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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계탕을 뜯으며
by
포도송이 x 인자
Aug 5. 2024
삶계탕을 뜯으며
by 포도송이
초복 다음 날
찾아간 삼계탕 집
한 그릇에 18000원
대기만 1시간
드디어 펄펄 끓는 삼계탕이 나오는데
어?
108 번뇌 가득 짊어지고
왼다리 오른 다리 가부좌를 튼
부처 같은 영계 한 마리가 앉아있다.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소금을 뿌리시오
후추를 뿌리시오
당신의 고단한 삶과 번뇌
내 다 짊어지고 가겠으니
어서 날 뜯어먹으시오
삼계탕이 불경을 읊조린다.
뭐부터 뜯어야 하나
별로 두둑하지 않은 뱃살
몇 번 걷지도 못한 야들야들한 다리
파닥파닥 애만 쓰다 꺾인 날개
영계의 삶이나 인간의 삶이나
먹을 게 없기는 마찬가지
열반인지, 열탕인지 함부로 뛰어들다
혓바닥이 대이기는
마찬가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인삼 한뿌리와 영계 한 마리가 만나
삼계탕이 되었으니
퍽퍽한 삶, 너덜 해진 삶
죽기, 살기, 원기나 보충해야겠으니
오늘 나는
삼계탕이라도 뜯어야겠다.
삶계탕이라도 뜯어야겠다.
Epilog
,
.
지난번 그냥 가볍게 써 본 아니. 사진까지 철저히 연출해서 올린 '
삶겹살을
구우며
"라는 시가 브런치 이웃들의 환대를 받으니 재탕의 욕구가 끓어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삶계탕을 뜯으며'라는 시는 '삶겹살을 구우며'의 이란성쌍둥이 같은 시입니다.
지난 초복 다음 날, 극성수기를 피한다고 피했는데, 여전히 대기가 긴 삼계탕 집을 다녀왔습니다. 긴 대기에 너무 시장하기도 하고, 삼계탕의 뿌연 연기로 카메라 렌즈가 자꾸 흐려져, 사진 하나 건지지 못하고 말았네요.
비록, 준비는 미약했으나 인삼, 대추, 밤으로 푹 고은 삼계탕만큼이나 제 진심을 푹 고았으니 한 그릇 맛있게 드셔주시기를
마음 원기회복에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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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시절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내가 얼마나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중년이 돼서야 깨닫습니다.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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