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타스틱 소녀백서》 리뷰

고스트 월드

by 이니


《판타스틱 소녀백서》. 제목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어둡고 진지한 영화이다. 사회가 자신에 비해 부족하게 느껴져서이든, 사회가 자신에 비해 거창하게 느껴져서이든, 그런 사회에 녹아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일컬어 사회부적응자라고들 한다. 그리고 《판타스틱 소녀백서》는 그 "사회부적응자"에 조명한 영화이다. 즉,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서 선택과 성장, 그리고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주인공을 들여다보는 영화.
현실과의 타협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원래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심지어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조차 항상 자기 마음대로만 하지 못하는 법이다. 하물며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소녀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 그렇기에 현실과 세상은 불공정하며 비정하게만 보일 것이다. 전혀 "판타스틱"하지 않다.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렇게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인데, 어찌 사회가 순탄하게만 굴러갈까. 항상 나하고 싶은 대로만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이 멍청하거나 답답한 줄 알았는데 그것이 현실이었을 때. 나 자신은 특별한 존재라고 믿었는데, 특별한 일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막상 사회로 나가보니 그저 많은 사람들 중에 한명일 때. 개인은 너무나도 작고 사회는 너무나도 거대하다. 괜히 민중을 풀에 비유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라는 거대한 폭풍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풀처럼 유연하게 사는 수밖에 없다. 나무처럼 꼿꼿하게 버티다가는 결국 부러지고 만다.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들을 흘려버리고,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알바를 하루 만에 그만두어 버리며, 자신의 물건을 팔기조차 거부하는 이니드는 결국 점차 있을 자리가 사라진다. 끝끝내 타협을 거부하던 이니드는 홀로 낯선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며 영화가 끝이 난다. 이니드가 버스에 오르기 전, 치매에 걸린 듯한, 늘 노선이 끊긴 버스 정류장에 앉아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던 부랑자 할아버지가 먼저 그 버스를 타고 떠난다. 또 다른 사회부적응자였던 그 할아버지는 떠나기 전 이니드에게 본인도 곧 떠날 것이라는 둥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버스를 타고 사라진다. 덩그러니 남겨진 버스 정류장의 벤치에는 "not in service"라고 적혀있다. 할아버지를 좇아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버린 이니드는 과연 유토피아를 발견했을까. 노선이 끊긴, 승객조차 아무도 없는 버스에 오른 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부디 그것이 자살 등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어찌 보면 반성장영화라고도 볼 수 있는 《판타스틱 소녀백서》. 어쩐지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 떠오르기도 했다. 비주류이지만 이니드, 시모어가 그리 틀린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주류이지만 다른 일반 사람들이 항상 옳은 것만도 아니다. 어쩌면 다 함께 섞일 수 있을 때, 그러니까 사회부적응자가 사회에 참여하려는 노력을 하고 사회는 사회부적응자를 포용하려는 노력을 할 때, 이니드가 그토록 찾던 유토피아가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묘하지만 이상하게 여운이 오래가는 영화, 《판타스틱 소녀백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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