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들의 출처] 레밍은 집단 자살한다

by 한경수

"레밍처럼 행동하지 마."


무리를 따라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경고하는 말이다. 레밍이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집단 자살한다는 "사실"이 이 비유의 전제다. 그런데 레밍은 집단 자살을 하지 않는다. 한 번도 한 적 없다. 이 상식의 출처는 과학이 아니라 영화다. 그것도 다큐멘터리다. 그리고 그 다큐멘터리는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1958년, 디즈니의 자연 다큐멘터리 시리즈 "True-Life Adventures"의 한 편으로 《White Wilderness》가 개봉한다. 북극 야생 동물의 삶을 담은 컬러 영화였다. 9명의 촬영감독이 3년간 촬영한 영상을 편집한 작품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레밍 장면이다. 내레이터 윈스턴 히블러의 목소리가 깔린다. "일종의 강박이 작은 설치류 하나하나를 사로잡고, 이해할 수 없는 히스테리에 휩쓸려, 각자는 기이한 운명을 향한 행진에 발을 맞춘다."


화면에는 수백 마리의 레밍이 떼 지어 설원을 가로질러 이동한다. 작은 개울을 건너고, 바위를 지나, 절벽 끝에 다다른다. 내레이터가 말한다. "돌아갈 마지막 기회. 그러나 그들은 뛰어내린다. 스스로의 몸을 허공으로 던지면서." 레밍들이 절벽에서 떨어지고, 바다를 헤엄치다가 지쳐서 익사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베를린 영화제 다큐멘터리 황금곰상도 받았다. 뉴욕타임스 평론가 하워드 톰프슨은 레밍 장면을 "섬뜩하고 최면적"이라고 썼다. 수십 년간 의심받지 않았다.


1982년, 캐나다 CBC 방송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The Fifth Estate》가 "Cruel Camera"라는 에피소드를 방영한다. 기자 밥 매키언이 24년 만에 밝혀낸 사실은 이랬다.

촬영지는 북극이 아니었다. 캐나다 앨버타주 캔모어, 보우 강 근처였다. 레밍이 서식하지 않는 지역이다. 촬영진은 매니토바주의 이누이트 아이들에게 한 마리당 25센트를 주고 레밍을 사서 앨버타로 수송했다.

"대이동" 장면. 눈 덮인 회전판 위에 레밍 수십 마리를 올려놓고, 카메라 각도를 바꿔가며 촬영했다. 편집으로 수백 마리가 이동하는 것처럼 만들었다. 사용된 레밍 종은 애초에 이동 습성이 없는 종이었다.


"집단 자살" 장면. 레밍을 절벽 끝으로 몰아서 밀어 떨어뜨렸다. 절벽 아래는 북극해가 아니라 보우 강이었다. 떨어진 레밍들은 익사했다. 촬영진은 이 장면을 편집하여 자발적인 투신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다큐멘터리가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실을 제조한 것이다. 그리고 제조된 사실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것이다.

디즈니는 현재 이 영화를 사실상 봉인하고 있다. 디즈니+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이 영화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레밍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

알래스카 어류·야생동물국의 야생생물학자 토마스 맥도너의 설명이다. 레밍 개체 수는 포식자, 먹이, 기후 등에 따라 크게 변동한다. 이상적 조건에서는 1년에 10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 먹이가 바닥나면 새로운 영역을 찾아 분산 이동한다. 비버도 그렇고 무스도 그렇다. 동물의 보편적 행동이다.


레밍은 수영을 할 수 있고, 새 영역을 찾아 물을 건너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낯선 지형에 밀리거나 물살에 휩쓸려 익사하는 개체가 있다. 사고사다. 자살이 아니다. 분산(dispersal)과 자살(suicide)은 완전히 다른 행동이다.

맥도너는 이렇게 말했다. "디즈니가 어디선가 그 아이디어를 얻은 건 맞습니다. 아마 분산을 이동으로, 이동을 자살로 혼동한 거겠죠. 그리고 거기에 양념을 쳤고요." 레밍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 "레밍이 정말 스스로 죽나요?"라고 한다. 답은 항상 같다. "아니요."


9편에서 길레이의 풍자화 한 장이 나폴레옹을 200년간 난쟁이로 만들었다. 10편에서 디즈니의 다큐멘터리 한 편이 레밍을 영원한 자살 동물로 만들었다. 그림에서 영상으로, 매체의 힘이 올라갈수록 조작의 효과도 커진다. 그리고 의심은 더 늦게 도착한다. 길레이의 그림은 풍자라는 전제가 있었지만, 디즈니의 영상은 다큐멘터리라는 전제가 있었다. "기록한다"는 형식이 "조작한다"는 내용을 감춘 것이다.

6편에서 금붕어는 3초밖에 기억하지 못한다고 믿었고, 10편에서 레밍은 스스로 죽는다고 믿었다. 두 경우 모두, 동물은 알고 있었다. 금붕어는 기억하고 있었고, 레밍은 살려고 뛰고 있었다. 그것을 자살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카메라 뒤의 사람이었다.


가장 신뢰받는 형식이 가장 큰 거짓을 말할 때, 의심은 가장 늦게 도착한다. 출처의 형식이 화려할수록, 내용을 의심하기 어렵다. 트로피가 붙어 있으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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