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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Jul 18. 2024

시골에선 저녁 개밥을 몇 시에 주나

내 남편의 귀하디 귀한 탄신일을 축하하며

오늘은 우리 남편의 탄신일. 재령이 씨 가문에 귀하디 귀한 장손으로 태어난 우리 남편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태어난 시(時)모른다는 것이다.


결혼 전 일이다. 결혼 날짜도 잡아야 하고, 재미 삼아 궁합도 볼 겸 남편에게 태어난 시(時)를 물어보았다.


"저녁 개밥 줄 때 태어났다던데?"

"진짜? 그게 몇 신데?"

"몰라, 그냥 개밥 줄 때래"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아주 깡촌도 아닌 경기도. 게다가 유치원까지 나온 고스펙 유년시절을 보냈다더니

개밥 줄 때 태어났다던 남편의 말에 출생연도가 급,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강남에선 오렌지족, 야타족이 판을 치고, 밀레니엄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던 때였다.


1999년 12월,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던 그 해,

부부의 길일이 언제인지 모른 채, 간신히 흉한 날만 피하여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 24년을 '헤어질 결심' 없이 알콩달콩 살았으니 개밥 때 태어난 남편의 시(時)가 아주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2023년 봄, 친구와 철학관을 찾았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남편의 승진도 바람도 재복도 아니요, 그냥 몇 살까지 직장에 다니는지, 걱정해야 할 오장육부는 없는지, 이처럼 아주 소박한 미래였다.


친구와 나란히 철학관 사장님 앞에 앉았다.

1974년 갑인(甲寅) 생~  남편의 생년월일을 물으시더니, 태어난 시(時)를 물으신다.

대충 7시쯤인 거 같긴 한데 시부모님이 개밥 줄 때 태어났다니 정확히는 모른다고 솔직히 말했다.


'개밥 줄 때라.....'

잠시 생각에 잠기신다. 혹시 남편이 태어난 곳이 경기도 어디쯤인  농사는 벼농사인지, 밭농사인지 꼬치꼬치 물으신다.


경기도의 동쪽이라... 해가 긴 여름  논에 갔다 돌아오는 길,  

사람이 먼저 밥을 먹고, 개밥을 주셨을 테니, 그렇다면 남편의 시(時)는 7시 이후일 거라고 말씀하신다.


"근데 저희 시부모님은 좀 일찍 주무시는 편인데, 좀 일찍 드시지 않으셨을까요?"

나 역시 나름, 일리 있는 반박도 제기해 보았으나, 또다시 이어지는 반박에 반박.

본인이 위도 경도가 비슷한 동네에서 살아봤으며, 시골 습성은 잘 아신다며 그냥 7시 이후의 가능성이 높다고 하신다. 같이 친구는 자꾸 옆에서 '쿡쿡' 웃고, 상담료가 30분에 5만 원인데 개밥 주는 시간으로 10분만 날려버렸다.


철학관 문을 나오면 생각했다. 이게 직장에 붙어있을지 정도의 소박한 미래이니 망정이지, 국회의원이나, 사장님이면 어쩔 뻔?  개밥줄 때가 언제냐에 따라, 권력을 쥐거나 놓치거나 대박을 차거나 쪽박을 차거나 하지 않았겠는가? 아주 소박한 인생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남편의 생일날, 미역국을 끓이며 또다시 생각했다.

남편은 도대체 몇 시에 태어난 걸까? 시부모님도 다 돌아가신 시점에서 저녁 개밥 줄 때라는 시간은 미궁 속 시간이다.


어쩌면, 개똥이와 같은 맥락일까? 시골에서는 귀한 자식일수록 건강하게 자라라고 '개똥이'라 불렀다고 하니, 귀한 아들의 사주가 혹시라도 천기누설될까 싶어, 개밥 줄 때라고 낮추어 말하신 건 아닐지 추측해 본다.


사실 개밥 줄 때면 어떻고, 고양이밥 줄 때면 어떠랴.  뭣이 중한데.

50년 전, 부인의 극심한 산통에도 집에 키우던 개밥을 챙길 만큼 선한 시어버지의 성품을 닮았고

똥 누는 시간을 쪼개가며, 부인의 브런치 글에 라이킷을 날리는 스위트함도 갖췄고

고단한 회사 일과 후에도 책을 30분이라도 읽고야 마는 품위 있는 삶을 살고 있으니,

혹여 개밥 줄 때 태어난 시(時)가 장난처럼 남편의 인생을 흔들어 놓는다 해도

여전히 우리 남편의 삶은 평화롭게 흘러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며칠 전 카톡으로 생일 선물로 브런치에 글 하나 써서 하사해 줄까 했더니, 답이 없다.

그냥 지난달 계약한 차가 선물로 왔으면 좋겠다고 한다.

본사에 전화해 보니 아직 앞바퀴 나사도 조이지 못했대. 나는 멍멍 짖어댔다.

큰 딸은 장애인 연금으로 아빠에게 현찰을 주겠다 하고 둘째 딸은 케이크를 준비했다고 한다.

해가 길다. 저녁 7시 30분이면 퇴근하고 딱, 개밥 줄 시간이 아니던가

긴 여름해처럼 오래오래 오손도손 개밥도 나눠주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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