 세바스찬과 만나게 된다. 그 이유도 꿈과 관련되어 있다. 이별의 사유가 이전 남자 친구와 그 가족들의 미아의 꿈에 대한 무시와 무관심이었기 때문이며, 만남의 이유가 세바스찬의 꿈에 대한 열정과 그가 보여준 미아의 꿈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미아는 남자친구 가족들과의 불편한 식사자리에서 박차고 나와 세바스찬과의 만남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미아가 처음 세바스찬과 만났을 때는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을 때였다. 이때 미아는 그가 자신과 같은 "dreamer"인 것을 알아차리고 세바스찬의 그 꿈에 대한 열정에 이끌렸다. 이뿐만 아니라 둘의 사이가 멀어진 것도 세바스찬이 잠깐동안 현실의 성공에 눈이 멀어 꿈을 현실과 타협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 아닐까. 꿈과 사랑을 뒤섞어 미아의 마음을 짐작해 보자. 그녀는 지위나 외모 등 자신의 외부적인 것에 반한 남자보다 자신이 믿는 가치나 성향 등 내부적인 것을 사랑해 주는 남자를 원했던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세바스찬이 키이스의 밴드에서 화보촬영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사진 기사는 세바스찬의 외부적인 모습만 담아내느라 그가 하는 연주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 결과물을 보는 대중들도 마찬가지일터. 이를 아는 세바스찬은 그야말로 현타가 제대로 온 표정을 짓는다. 이에 더 나아가 둘은 사랑보다 꿈이 중요했던 사람들이다. 마치 《위플래쉬》의 앤드류처럼. 혹은《파벨만스》의 새미처럼.
그리고 추가적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덧붙여보자면.. 우선 성장영화로서 자아실현에 관한 이야기. 이들의 꿈을 향한 집념이 진정한 자신으로 나아가는 자아실현의 과정으로 보여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성장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봉인 것이다. 외부적인 부와 명예보다 본인이 추구하는 자아실현을 최고의 인생 가이드로 생각하는 나와 결이 맞아 몰입하며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자아실현의 길에 잠깐동안 행로가 같아 함께했지만, 결국 그 도달점엔 혼자만이 갈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만이 온전히 자신을 이해하며 언제나 함께해 주고 자기 자신만이 극복 대상인 것이 바로 자아실현의 여정이다.
두 번째는, 본인이 추구하는 작품과 대중이 좋아하는 작품 간의 괴리에 대해. 이 두 가지가 딱 맞아떨어지는 예술가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반에 대중을 위한 환상의 똥꼬쇼(?)를 보여준 다음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치거나, 이 두 가지 사이의 조율 내지 타협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번지르르하더라도 낯선 타인의 표출에 귀 기울여 줄 이는 드물다. 처음부터 모두가 내가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것이라 기대하고 바란다면 큰 오만이 아닐까. 미아와 세바스찬이 간과한 사실이 이것이며 그들의 결함도 이것이다. 바로 자의식과잉.
어쨌든, 아무리 내가 남의 연애놀음에 회의적이라지만 사랑의 불발에 마음이 뺏기겠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사랑의 불발이 아닌 꿈의 성취였던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각자 자신이 원하는 꿈을 보기 좋게 성공한 이 영화는 지극히 해피앤딩. 그리고 그걸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환상적, 예술적이면서도 대중적으로 표현하여 여러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너무 사랑스러운 영화다. 《라라랜드》도 벌써 4~5번은 본 것 같은데 볼 때마다 푹 빠져들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