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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Jul 23. 2024

시어머니의 욕값으로 73만 원을 받았다.

이번 스토리는 시어머니 돈자랑 스토리와 이어지는 내용이다.

시어머니에게 돈자랑을 했다. (brunch.co.kr)


* 시간이 없는 브스 애독자들을 위해 1편에 대한 2줄 요약

치매인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본인의 돈을 훔쳐갔다고 욕을 해대고, 억울한 며느리는 깡통 통장을 늘어놓으며, 돈도둑이 아님을 적극 변호한다는 내용.


사실 시즌 2를 쓰기에 앞서 고민이 많았다. 시즌 1의 라이킷 수보다 흥행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기 때문이다.  허나 내가 김은숙, 노희경 작가도 아니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블랙코미디가 아닌가 싶어, 흥행 부담을 내려놓고 시어머니 욕값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시어머니의 치매는 도저히 집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시어머니는 위암 말기라는 진단까지 받았다. 담당 교수님은 수술 불가, 항암치료 불가라는 판단을 하셨다. 치매환자가 항암을 받기에는 자기 컨트롤을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세 분의 시누이와 우리 가족 모두는 담당 교수님의 판단을 존중했다.


결국 시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셔야 했다. 처음에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모셨으나,  한 명이 부축을 해도 화장실조차 갈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혈압과 당뇨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아 저혈당 저혈압 증세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요양병원의 구급차가 와서 어머니를 싣고 나갈 때는 의식이 오락가락한 상태였다. 나는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의식이 또렷했다면, 집을 떠나는 과정에서 시어머니도 나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요양병원에 모시자, 시어머니의 정신과 기운은 많이 회복되었다. 나 역시 그동안 방치되었던 어머님 방을 정리할 여유가 생겼다.


드디어 시어머니의 방정리가 시작되었다.


방 정리 시작은 이불빨래부터 시작하는 게 정석 아니겠는가. 그동안 닫혀있던 창문을 활짝 열고 돌침대 위에 깔아놓은 두꺼운 요를 풀썩~ 또 한 번 풀썩 털어서 걷어내는 순간이었다. 햇살처럼 반짝이는 흰 봉투를 발견했다. 뭐지? 하고 열어보니 만 원짜리 열 장이 들어있었다. 이부자리 밑에 숨겨놓은 어머님의 돈이었다. 눈물겨운 횡재였다.


다음은 베갯잇을 벗길 차례. 지퍼를 열어 베갯잇 사이에 손을 넣는 순간 봉투 하나가 잡혔다. 이번에는 더 두툼했다.  5만 원짜리 2장과 만 원짜리 10장.  이십만 원이나 들어있었다. 이왕이면 베개솜도 뜯어볼까 했으나, 뜯었던 바느질 자국이 발견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본능적으로 침대 옆 서랍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첫 번째 칸 전화번호부 수첩에서 돈냄새가 났다.  어 이건? 지난번 사슴농장에 가시라고 드렸던 내가 드린 돈봉투 같았다. 20만 원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두 번째 서랍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있었다. 수상했다. 금덩어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검은 비닐봉지를 풀었다. 에게, 버리지 못한 짝짝이 양말들과 꼬깃꼬깃하게 접은 만 원짜리 세 장이 함께 들어있었다.  


그래도 3만 원이 어디인가, 생각지도 못한 시어머니의 숨은 돈봉투 찾기로 방정리 하는 재미가 솔솔 했다. 방 안을 둘러보았다. 내가 어머님이라면 어디다 숨겼을까, 시어머니의 맘 속에 들어갔다. 돈을 숨길만한 물건들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평생 김밥 장사를 한 큰 딸이 백화점에서 사준 겨울코트 주머니

아파트 공사장 계단 청소로 번 돈으로 산 밍크코트 안주머니

실과 바늘처럼 시집올 때 함께 따라온 반짇고리함

뜯기도 아까워 모셔두기만 한 아들의 선물 BYC 내복세트


나는 시어머님의 추억을 스캔하며  '돈봉투 찾기 탐정놀이'를 이어갔다


총 73만 원.

그날 내가 찾은 어머님의 돈이다. 막내 형님한테 전화해서 깔깔 거리며 돈봉투 이야기했다. 형님은 올케가 고생했으니 맛있는 거나 사 먹으라고 했다. 그래, 좋다 좋아, 형님들도 허락했으니 나는 그 돈을 가지기로 했다.


그동안 수없이 들은 나의 욕값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나는 돈을 가질 자격이 차고도 넘쳤다. 시어머니의 욕을 이유 없이 들어야 했던 내가 정신적 피해보상이라도 요구했다면 73만 원이라는 합의금은 어림도 없었을 금액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에게로 쏟아졌던 시어머니의 욕들이 바람소리 같은 이명이 되어 귓속에서 울어 댔다.


내가 가지겠다 결심했지만,  실상 나는 그 돈을  혼자 쓰지 못했다.  어느 날은 카스텔라를, 두유를, 바나나를, 요플레를 사서 요양병원 302호실에 있는 8명의 할머니들과 나눠먹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했을 땐 더 이상 돈봉투는 나오지 않았다.  욕값  73만 원은 그동안 함께  사느냐고  '욕 많이 본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마지막 용돈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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